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프라다백에 관한 진실
혹시 이렇게 생긴 백팩을 기억하세요?
한때 세계 여성들을 열광시켰던 프라다 제품입니다.
가볍고 실용적이고 질기고 장점이 많은데 값은 엄청 비쌉니다.
시꺼먼 보자기감같은 천으로 만든 백이 왜 이리 비쌀까 하는 생각이 들지요.
여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세계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계의 수퍼파워’라고 불리지요.
그런데 얼마전 뉴요커라는 잡지에서 이 사람에 관한 기사를 읽다보니,
프라다는 디자이너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하는군요.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64/64/1/miuccia.JPG)
프라다는 말합니다.
“나는 피상적이고 멍청한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 일종의 열등감을 느껴요.
똑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패션을 싫어한다면서 그런 시간낭비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수퍼-똑똑한 사람들에게 제가 물었어요.
그럼 패션은 도대체 왜 그리 인기가 있는거냐고. 아무도 대답을 못해요.”
프라다는 계속 말합니다.
“나는 옷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걸 알아요.
나는 그저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입니다.”
프라다의 이력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프라다는 정치학 박사이고, 젊은 시절에는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답니다.
그런데 워낙 옷을 좋아하는 프라다는
그 시절에도 청바지는 싫어해서, 하이힐 신고 빈티지 원피스 입고 시위에 나섰답니다.
전력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만,
전직 공산주의자이자 정치학 박사가 만들어주는 사치품이라... 어째 안 어울리는 것 같지요?
프라다는 학위를 받은 후 5-6년 정도 무언극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집안의 부름을 받아 가업에 뛰어들지요.
프라다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고가의 가죽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프라다는 태어날 때부터 소위 ‘명품’에 둘러싸여 자라났다고 합니다.
프라다의 인터뷰를 읽어가면서,
이 여자가 두 아들 키우며 무시무시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 키우는 지난 15년 동안 ‘재미’는 포기하고 살았다는 거에요.
자유시간 생긴다고 밤에 나가 논 적도 없고 여행 다닌 적도 없답니다.
패션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그리고 유행을 이끌어가기 위해 죽도록 일하다가,
저녁 때는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웬지 배신감이 느껴졌습니다.
프라다가 내놓은 값비싼 물건에 홀려서 빈지갑 털어가며 비싼 물건을 사고,
다달이 밀린 카드값을 갚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나잖아요.
프라다는 멋있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 열망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소위 명품이라는 것들-명품이라 부르든 사치품이라 부르든-,
워싱턴에서 제가 일하는 동네에서는 이런 상표가 달린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다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명씨’ 핸드백을 듭니다.
실제로는 더 비싼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적어도 일터에서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과 관련해서,
‘핸드백’에게 발언권을 주지는 않습니다.
아니, 발언권을 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명품백이라는 걸 들고 다니면, 웬지 ‘나 열등감 있소’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생각되지요.
겁나게 비싼 핸드백을 들고 다니면 폼나고 부티나게 여겨지는 게 아니라,
“도대체 얼마나 벌길래 저런 걸 사나”하는 의문부터 먼저 자극합니다.
명품백을 다달이 한개씩 사도 좋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버는 제 친구는,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왜 그런 데 쓰냐. 내가 돌았냐”고 합니다.
자, 여기서 알랭 드 보통이라는 영국작가를 초대하도록 하지요.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64/64/1/botton.JPG)
(보통은 제가 ‘온 러브(On Love)’라는 소설을 읽은 후부터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인데, 이 사람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삽니다.
그 동안 무슨 신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너무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보통이 이번에 낸 책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Status Anxiety)’이라는 책입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런 겁니다.
모든 성인은 두 개의 큰 사랑에 의지해 살아갑니다.
첫째는 남녀간의 사랑,
음악과 문학을 먹여살리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축복받는 사랑입니다.
두번째는 우리가 좀처럼 입밖에 내 말하지 않는 은밀한 사랑,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사랑,
다시 말해서 타인으로부터 오는 인정과 존중, 관심입니다.
![](http://blog.chosun.com/web_file/blog/64/64/1/bookb.JPG)
사람들이 돈과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것도,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사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따라오는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이 작가는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또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괴롭다고 말하지는 않지요.
이런 것을 내놓고 말했다가는 시기심이 강하다든지, 유치하다든지,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멸시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갈구하는 이 사랑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으로부터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과 똑같이 보편적이고 중요하며
우리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는 고통도 준다는 겁니다.
실연을 당했을 때 인간이 망가지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타인의 사랑에 의존하는 우리의 자아는
끊임없이 외부의 사랑을 주입하지 않으면
바람이 빠지고 마는 풍선과 같습니다.
바늘 끝에 살짝 찔리기만 해도 뻥 터져버리고 말지요.
아시지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던 자신감이 다른 사람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단박에 날아가버리는 어이없음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은 현대인들의 야망이 가져온 부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쉽게 좌우되지 않습니다.
귀족이 평민 되기도 어렵고, 평민이 귀족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사회적 지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그 성공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결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일정 수준을 달성했다 해도
그 지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므로 사람들은 늘 불안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원하는 대로 안되니까 더 어렵고 괴로운 겁니다.
보통은 현대인들이 사회적 지위에 대해 그토록 불안해 하는 것은
현대의 사회적 지위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첫째, '재능'=하지만 재능이라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실현돼주지 않는다.
둘째, ‘운’=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므로,
우리는 불운이 실패의 이유라고 말할 수도 없다.
셋째, '고용주'=우리의 운명은 고용주의 선호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넷째, '기업의 이윤생산능력'=큰 기업에 고용된 사람일 경우, 직업적인 안정이 내부 정치 뿐 아니라 시장상황,
결국 그 기업의 이윤창출능력에 영향을 받는다.
다섯째, '세계경제'=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기업과 고용인도 결국은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영향받는다.
이래저래 속터지는 분석이지요?
보통은 온갖 복잡다단한 철학과 심리학, 경제학 이론 등을 끌어들여
아주 유머러스하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괴로워하는 현대인들의 고민을 풀어갑니다.
원래 이 사람은 굉장히 웃기고 너무나 재치가 있거든요.
이 책을 여기저기 들쳐보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노력해서 성공을 이뤘을 때 비로소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분에 넘치는 명품백을 사면서 뭔가 위로받았다면 착각이라는 거니까요.
겉에다 무엇을 치장하든 결국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거니까요.
여하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명품백 몇개를 무기 삼아 살아가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험한 곳이라는 거지요.
설사 그것이 1000달러가 넘는 프라다 백이라 해도.
출처:14번가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