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도 안 되는 소프트 포르노 같은 중딩 몽정할 때나 떠올릴 것 같은 이야기로 메가베스트셀러를 만들다니 .. 라는 것이 1Q84를 볼 때 든 생각이었다.  

줄거리 옮기면 딱 그렇다니깐  

근데, 재미있다. 소프트 포르노 같은 소재라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키가 재미있게 이야기하니깐 재미있다.  

1권과 2권을 읽고, 3권을 사둔지 한참, 이제야 3권을 읽기 시작하고, '아, 맞어, 이렇게 재미있었지' 떠올리고 책 읽으며 혼자 웃고 있다.  

 

 아오마메가 은둔하면서 덴고를 찾는데, (엄밀히 말해 찾는다기 보다는 베란다에 의자 놓고 놀이터를 감시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라며 다마루가 준 책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다.  

 

 

 

 

 "그 밖에 뭔가 필요한게 생각나면 종이에 적어서 키친 카운터에 올려놔. 다음 보급 때까지 준비할 테니까."
"고마워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부족한 건 별로 없어요."
"책이나 비디오 같은 건?"
"딱히 원하는 게 생각나지 않는군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때?" 다마루는 말한다. "만일 아직 읽지 않았다면 완독할 좋은 기회일지도."

"당신은 읽었어요?"
"아니. 나는 교도소에도 간 적이 없고. 어딘가에 오래 은신할 일도 없었어. 그런 기회라도 갖지 않는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들 하더군."
"주위에 누군가 다 읽은 사람이 있어요?"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내 주위에 없는 건 아닌데. 다들 프루스트에 흥미를 가질 만한 타입이 아니었어."
아오마메는 말한다. "한번 해보죠. 책이 입수되면 다음 보급때 함께 보내주세요."
"사실은 벌써 준비해뒀어." 다마루는 말한다.  

프루스트가 뭐길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뭐길래 ㅎㅎ  

아마, 사강의 <지나가는 슬픔>에서 나왔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주인공이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여기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 

 

 

 

 

 

 

프루스트를 읽기로 한 아오마메  

다마루는 말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주의 깊은 성격이야. 현실적이고 참을성도 있어. 자신을 과신하지도 않아. 하지만 일단 집중력이 무너지면 아무리 주의 깊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한두 가지 실수를 범하게 돼. 고독은 산酸이 되어서 사람을 갉아먹어."
"나는 고독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오마메는 말한다. 반은 다마루를 향해. 반은 자기 자신을 향해. "외톨이지만 고독하지는 않아요."
전화 너머에 잠시 침묵이 고인다. 외톨이와 고독의 차이에 대한 고찰 같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잠깐 멈칫 외톨이와 고독의 차이가 뭐람?

그래서 이제부터는 '고독'과 '외톨이에 대한 이야기다.

고독2 [孤獨]   

[명사] 1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2 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
 
네이버에서 고독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헉, 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의 뜻이 있다니. 불공평해  
 
고독고독  

[부사] 물기 있는 물건이 마르거나 얼어서 단단히 굳어진 상태

이런 말도 있다.  고독고독해. 라고 쓴다고 한다. 훗 - 마르거나 얼어서 단단히 굳어지는 건 '물건'만은 아닐테다.
아, 난 오늘 초큼 고독고독해. 라고 말해도 말 된다.  왠지 귀여운 걸. 너무 귀여워서 고독고독한 걸 순식간에 잊어버릴만큼 말이다.  

'외톨이'의 뜻은 다른 짝이 없이 홀로 있는 사물을 말한다.  

아오마메처럼 세상의 모든 외톨이가 외톨이야~ 외톨이야~ 다리다리다라두~ 사랑에 슬퍼하고, 사랑에 눈물 짓는 건 아닐꺼다.  

외톨이지만 고독하지 않아요. 혼자 있지만,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 외롭고 쓸쓸하지 않아요.  

베란다 의자에 앉아 매일 똑같은 시간 핫코코아를 마시며 무릎담요를 덮고,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공원을 감시하며 프루스트를 읽을 수 있는 여자라면, 외톨이지만, 고독하지 않을게다. 암. 그렇고 말고.  

