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다보니  

아랫마을에 내려가 어르신들께 막무가내로 행동해서 죄송하긴 했지만  

손주처럼 귀여워하고 이해를 해주시니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신고 나갔던 신발들과 입고 나갔던 바지를 아무데나 벗어 던져놓고 오는 바람에 

아랫마을 할머니가 챙겨서 가져다 주시는 것이 한 보따리였고,

축대 아래로 집어던진 땔감용 나무토막이 거짓말 안 보태고 1톤 트럭 한 대분이 되어서  

하루는 날을 잡아 주워서 싣고 올라왔지만 그래도 참았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외할아버지 근심이 컸지만 

웬만큼 쏘다니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길래 가두지는 않았다. 

 

그랬는데 세발자전거를 타고 한낮의 땡볕 속에서  자동차 길을 따라 2~300m를 가서  

근처 산길 중에 가장 가파른 길을 자전거에 앉아 한 발, 한 발 내려가는 것을 아빠에게 들켰다.

아직 핸들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이 발 한 번 잘못 놓으면 수십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국이니

이제는 목숨이 달린 문제라 밖으로 통하는 문 3군데에 모두 걸쇠를 달았다.   

 

이젠 새벽에 아빠가 밭일을 하거나 닭을 돌볼 때 주위를 맴돌거나, 

하루에 두 세번 할머니 댁에 올라가 퍼즐을 가지고 놀거나 낮잠을 한 숨 자거나 

집에는 없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가끔 얻어내거나 하는 것이 집 밖 나들이의 전부다.

날씨가 좋으나 흐리나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엄마와 동생과 무료한 날들이다. 

 

엊그제는 방학을 한 승욱이 형도 오고, 며칠 내린 비도 개고,  

아침이라 시원한 바람도 한 줄기 부는데다   

거의 가택연금 상태로 지낸 날들이 오래여서 불쌍한 생각도 들길래  

가봐야 아랫마을 아니면 할머니 댁 마당이리라 편하게 생각하고 문을 나서는 걸 잡지 않았다. 

저녁에 들이닥칠 손님들이 있어 오래간만에 청소하느라 바쁜 마음에 잠깐 잊고 있다가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소리쳐 불러보아도 기척이 없어서 찾으러 나서는데 

출근한 아빠가 전화를 했다. 태민이 어디 있느냐고,, 이웃집 나라엄마가 전화를 주셨다고,, 

화장실에 다녀오니 거실에 들어와 있더라나?  

 

또래가 사는 이웃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네 집은 산길을 따라 30분 쯤 걸어내려가야 하는 곳이다. 

하루 전에 예약하면 나라아빠가 철마다 산에서 따 온 나물무침과  

버섯을 넣어 국물이 맑은 백숙으로 깔끔한 상을 차려내는 나라네서 손님들과 저녁도 먹고

무엇보다 갇혀지내는 아이들 산책도 시켜줄 욕심으로  

그 전날 저녁에 아이들 손을 잡고 나라네까지 걸어내려가긴 했다. 

만나는 산딸기 나무마다 딸기 하나씩 따 먹고 다리는 좀 아팠지만 신나게 걸었다. 

나라네집 냉장고를 열어젖히고 요구르트 한 줄을 얻어내기도 했고 

나라가 가진 블럭을 차지하려고 한 바탕 눈물바람도 했다. 

그것들 중에 무엇이 좋았던 모양인지 집을 나서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던가보다. 

 

산길을 따라 하염없이 죽 내려가지 않고 

가다가 샛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다 묶여있긴 해도 들머리에 큰 개가 짖어대는 나라네로 들어가 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승욱이 형이 미니누나와 함께 가서 데리고 왔는데 품에는 나라 블럭을 안고 왔다. 

몇 개를 탑처럼 쌓아서 손에 들고 내달아서 뒤에선 나라가 펑펑 울었단다. 

 

아뭏든 산길을 혼자서 30분 이상 주저하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덕분에 

태민이는 얼마동안 더욱 강력한 가택연금 상태에 놓일 것이다. 

아이가 다치거나 죽는다는 상상도 무섭지만, 사라져버린다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창 밖으로 푸른 나무와 산들이 햇살아래 내다보이니 집안에 갇힌 아이들이 더 안타깝다. 

 

선선할 무렵 재민이를 업고 함께 산책을 나선다고 해도  

한 번 잡은 발길을 적당한 곳에서 집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꼼짝없이 함께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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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27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과 더불어 사는 줄 알았더니 심각한 가택연금 상태군요.
아이의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없을 것 같아 더 안타깝네요.
누가 종일 붙어 다닐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