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경제학
도모노 노리오 지음, 이명희 옮김 / 지형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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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경태 한국 CEO연구소 소장님의 추천 글처럼 이 책은 행동경제학을 이해하기 위한 탁월한 입문서이며 심리적, 사회적, 실증적 기반은 탐구하는 것이다. 경제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하지만 늘어둔 감정이야기에는 결국 보는 이의 눈을 의식하는 듯 보였다.  누구의 눈에서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솔직한 감정이야말로 경제적인 암시가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도모노 노리오도 결국 경제는 감정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고 마음이란 마인드(mind)로 인하여 움직인다고 이야기를 했다.  행동경제학의 제목도 나에겐 어렵다. 행동경제학은 현재진행형으로 이 책은 그 행동경제학의 입문서로 소개하고 있다.


경제학 책 속에 문제들이 나열되어 있고 답은 다음 장에 나온다고 했다. 경제적인 인간을 이야기했다. 경제적인 인간은 합리적이며 이기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고전의 흥부전을 아는 사람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나 학생들은 흥부를 좋아하고 경제적인 책임이 있는 직장인들은 놀부를 더 경제적이라고 하면서 칭찬하지 않았던가. 놀부처럼 욕심을 가져야하고 흥부처럼 가족의 인원수도 그렇게 많이 늘려야 좋을 게 없다는 것 아니었던가. 효율성과 비효율성의 차이를 얼마나 두어야할까. 행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현상의 차이로 경제학의 차이도 가늠한다고 한다. 경제학의 이야기가 좀 많이 그리고 크고 넓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의 이야기도 나왔다. 경제학과 심리학은 하나였다고 한다.


행동경제학을 읽는 중간 중간에 표와 그래프와 질문과 답을 서술한 것을 접한다. 일본프로야구의 ‘2년차 징크스’란 이야기도 솔깃했다. 카너먼은 비행 훈련과 관련된 실험을 했다. ‘칭찬하면 성적은 악화되고 꾸중하면 성적은 올라간다.’는 법칙을 도출해냈다고 한다. 하지만 학부모이면서 엄마인 나의 경우는 아이를 키우는 여러 도움 책을 읽어보면 대부분 아이를 칭찬하라고 나온다. 큰아이가 처음 초등학생이 되어 입학식 때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칭찬합시다. 수학을 못하면 다른 것을 잘하는 것을 칭찬하여야합니다. 공부를 못하고 먹기만 잘하여도 편식안하여 칭찬한다고 해야 합니다.” 난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어서 카너먼의 법칙은 반대하고 싶다.


제4장에서 보여주는 프로스펙트 이론은 내용가득 그래프와 함수와 비교였다. 많이 지루했다.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확률분포는 그 표 안에 혹 나의 글이 들어가도 어려울 듯하다. 작은 커피솝 종업원의 임금이 옆 가게의 종업원 임금이 내려가는 시급이 하락했다는 글에서는 어떤 예가 되더라도 안타까운 일이였다. 주부들에게는 채소 값의 하락과 상승이 가장 경제적인 요인으로 바로 접해지는 현실이다. 언젠가 금배추, 금파..하면서 엄청나게 오른 배추와 파 등을 일컬었던 때가 떠오른다. 과거에 지불한 후 되찾을 수 없게 된 비용을 매몰원가라고 하고 예를 들어서 질문을 해둔 것이 있었다. 결국 본전 생각하여 그 값을 치루고 싶은 심리가 있었다. 얼마 전 여동생이 가지고 있는 의류구매 쿠폰을 보았다. 가격은 큰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악세사리를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꼭 붙는 조건이 있었다. 의류를 구입하는 조건에 사용이 가능한 상품권 이였다. 결국 상술 아닌가. 그 상품권을 사용하려면 비싼 의류를 구입해야한다. 상품권을 포기한 여동생이 현명했다.


공공재게임과 처벌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한 8장을 보면서 게임을 조절하는 실험자가 생각하는 입장은 어떤지 궁금했다. 경제적 인간도 협력적인 관계로 인하여 좋은 결과와 정말 경제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신뢰게임이 된 것이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이 된다.”는 보고를 소개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첫 검토가 자선사업 등에 돈을 기부했는지의 여부를 설문조사한 것 이였다. 난 어느 책안에서 이렇게 우리가 잘 아는 미국에서도 학생들이 기부금이나 기부금이 아니면 봉사활동 시간이 수업일수와 교과점수에 포함되는 것을 알았었다. 이곳 실험에서도 마찬가진 것 같다.