이렇게 생각의 나래를 펼치게 하니, 하루키에 끌리지 않을 수 없는거다.
무엇을 하든 멋져 보이고, 쿨해 보이는 사람이거나 세상 사람들이 지금, 어떤 것을 멋지고, 쿨하게 생각하는지 예민하게 캐치하는 사람이거나, 그렇게 보이게 잘 포장하는 사람이거나  

하루키는 지금 이 세상과 아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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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11-1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이 원래 그런 뜻이라고,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아니, 한문 시간이었던가?) 배웠던 기억이 나요. 이 페이퍼 읽으면서 오랜만에 다시 떠올렸네요.
원뜻과 상관없이, 외톨이지만 고독하진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외톨이는 아니지만 고독하다고 말하고 싶은 저보다 훨씬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프루스트는 인용되는 장면이 꼭 저런 분위기더라고요, 외톨이, 고독, 뭐 이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하이드 2010-11-10 09:33   좋아요 0 | URL
고아들은 다 고독한거네요.. 아..

저도 아오마메처럼 외톨이지만 고독하지 않아요. ^^ 근데, 아오마메는 사랑하는 덴고가 있잖아요? 그것도 외톨이인가? 싶었어요. 2권에서인가 아오마메가 덴고에 대한 사랑 표현하는 멋들어진 표현 보고 어디 적어 놓기도 했는데, 그럼 외톨이가 아닌거 아닌가. 갸우뚱 -

검은숲길 2010-11-1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1Q84 3권까지 다 읽었어요, 읽으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었더랬죠 ㅎㅎ

하이드 2010-11-1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란다 의자에 앉아 프루스트를 20쪽씩 읽는 거 괜찮아 보이는데 말이에요.
하루키답지 않게 너무 긴장감 넘치는게 흠입니다. 아 놔, 덴고랑 아오마메랑 빨리 좀 만나라고 하면서 읽고 있어요.

2010-11-11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10-11-11 04:23   좋아요 0 | URL
짜게 식은 커피 마시며(강기사가 어제 커피라며 주고 갔어요) 춥고, 허기진 (배가 고픈건 아닌데, 허기져요.) 상태로 1Q84를 읽고 있어요.

침대에 기대서 전기장판 틀어놓고, 알라딘 담요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어깨가 늘 시리거든요. 팔꿈치까지도 ) 왼쪽머리맡엔 고양이가 딱 붙어 있고, 뜨거운 핫초코(델문도에 파는 초코조각으로 만든) 마시며 책장 뒤적이는 거 .. 생각해봐요.

덴고는 없지만, 말로가 있어요. ^^

토토랑 2010-11-1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투리로~ 꼬똑꼬똑하다 란 말을 쓰는데..
그게 '고독고독하다' 란 표준어가 있었군요 ^^;;
(물기 있는 생선을 몇일 널어서 말리면 겉이 마르잔아요..
그런 상태를 꾸득꾸득하다 내지는 꼬똑꼬똑하다 그러거덩요..)
하루키와는 상관없이 또 하나 배워갑니다.

하이드 2010-11-1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꾸득꾸득하다는 말은 들어본 것도 같아요. 꼬독꼬독 아니고 꼬똑꼬똑하다는건 왠지 좀 귀여운 발음이네요. ㅎ

그러고보니 고독고독하다는 말의 뜻이 와닿습니다.
저도 좋은거 배웠네요 ^^

moonnight 2010-11-1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는 물론 못 읽었지만 ^^; 제게는 비슷하게 와닿는 것이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에요.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고 있는데 잘 안 되네요. 입원할 일이 있을 뻔 해서 읽을 마의 산을 빼뒀는데, 괜찮다고 해서 다행이다. 하면서도 왠지 어딘가 서운했다는 호호 ^^;;;;;;;

좌우지간, 하루키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

하이드 2010-11-1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의 산. 하면 서경식이 마의 산 읽다 읽다 결국 못 읽었다는 거 생각나요. 잘 안 넘어가는 책들 중에서도 특히나 안 넘어가는 책이 사람따라 있는 것 같습니다. ^^ 저도 뭐 있었는데, 딱 기억이 안 나네요 헤헤

입원..하지 말고! 여행 갈 때 가져가서 읽어요. 2010년 마무리도 몸 건강히, 2011년도 몸 건강히!

비로그인 2010-11-1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소설을 읽고있으면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되요.. 고독을 잘 표현하는 소설가인것 같아요..
주인공의 일상에서 언제나 고독이 묻어 있으니까..

집요정 2010-11-2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최근에 1Q84 1,2권을 읽었는데 (아직 3권은...)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이 '하루키는 과연 좋은 작가일까' 였어요. 재미는 있는데,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이 고도의 테크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사실 조지 오웰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흠흠~~ 결말이 궁금해지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