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도 좋고,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에게도 좋습니다.
책선물이란 어렵습니다만, 가끔, 이렇게 이 책이라면. 싶은 책이 있습니다.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 가 바로 그렇습니다.
저자는 독일인인데, 해설을 보면, 독일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독어 교재로 쓰였다가 한 독문과 학생이 번역한 번역본이 돌아다니다 이렇게 마침내 <곰스크로 가는 기차> 라는 제목을 달고 저자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소개될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번역본이 돌아다닐 때, 이 작품은 어느 PD 의 눈에 띄어 단편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보지 못했지만( 채정안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가 지닌 강력한 보편성 덕분에 이 작품은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야기가 되었지요.
뭐, 이야기가 단순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한 남자가 곰스크로 가는게 꿈이어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중간에 내렸다가, 마을에 안주하여 결국 곰스크로 가지 못했다. 라는 이야기. 곰스크로 가지 못한 이유는 아내와 아이였다. 곰스크로 가지 못해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 것이 그의 선택이고, 운명이다. 뭐 이런 이야기?
이 단순한 이야기는 술안주거리로 딱입니다. 누구에게나 곰스크가 있고, 지금은 없더라도, 한 번쯤 있었고, 곰스크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아내와 아이가 있을테니깐요. 혹은 곰스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곰스크가 아니었거나, 막상 곰스크는 그렇게 좋지 못하여 고생 직싸게 하면서 그 때 거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아직 곰스크를 꿈꾸는 중이라, 기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은 입장입니다만. 이 전과 이 후와 그리고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다가 이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여기 소개된 단편들이 모두 '곰스크..'처럼 강력한 우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뭔가 인생의 교훈이랄까. 그런걸 이솝우화식이 아닌, 일상우화.. 라고 할까요? 여튼, 이 책은 읽는 독자에 따라 그 주제가 각각인 그런 책입니다. 아마 '곰스크'를 읽고 해석하는 것도 각각일테고, 그 외의 다른 단편들에 대한 해석도 다들 각각이지 싶습니다.
이 작품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곰스크..' 외에 '럼주차' 라는 마지막 단편이었습니다.
프리슬란트 사람들은 차를 즐겨 마시며 럼주도 또한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차에 럼주를 곁들인 럼주차다. 키가 큰 보이 에센 역시 럼주차를 제일 좋아한다. 그도 프리슬란트 사람이니까....
로 시작하는 단편이에요.
저자가 프리슬란트 사람이었다고 해요. 이 곳엔 외지 사람들은 모르는 밀물과 썰물과 풀덤불과 모랫톱이 있습니다.
썰물 때는 풀덤불을 따라가야 안전하고, 풀덤불 길을 따라 건너편으로 가려면 절대로 제시간에 도착해야 합니다. 밀물이 격렬하게 단숨에 들어오므로 제시간에 출발해야 하지만, 외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프리슬란트 사람들은 '너무 늦은 때'가 언제인지를 압니다. 출발해야 할 때와 출발하면 안 되는 너무 늦은 때를 압니다. 보이 에센도 압니다. 왜냐하면 그도 프리슬란트 사람이니까요.
보이에게는 럼주가 있습니다. 건너편의 동생집에 차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듣습니다.
럼주차가 마시고 싶습니다. 프리슬란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럼주차. 조금 늦은 것 같습니다.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습니다. 출발합니다.
동생네 집에서 차를 얻어 옵니다. 조금 많이 늦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서 럼주차를 얼른 마시고 싶습니다.
자전거를 빌려 서두릅니다. 자전거 바퀴에 펑크가 납니다.
이제 ..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격렬하게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 한 가운데에 서서 담배를 피웁니다.
달과 이야기를 하며, 럼주차를 생각합니다.
여기가 끝은 아니구요, 끝 역시 여러가지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만, 일단 이런 이야기라는 정도만.
재미나요. 두 번 읽으면, 두 번 다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세 번 읽으면 세 번. 아침에 읽을 때랑 저녁에 읽을 때 또 다른 느낌이구요.
그러니, 선물하기 좋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요약 가능할 정도로 짤막짤막한 이야기에 가독성은 좋습니다.
가독성은 좋은데, 마음이 읽는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합니다. 사람에 따라 앞서 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음의 스위치 오프하고 살아가는 '일상' 이라면, 잠시 멈춰서서 일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희망이라던가 꿈이라던가 그런 공상이라던가 계획이라던가. 할 수 있을꺼에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지켜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그런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관한 페이퍼 '꿈을 잃은 당신, 그리고 꿈을 좇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