전두엽 손상 환자 엘리엇의 이야기는 날 적지 않게 놀라게 했다. 뇌종양수술 때 종양을 외과수술로 제거하였고 수술이 성공적 이였고 아무런 장애가 없었으며 인격테스트도 정상적 이였으나 업무에 복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정을 내리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놀랄 만큼 자기 자신의 감정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도 자각했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어 고통에서 벗어 난 것일까? 뇌의 그림이 나오면서 신경경제학 이야기가 나왔다.  연구에서는 연구에 사용되는 장치가 뇌의 혈중산소량이나 혈류랑 변화를 조사하여 사람이 어떤 행동 들이 뇌의 어느 부분의 혈중산소량이나 혈류량이 증가 하는지를 조사했다. 분배를 요구하는 전두전배외측피질과 불공평한 것을 싫어하는 도피질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전대상회피질이 조정한 것을 추측했다. 죄수들의 딜레마 실험도 실시했다. 책의 뒷쪽에는 대부분 뇌와 신경과 정신적인 이야기로 가득했다. 처음 알려준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의 이야기도 나왔다. 경제학과 심리학은 하나였다고 한 내용을 나열해서 설명을 해주는 듯 했다.


난 결코 CEO가 아니라 가정주부이다. 가정 내의 경제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경제적인 책임과 참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겐 상당히 어렵고 이해가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경제학 박사나 혹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나, 심리학자나, 정신과 병원의 치료사들이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책을 모두 읽는 동안 어려운 용어는 체크해야 했고 이름도 외국인들이 대부분이라 기억이 어려웠으며 다만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만 기억되었다. 아마도 많은 경제학자나 심리학자들 중에 [아담 스미스]를 멘토로 두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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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낙관주의자
수잔 세거스트롬 지음, 오현미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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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켄터키 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로, 낙관주의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명망 놓은 탬플턴 긍정심리학 상을 수상한 작가 [수잔 세거스트롬]을 겉표지 안에서 보았다. 통통한 얼굴에 생머리를 묶은 모습으로 흑백 사진이지만 책 제목처럼 긍정적인 사고가 가득한 부드러워보이는 모습이였다.


프롤로그의 소제목은 ‘그렇게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말라’이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해 지려는 노력을 먼저 하라고 한다. 웹서핑 중에 많은 제목으로 ‘TV를 없애라’라는 제목을 또 만났다. 초등학생인 두 딸이 있는 우리 집에는 14년이 넘은 21인치 평면TV가 아직 방에 있지만 거의 보지 않는다.  겨우 몇 달전 케이블 TV를 신청해서 보고 있지만 거의 보지 않는 것으로 새로운 와이드 LCD나 LCD TV를 사려고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여건은 되는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TV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설탕과 같은 것 일까? 정의적인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우리 집에서는 설탕을 많이 먹는 것 같지도 않다.  생활환경의 차이가 많아도 행복을 느끼는 수준이 같았다는 결과에서 사람은 환경 적응 능력이 뛰어나서라고 한다. ‘심리적 면역 체계’ 혹은 ‘쾌락의 쳇바퀴’라고 알려주고 있다. 행복지수 그래프를 보아도 알 수 있었지만 왜 차이가 안 나는지 아직 이해가 안 갔다. 낙관적인 사람이 곧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도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행복하다고 말 한다. 큰집이 아니어도 내 집이 생겼을 때를 생각하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아이들이 아픈데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보아도 행복하다. 


작가를 인터뷰 할 때 많은 질문과 빠지지 않던 질문이 “당신은 낙관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이라고 했다. 제대로의 답변이 어려웠다고 한다. 낙관주의 자들은 목표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고 목표를 세워놓고, 자기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언젠가 다른 책에서 자신의 목표리스트를 세워보라는 글이 생각난다. 나도 100개를 적어 보려고 시작은 했지만 결국 20여개 만 적다가 그만 두었다. 사실 큰 바람이나 목표가 많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낙관적인 성격은 25%가 유전이라고 한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육아전문잡지에서는 어린이 비만이야기를 해주면서 어린이 비만의 20% 이상이 엄마의 유전을 따른다고 한 것을 본적이 있다. 난 비만이여서 지금까지도 걱정은 되지만 키가 큰 아빠를 닮아서 아이들이 키가 커서 그때의 걱정보다는 걱정을 안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로또에 당첨되는 행복보다 기질적 낙관주의 같은 성격 특성에서 비롯되는 행복감은 언제까지나 계속 샘솟는다고 한다. 첫아이를 낳고 행복했던 때를 생각하면 “아.. 정말 행복해”하는 말이 그냥 튀어나온다. 난 자주 그런 지나간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행복감에 젖어들곤 한다.


