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네 집에서 자고 돌아왔다. 

사촌언니들과 <코렐라인 비밀의 문>을 보고 (재미있기도 하고 좀 끔찍하기도 했다나!) 

집에서는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샤워도 하고 잘 자고  

고모가 입혀주신 예쁜 옷을 입고 유치원에도 잘 다녀왔다. 

작년 여름에는 외갓댁에서 이모와 사촌오빠,언니들과 함께 있었는데도 

한밤중에 울며 돌아온 터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건만 잘 자고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서 하루 자고 유치원에 가서 또 고모네서 자고 싶다고 다시 하루를 자고  

학교에서 언니들이 참가하는 리코더 연주대회에 같이 구경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롱이를 만나서 초롱이네에 놀러갔다가 늦은 밤 쏟아지는 비에 발이 묶여서 

엉엉 엄청나게 울었으나 결국 집으로 오지 못하고 이틀을 이어서 외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바로 집으로  

온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도 보고싶지 않고 다시 말짱해져서  

빨간 원피스에 머리도 양갈래로 예쁘게 땋고

쌍계사 어린이 법회에 다녀와 다시 고모네로 가서 학교 운동장에서 실컷 놀다가 

오후에 이젠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고 사촌오빠가 차를 몰고 내려갔지만 

자동차를 수리해야 하는 바람에 화개장터 카센터까지 따라가서 기다리다가 

저녁에 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헉헉헉!

 

- 밥은 아무데서나 먹어도 잠은 꼭 집에서 자야하는거야 - 라고 미리 엄포를 놓아야 할 지경!! 

고모나 초롱이 엄마나 이제 미니는 다 키웠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역시나 유치원에 안 가겠단다. 

그럴려면 아예 다니지 말라고 했더니 

" 방학도 얼마 안 남았는데 방학 때까지는 가지 말지 뭐!" 라나? 

 

 

달리기 선수가 가장 되고 싶고, 야구선수도 되고 싶은데 

자기가 야구선수가 되면 엄마 아빠는 집에서 텔레비젼으로 보지 말고  

야구장에 직접 와서 응원해 달라더니 어제는 또 다른 일이 하고 싶단다. 

그건 바로 약 달이는 일! 

약 처방하는 일에는 관심 없느냐고 했더니 그건 재미없어 보인단다. 

약 달이는 일도 재미있기만 한 건 아니라고 

이 더운 여름 날 뜨거운 불 앞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거라고 주절거리는 엄마를

" 추운 겨울 날 뜨거운 불 앞에 있어 봐! 따뜻하겠지?" 

한 마디로 제압해버렸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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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다보니  

아랫마을에 내려가 어르신들께 막무가내로 행동해서 죄송하긴 했지만  

손주처럼 귀여워하고 이해를 해주시니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신고 나갔던 신발들과 입고 나갔던 바지를 아무데나 벗어 던져놓고 오는 바람에 

아랫마을 할머니가 챙겨서 가져다 주시는 것이 한 보따리였고,

축대 아래로 집어던진 땔감용 나무토막이 거짓말 안 보태고 1톤 트럭 한 대분이 되어서  

하루는 날을 잡아 주워서 싣고 올라왔지만 그래도 참았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외할아버지 근심이 컸지만 

웬만큼 쏘다니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길래 가두지는 않았다. 

 

그랬는데 세발자전거를 타고 한낮의 땡볕 속에서  자동차 길을 따라 2~300m를 가서  

근처 산길 중에 가장 가파른 길을 자전거에 앉아 한 발, 한 발 내려가는 것을 아빠에게 들켰다.

아직 핸들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이 발 한 번 잘못 놓으면 수십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국이니

이제는 목숨이 달린 문제라 밖으로 통하는 문 3군데에 모두 걸쇠를 달았다.   

