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를 읽고 있다. <아임 쏘리 마마>에서 식겁하고, <아웃>을 읽고 감탄하고, 이제 <다크>를 잡았는데, 그 건조하고 강력한 첫페이지( 나는 언제나 첫페이지의 주문을 믿는 편이다)

나이 마흔이 되면 죽을 생각이다. 이제 서른여덟하고도 두 달을 살았으니 이태도 남지 않았다. 방금 틀 안에 부은 콘크리트가 점점 굳어 가듯 내 결심도 하루하루 물기와 거품이 빠지며 굳어 가고 있다. 죽기로 작정을 한 뒤 마음이 편안해졌다. 전보다 더 밝고, 그리고 꿋꿋하다. 무슨 일이든 긍저적이다. 하지만 내겐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한 목적 따윈 전혀 없다. 필요도 없다.

책의 비닐을 뜯지도 않았던 <다크>를 읽을 마음이 든 것과 비슷한 시기에 동생의 부대에 면회를 갔고, 동생에게 그간 보내줬던 책들을 박스에 가득 담아 들고 왔는데, 마침 그 안에 내가 이전에 샀다가 버리듯이 천원시장에 내놓았던 <아임쏘리마마>가 돌아와있다. 그녀의 다른 작품인 <잔학기>와 함께. 나는 동생에게 처음부터 나는 '기리노 나쓰오'를 사지 않는다. 고 말했고, 이제 내가 사지 않는 작가(그러나 동생이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는 기리노 나쓰오에 더해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까지 왔다. 무튼 결론은 그 찜찜한 책이 돌아왔다는 거. 그리고 <다크>가 내가 굳게 믿는 첫페이지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아임쏘리마마>와 같은 찜찜한 책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기리노 나쓰오 책에서 못견디게 혐오스러운 주인공류는 <아임쏘리마마>의 아이코. <아웃>의 구니코. 그리고 <다크>의 히사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주 추하고 귀신보다 더 무서워서 현실에서도 허구에서도 도무지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

그런 인물을 창조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리노 나쓰오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웠다.

120쪽 정도 읽었다.550쪽 정도의 책이니 1/5 정도 읽었나. 참을 수 없는 히사에의 등장에 못 참고 서지 정보를 찾아본다. <다크>의 주인공인 미로는 뜬금없이 한국으로 건너가서 광주의 학살 속에서 서지호라는 한국 남자를 만난다??

왠만하면 시작한 책을 덮지 않는 나이니, 아무리 찜찜한 캐릭터가 나와도 어찌됐둥 읽어나가기는 할 것 같다. 이 어두운 책을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와 멀티리딩을 해야한단 말인가?? 히사에라는 기분나쁜 캐릭터 말고도, 도모베라는 오카마(게이)가 나온다. 이상하게 남자 캐릭터가 비슷하게 혐오스러운 여자 캐릭터들에 비해 덜 혐오스럽다.

그간 히가시노 게이고를 '여자를 배려하지 않고, 여자를 모른다' 라고 비난해왔는데, 문득 기리노 나쓰오가 '남자를 배려하지 않고, 남자를 모른다' 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잔인할정도로 까발려지는 어떤 여성성(?)에 비해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어딘지 비현실적이다. 어딘지 '이상향'에 가깝거나 '도구' 에 지나지 않는 캐릭터. 그것은 내가 그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보고 그 책 속에 등장하는 '여자' 에 대해 느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뭐, 이런 아무도 안 알아줄 작은 깨달음을 갈무리하며, <다크>를 읽긴 읽어야겠는데...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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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8-1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기리노 나쓰오의 글을 한번도 읽지 않았고 '아웃' 한 권 사다놓은 상태인데,
점점...이거 읽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든다는...ㅜㅜ

오차원도로시 2007-08-1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기리노 나쓰오를 꽤 좋아하는 편이에요.그녀들..아이코나 구니코 같은 괴물같은 그녀들과 함께하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왠지 나 자신을 한번 돌아 보게 만든다고나 할까? 왝 소리 나올정도로 끔찍한데 신작이나오면 손이 가네요. 그로테스크 읽고는 꿈도 꿨었죠;;

하이드 2007-08-1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읽다가 도저히 못견뎌 '옮긴이의 말'을 봤는데, "<그로테스크>의 어둠, <아웃>의 절망, 그리고 <아임소리 마마>의 흉포한 암흑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습니다"라고 하네요. 서진호가 그날의 광주를 방문하는 장면을 읽고 있는데, 정말 묘한 기분입니다.

Apple 2007-08-1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다크는 그간의 기리노나쓰오의 소설과는 좀 다르다는..^^;; 지금까지 어느 소설보다 하드보일드에 가까운 느낌이랄까...뭔가 감정적으로 와닿는 폭력적인 느낌이 없어서(?)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기리노 나쓰오의 비호감 주인공중에 가장 강력한 애가 하나 빠졌네요. <그로테스크>의 가즈에.
저는 소설보면서 얘가 정말 소름끼치도록 싫었어요.ㅠ ㅠ 상황을 봐서는 왠만하면 불쌍하게 봐줘야할 것같은데, 너무 싫어서 동정하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이었어요.

Beetles 2007-08-1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그로테스크...가즈에..저 또한 너무 싫어서..기억속에 박박 지우고 싶은 인물이예요 넘기괴하고 강렬하게 혐오스러워...잊혀지지 않지만..그런데 전 그로테스크를 임신중에 읽었다는..-_-;; 이젠 기리노 나쓰오 멀리하고싶어요

하이드 2007-08-1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전 아직 <그로테스크> 안 읽었어요. 분명히 샀는데, 제 서재 4차원 구멍으로 사라져버려서 못/안 읽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