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고, 즐기고 싶은데 안 되는 것 두가지가 스시와 스키다.
스키는 워낙 겁이 많고, 위험한 장난, 놀이 다 질색하므로 싫어할만하다. 예전 회사 다닐때, 보스가 스키광이라서, 야간스키까지 끊어서 꾸역꾸역 따라다닌적이 있는데, (그러니깐, 시도는 해봤다.) 스키를 이고 지고 내려오는 것도 한두번이지..
여전히 스키장에 가는건 나쁘지 않다. 좋은 사우나도 있고, 밤에 모여서 니나노 술 마시고, 담날 아침 스키족들 발목잡기라든가. 하는건 재밌다. 스키장 가는 길, 오는 길에 맛집도 많고. 순수하게 스키를 즐기고 싶었던 마음은 몇번의 엉덩방아 이후, 뭐, 그런 불순한 이유만 남았다.
스시. 전혀는 아니지만, 나는 스시 안에 있는 와사비에 약하다. 코끝이 빨개지며 눈물을 흘리고, 코를 훌쩍이는 식사파트너를 누가 원하겠는가? 보기에 그 정도고, 속으로는 머리도 띵하다. 나는 120% 즐기고 싶은데, 한 50% 정도밖에 못 즐기는게 스시다. 어릴적 김치를 못 먹던 내가 지금은 김치는 나의 힘. 이니, 언젠가 살다 보면 40대나 50대쯤 와사비 체질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저 위에 스시와 스키와 비슷한 느낌으로
내가 좋아하고, 즐기고 싶은데 안 읽히는 작가가 둘 있다. 커트 보네것과 이탈로 칼비노이다.
내가 위에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다시 얘기하는데, 내가 스시와 스키와 커트 보네것과 이탈로 칼비노를 좋아하고 싶은 것은 '멋있어 보여서' 이다.
지금도 읽고 있는 커트 보네것(<제5도살장>을 읽고 있다. )
앜! 이게 무슨 얘기야. <고양이 요람>읽을때도 비슷한 느낌이었고, 꺼내 놓은 <타이탄의 미녀>읽어도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인간은 여러가지 시간에 동시에 공존한다. 오케이. UFO가 와서 납치했다. .. 음. 오..케이.
애써 아포리즘을 찾으려고 기를 쓰고, '재밌어, 재밌어' '멋져, 멋져' '꺄, 보네것 옵빠 짱!' 세뇌를 시켜도
자꾸 불쑥불쑥 '이게 뭐야' (구라 아저씨 버전) 라는 생각이..
엊저녁부터 이런 자기분열을 겪으며 심히 괴로워하고 있는데,
오늘 신간을 확인하다보니,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가 번역되어 나왔다.
나는 커트 보네것의 책도 원서 번역본 가릴 것 없이 많지만,
이탈로 칼비노의 책도 영문판, 번역본 할 것 없이 많다.
이 책도 물론 가지고 있다. <Why Read the Classic>이란 제목이 만만해 보였던 어느날,
술렁술렁 읽었는데, 번역본의 목차를 보니 (영문판의 목차를 안 읽었거나, 읽고 나서 기억에서 묻어버렸거나 둘 중 하나다.) 거의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강의> 수준이다.
무튼, 기억은 가물가물해도 별로 어렵다는 느낌 없이 읽어나간 책이었는데, 번역본은 왠지 어렵다.
가격이? 표지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표지.
만만해 보이지 않는가? ... 않나? -_-a
이 책은 그렇다 치고, 이탈로 칼비노 역시 재밌게 읽고 싶은데, 맘대로 안 되는 작가다.
열린책들 미스토 노know시리즈에서 <우주만화> 나왔을때 케흥분했다. (혹은 한 척했다.)
현실은?
한 열두번쯤 앞에 열장 읽다 던져버렸다.
어제 책정리하다보니, 영문판은 한 여덣아홉권쯤 되는 것 같다.
보면서, 아, 읽지 않은 이탈로 칼비노 디게 많네, 생각하고 좀 짜증스러웠는데,
'언젠가 읽을 안 읽은 책'과 '앞으로 안 읽을 것 같은 안 읽은 책'은 다르다. 암. 다르지.
후자는, 미안하지만, 내 서재에서 썩고 있는거다. 미안해요 칼비노 할아버지!
아마도 난 앞으로도 누군가 커트 보네것이나 이탈로 칼비노 이야기를 한다면,
'음 그 작가 좋지.' 라던가, 조금 더 솔직하게 '독특하지.' 내지는 '잘 안 넘어가긴 하는데, 읽고 나면 여운이 많이 남지' (그 여운은 아마, 더럽게 안 읽히네, 내지는 뭐 어쩌라고, 이게 다야? 정도겠지만)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책을 왜 그렇게 읽어. 할지 모르지만, 위의 두 작가는 뭐 좀 그렇다. 커트 보네것을 읽는 사람 좀 멋져 보인다. 이탈로 칼비노를 읽는 남자한테 반할지도 모른다.
아.. 나 커밍아웃했으니, 이제 내가 이탈로 칼비노나 커트 보네것 찬양하면, 속보이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