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섯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책의 타이틀인 '걸'은 띠동갑, 히로, 걸, 아파트, 워킹맘, 책 속의 다섯개 단편중 하나의 제목이다. '히로'를 제외하고는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적나라한 제목들이고, 그 짐작이 맞다.

책을 읽으면서 나만큼 책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다. 주로, '투덜'과 '열광'을 오가는데, 이 책은 주로 '투덜'모드였다. 일단, 난 남자 작가가 쓴 여자주인공 이야기.에는 굉장히 짠편이다. 작가의 성별을 따지지 않지만, 남자작가가 어설프게 혹은 환상에 젖어 미화하거나 일반화한 이야기들에 심하게 투덜거린다. '이걸 정말 남자가 썼어?! 믿을 수 없어' 작가에는 넘버원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의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가 있고, '여자에 대해 개뿔도 모르는게' 작가에는 (미안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여자 이야기.인 단편집 '걸'의 오쿠다 히데오는?

오쿠다 히데오. 나사 몇십개 빠진듯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박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공중 그네'와 '인더풀'은 기대 이상이었다. 낄낄깔깔 거리는 와중에 왠지 치유되는 듯한 무겁지만 동시에 가볍고, 그렇지만 역시 가볍지 않고, 마지막 장에서는 후련했던 이야기들. 살짝 역겨울랑말랑 하는 섹시블랙코미디 '라라피포'  그리고나서 '걸'

걸. 표지부터 홀딱홀딱 깬다.
왠만해선 남의눈치 안 보지만, 지하철에서 보기 쪽팔리는 표지다! (뭐, 원서 표지도 만만치 않다는데 위안을 삼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근무년수 10년정도의 직장인.들이다. 삼십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는 나이대의 싱글녀들!('히로' 빼고) 첫번째 단편 '띠동갑' 에서 고사카 요코는 10년차 이상의 사원이 신입사원의 개인지도를 맡아 하는 '지도사원제' 로 회사가 들썩할 정도의 초킹카 와다 신타로를 맡게 된다. .. 그렇다고 이야기가 '아네고'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오쿠다 히데오가 아니게.
오래 굶은 그녀 앞에 나타난 깨물어주고 싶은 띠동갑 후배에게 연정을 느끼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요코. 신타로 옆에 바글거리는 여러종류의 여자들(날라리, 내숭, 왠지모르게 남자에게 인기가 많은) 의 묘사와 '내마음 나도 몰라 콩깍지' 의 여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제법 그럴듯하다.
 
두번째 단편 '히로' 왠지 귀여운 강아지 이름같은 히로는 30대의 나이에 관리자로 승진한 다케다 세이코의 동갑내기 남편이다. 월급도 세이코보다 적고, 직급도 낮고, 마음만은 편한 남편. 오디오 회사에 다니는 오디오광이다. 여자 상사.로서 나이많은 남자직원을 만나 갈등을 겪는 이야기.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들은 사실은 착하다. 혹은 여자 특유의 감수성과 융통성으로 현실을 끊임없이 포용( 혹은 합리화, 혹은 체념) 하는 것인가? 아무튼,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 노력하다가 폭발. 꽝!  '왜 남자가 화내면 벼락 쳤다고 하고, 여자가 화내면 히스테리 부린다고 해?' 
세번째 단편 '걸' 광고회사( 여기나 거기나 광고회사는 선망의 직업, 왠지 멋진 사람들이 일할 것 같은 일터인가보다) 다니는 유키코 이야기. 미워할 수 없는 '걸'타입의, 그러나 일은 딱부러지게 잘하는, 그러나 나이는 삼십대 후반이어버리는 오미츠. 를 보며 지나가버린 젊음과 그로 인해 공짜로 들어왔던 모든 것에 대한 강한 아쉬움, 불안, 등등에 관한 이야기. 클라이언트쪽의 제 나이에 맞는 복장의 점잖은 여자 히로코.가 대조적인 커리어우먼 스타일로 나온다. '신디로퍼도 그런 노래 불렀잖아요. Girl just wanna have fun' 이라고'  주인공도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지만, 읽는 나도 한심하다고 여기지만, 모든 여자에게는 그 안에 '걸girl'있다. 작은 부분일지라도.
 