 

이젠 새벽에 아빠가 밭일을 하거나 닭을 돌볼 때 주위를 맴돌거나, 

하루에 두 세번 할머니 댁에 올라가 퍼즐을 가지고 놀거나 낮잠을 한 숨 자거나 

집에는 없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가끔 얻어내거나 하는 것이 집 밖 나들이의 전부다.

날씨가 좋으나 흐리나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엄마와 동생과 무료한 날들이다. 

 

엊그제는 방학을 한 승욱이 형도 오고, 며칠 내린 비도 개고,  

아침이라 시원한 바람도 한 줄기 부는데다   

거의 가택연금 상태로 지낸 날들이 오래여서 불쌍한 생각도 들길래  

가봐야 아랫마을 아니면 할머니 댁 마당이리라 편하게 생각하고 문을 나서는 걸 잡지 않았다. 

저녁에 들이닥칠 손님들이 있어 오래간만에 청소하느라 바쁜 마음에 잠깐 잊고 있다가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소리쳐 불러보아도 기척이 없어서 찾으러 나서는데 

출근한 아빠가 전화를 했다. 태민이 어디 있느냐고,, 이웃집 나라엄마가 전화를 주셨다고,, 

화장실에 다녀오니 거실에 들어와 있더라나?  

 

또래가 사는 이웃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네 집은 산길을 따라 30분 쯤 걸어내려가야 하는 곳이다. 

하루 전에 예약하면 나라아빠가 철마다 산에서 따 온 나물무침과  

버섯을 넣어 국물이 맑은 백숙으로 깔끔한 상을 차려내는 나라네서 손님들과 저녁도 먹고

무엇보다 갇혀지내는 아이들 산책도 시켜줄 욕심으로  

그 전날 저녁에 아이들 손을 잡고 나라네까지 걸어내려가긴 했다. 

만나는 산딸기 나무마다 딸기 하나씩 따 먹고 다리는 좀 아팠지만 신나게 걸었다. 

나라네집 냉장고를 열어젖히고 요구르트 한 줄을 얻어내기도 했고 

나라가 가진 블럭을 차지하려고 한 바탕 눈물바람도 했다. 

그것들 중에 무엇이 좋았던 모양인지 집을 나서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던가보다. 

 

산길을 따라 하염없이 죽 내려가지 않고 

가다가 샛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다 묶여있긴 해도 들머리에 큰 개가 짖어대는 나라네로 들어가 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승욱이 형이 미니누나와 함께 가서 데리고 왔는데 품에는 나라 블럭을 안고 왔다. 

몇 개를 탑처럼 쌓아서 손에 들고 내달아서 뒤에선 나라가 펑펑 울었단다. 

 

아뭏든 산길을 혼자서 30분 이상 주저하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덕분에 

태민이는 얼마동안 더욱 강력한 가택연금 상태에 놓일 것이다. 

아이가 다치거나 죽는다는 상상도 무섭지만, 사라져버린다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창 밖으로 푸른 나무와 산들이 햇살아래 내다보이니 집안에 갇힌 아이들이 더 안타깝다. 

 

선선할 무렵 재민이를 업고 함께 산책을 나선다고 해도  

한 번 잡은 발길을 적당한 곳에서 집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꼼짝없이 함께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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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27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과 더불어 사는 줄 알았더니 심각한 가택연금 상태군요.
아이의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없을 것 같아 더 안타깝네요.
누가 종일 붙어 다닐수도 없고...
 

세상에서 제일 이쁜 아기는 우리 재민이라고 노래를 하는 미니,  

할머니가 재민이에게 한 말을 억양까지 그대로 살려서 재현한다. 

" 재민아~! (얼굴을 들여다보고 어르며) 뽀뽀를 해삐리까?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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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들기 전에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꼭 읽어달라고 했다. 

부엌에 남은 일이 너무 많아서 아빠 옆에 가서 기다리면 얼른 마치고 가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엄마랑 같이 간다고 옆에 앉아서 기다린다. 

