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요즘 뒤적이고 있는 미술책 두권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와 학고재에서 나온 이주헌의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인데, 두 권다 도판이 정말 훌륭하다.양적으로 질적으로 훌륭하고, 평소 많이 보지 못하던 그림들이 나온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러시아 미술은 내게 낯선데, 그 드라마틱함과 스토리텔링이 흥미롭다. 위의 그림은 콘스탄틴 플라비츠키가 그린 <타라카노바 황녀>이다. 프랑스 국적의 타라카노바는 자신이 결혼하지 않은 여제 엘리자베타의 숨겨진 딸이며 진정한 제위 계승자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했고, 화가난 예카테리나 여제는 그녀를 러시아로 데려와 감옥에 가둔다. 비운의 황녀는 그해 홍수가 났을 때 침수된 옥에 갇혀 수장되었다고 한다.
침대위까지 침범하기 직전인 물빛은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인하여 더욱 긴박하게 보인다. 감옥 안의 쥐들 역시 물을 피해 침대로 올라와 있고, 타라카노바 황녀는 침대에 올라 선채 벽에 등을 대고 허공을 바라보며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빛에 의해 강조된 양털 이불과 그녀의 하얀 드레스와 드러난 어깨와 가슴의 피부색은 그림자진 그녀의 회한어린 얼굴 반쪽과 등 뒤의 그림자의 대비로 인해 더욱 극적이다. 비정한 여제와 비운의 황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