네번째 단편 '아파트' 잘나가는 보험회사 홍보부의 거리낄것 없이 대찬 유카리 이야기.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독신여성들이 '아파트' 사는 것이 붐이다. '아파트'를 사면 왠지 '독신'을 선언하는 것만 같아서 망설이는 여자들. 내 주변.에는 없지만, 역시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유카리.가 아파트를 사기로 결정,결심,집착하고나서 갑자기 안대차지고, 눈치보게되고, 회사에 붙어 있기 위해 평소에 흉보던 남자직원처럼 물렁거리게 되며, 가족과 아파트 대출금을 짊어진 남자직원들을 다시 보게 된다. 아파트냐, 자존심이냐, 그녀의 최종 선택은? '아파트 구입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확보해야 할 것이 현재의 안정된 지위와 수입이었다. 앞으로는 '언제든 때려치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기가 겁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먹여살려야 할 가족도 주택융자도 없는 속편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워킹맘'
말그대로 일하는 엄마. 근데 초등학교 1학년을 둔 이 엄마 이혼녀다. '독신이죠.' 다카코는 턱을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하지만 이혼녀에요. 그리고 애엄마고요. 이상해요?' '아,아니, 그런게 아니라....' 남자들이 순식간에 기가 죽으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아기를 나으면서 10년영업맨 생활에서 총무부.로 갔다가 다시 영업부로 복귀해서 열정적으로 일하고자 한다. 나 이이야기가 왜이리 와닿는건지;; 일본에서 부모가 일하는 경우 아이를 봐주는 '도우미 아줌마' 그리고 지역자치회에서 하는 클럽활동.등이 우리나라보다는 많이 발달해있음을 볼 수있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터놓고 직원들에게 이야기하는 다카코. 다카코와 부딪히는 판매부쪽에는 해외에서 돌아온 같은해 입사의 싱글녀.가 있다.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 역시 재미있다.  
 
공중그네의 각장 마지막에 느꼈던 후련함과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다 싶은 여자들에게 갑갑한 상황( 그러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착하니깐 항상 우군도 함께 등장해준다. 그러니깐 픽션이지. 논픽션이 아니라)
해피앤딩에 사실은 다 착한놈. 뭐 이런 설정이긴 하지만, 그 재미에 감정이입할수록 해피엔딩에는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에서 염세나 한낮의 우울이나 뭐 그런걸 기대하고 읽는건 아니잖아?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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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6-09-2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표지에 그려진 수염은 직접 그리신 건가요? 아니 이런, 하이드 님에게서 "마사루"의 포쓰가!

하이드 2006-09-2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을 수가 없었어요. ^^; 수염이 있으면 멋질 것 같았거든요. 훨 멋지죠?

바람돌이 2006-09-2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오쿠다 히데오에 완전히 필 꽂혀 있는데.... 이 책도 지금 보관함을 펼칠때마다 손가락이 달달달 한다죠.....
저는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도 무진장 재밌던데요. ^^

하이드 2006-09-22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로 잽싸게 사놓긴 했는데, 안즉 못 읽었어요. ^^ 기대중입니다.
이 책, 남자들이 읽으면 어떤 리뷰나올까 무지 궁금해요( 물론, 여자들의 리뷰도.하하하)

moonnight 2006-09-2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늘 막 읽었는데 하이드님의 리뷰가 올라와서 반가와하고 있던 중. 그나저나 수염 정말 멋지게 잘 어울리네요. ^^

하늘바람 2006-09-2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원서 표지도 만만치 않네요
저도 오쿠다히데오에 필 꽃히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