눈꺼풀도 무겁고 몸도 건들건들 너무나 졸려 하면서  

이러다가 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잠들겠다며 언제 끝나느냐고 자꾸 묻길래  

그러면 아빠한테 읽어달라고 해서 좀 듣고 있으면 엄마가 올라가 마저 읽어준다고 했더니  

" 아빠가 그럴 사람이야? " 

라고 힐난하듯이 거의 소리를 질렀다. 

'엄마도 참 새삼스럽게 몰라서 그러는거야?'라는 뉘앙스가 정확하게 실린 말투와 억양이라니! 

 

이 말을 전해들은 아빠는 아니나 다를까 

" 포기는 빠를수록 좋은거야! " 란다.   

언제쯤이면 미니를 데리고 천왕봉에 같이 갈 수 있을까 이런 것만 고대하지 말고

가끔 그림책 한 권 쯤 읽어주는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까? 

일곱 살이 되도록 아빠가 읽어준 책은 억지로 2권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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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24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아빠의 인간성!^^
염장성 댓글~~ 우리 삼남매는 거의 아빠가 읽어줬어요.ㅋㅋㅋ

소나무집 2009-06-2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니 아빠가 책 좀 읽어주면 좋겠다, 정말.
앞으로 동생들까지 한참인데 하루 한 권씩만 읽어주시지요~
 

해질녘 고성 할머니 댁 마당에 나와 노는데 제비 떼가 날아다녔다. 

신기에 가까운 날개짓으로 빠르고 낮게 처마 끝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다른 새들이라면 긴 서까래와 대들보가 만나서 만드는 공간에

실수로라도 들어간다면  나갈 길을 찾지 못해서 이리저리 파다닥거릴 듯 한데 

제비는 늘어진 줄넘기 모양(양쪽이 벌어진 U자라고 해야 할까?)으로  

눈으로 쫓기도 힘들만큼 빠르게 쪽마루 천장과 마당을 들고 나면서 부지런히 지푸라기를 물어날랐다. 

오래된 집이라 얼키고 설킨 전깃줄 위에 두 마리가 앉아 지지배배 지저귀는 모습을 보니 

선명한 흑백이 대비되는 작고 날렵한 몸매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강남갔다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제비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기는 아마도 처음인 듯 하다. 

미니도 제비가 우리 집에 집을 짓다니 정말 행운이라고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언젠가 작은 언니네가  

베란다에 둥지를 튼 비둘기를 그냥 두었다가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본 엄마가 여쭈어보니

할머니는 어제 이미 짓고 있는 제비집을 한 번 걷어내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제비는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다시 집을 짓는 모양이다.  

어떻게 되는지 보지 못하고 너덜이로 돌아왔다. 

 

산 속이라 할 만한 너덜이와는 달리  

고성 구만은 화산분화구가 만든 들판이라 날아다니는 새들이 많이 달랐다. 

제비도 참새도 떼지어 날아올라 눈길을 끌었는데 너덜이에는 제비도 참새도 없다. 

이름이 궁금한 온갖 종류의 산새가 있을 뿐. 

그나마 꿩, 까마귀, 까치는 이름이 분명하고 눈에 가장 많이 띄는 새들이고 

뻐꾸기와 소쩍새는 울음소리를 들려주어 존재를 알 수 있지만  

방 앞에 선 나뭇가지에 가장 흔히 날아드는 몸집이 자그만  

아마도 박새와 어쩌면 종달새, 또 어쩌면 동고비 그들은 울음소리도 이름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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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1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그런 걸 볼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지요.^^
우리집엔 97년에 제비집 지어 새끼를 두 배 내더니 그동안 안 오다가
작년에 10년만에 다시 와서 살고 있어요. 아침마다 부지런한 제비소리에 잠깬답니다.^^

2009-06-20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06-24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완도에 와서 살면 제비도 보고 산도 보면서 자연속에 파묻혀 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사는 곳이 아파트, 그것도 12층이다 보니 도시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더라구요.
역시 사람은 땅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