작가는 또 TV를 보지 말라는 글을 올려두고 있다. TV가 심리적 웰빙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심리적 웰빙 수준을 높여주는 것은 지속본능이며 그것은 또한 끈기라고 한다. 난 끈기는 가끔 집착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목표를 너무 크게 잡아서 그 목표를 향하여 끈기 있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집착이 생긴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어느 작가가 “만 원짜리를 줍지 마라”라고 했다. 계속해오던 것도 필요에 따라서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인연하는 것이 바로 집착이 아닐까! 우스꽝스러운 목표이든 고상한 목표이든 목표를 지속성 있게 추구해 나가는 데는 반드시 낙관주의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책속의 컷 그림에서 공주가 많은 개구리에 둘러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아래에는 [잘생긴 왕자님을 만나려면 그 전에 수많은 개구리들에게 입맞춤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적혀있었다. 황당했다. 공주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작가도 결혼 시작에서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결혼 후의 그동안의 장애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혼 초 어려웠던 심정을 제외하고는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 대부분 이였다고 결정을 지을 수 있는 만큼 지금도 행복하다.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의 이야기가 있었다. 베조스의 집 지하실에서 출발하여 8년 동안 한 푼도 수익을 못 냈다고 한다. 베조스가 성공한 것은 그가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낙관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낙관적인 사람은 장애물이 생길 때도 계속 일정한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심리적 웰빙을 누린다고 한다. 필요할 경우 목표를 바꿔가면서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난 내 스스로가 낙관주의자라고 결론을 지을 수 있었다. 낙관주의자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에서는 내가 미리 생각했던 결과로 낙관주의자들이 병과의 싸움에도 이겼고 빠른 회복도 보였다고 한다. 몇 년전 나의 남편도 다리 골절사고를 당하여 수술을 하여 쇠기둥을 뼈 안에 길게 박아 넣던 때가 떠올랐다. 수술 후 3개월 입원 중에 남편은 부지런히 혼자만의 운동으로 빠른 회복을 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물리치료를 받을 때에도 단 한 번도 물리치료가 필요 없었다. 그만큼 혼자운동을 많이 했던 탓 이였다. 그 후에 새로 운전면허증도 받게 되었고 일 년 반이 지나고 다시 쇠기둥을 빼는 수술도 잘 마쳤다.


암환자나 AIDS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는 나이가 많은 60대 이후의 환자들은 낙관주의자나 비관주의자들이나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결과로 낙관주의자들은 생존 기간 면에서 조금 유리했던 것뿐이라고 했다. 책 속의 컷 그림 중에서 낙관주의자에 대하여 풍선글 단어에는 [성공, 행복, 사랑, 아름다움..]이 적혀져 있고 비관주의자에 대한 풍선글에는 [실패, 위협, 두려움, 죽음, 좌절..] 등의 단어가 적혀져 있었다. 모든 것은 관심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한다.  경영학과 학생들이 ‘매몰 비용(sunk cost)' 이라는 용어로 이 개념을 배우는데, 이는 ’잃은 돈을 건지려다 더 손해를 본다(throwing good money after bad)'는 뜻이라고 했다. 이 글을 읽다가 [고스톱], [도박] 이 떠올랐다. 본전을 찾으려다가 망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런 도박에 많지 않았던가. 낙관주의자들에겐 에너지가 풍부했다.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낙관주의 수준이 25%인 것을 또 알려주면서, 어머니가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었을 경우 이 모자관계는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낙관주의 수준을 5% 더 높여주었다고 한다.  난 딸이 둘이지만 자주 스킨쉽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당장 스킨쉽을 시작해야겠다.


작가는 10년 동안 낙관주의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워 이 책을 쓴 것이라고 했다. 또다시 책을 쓰기 위해서는 또 10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낙관주의를 정의한 글은 내 맘속에 새겨졌다.

  “당신은 미래에서 최선의 상황을 기대하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미래의 일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낙관주의 정의 글은 나도 마음에 든다. 나도 나관주의자로 남고 싶다. 제 7장 앞에는 겉표지의 그림이 작게 있다. 그 아래에는 [세상은 내가 만든다]라고 적혀져 있다. 정말 제대로 정의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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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선생님!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37
엘리자베스 발라드 지음, 송언 옮김, 미리엄 로저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모두 다 읽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글일 읽고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큰딸이 초등3학년 학기에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했다. 여름방학을 마치는 날 전학수속을 마치고 교실로 갔을 때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은 빨리 적응을 한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톰슨선생님은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저는 여러분을 똑같이 사랑할 거예요.” 하며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은 데디 스톨러드는 마음이 끌리는 학생이 아니었다. 톰슨선생님은 데디의 1학년부터 4학년 생활기록부를 보시고 데디가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임을 알았고 2학년 때는 엄마가 몹시 아팠고, 3학년 때엔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알 수 있었다. 4학년 때는 데디의 아버지마저 데디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톰슨선생님은 데디를 어떻게 보셨을까? 그러다가 크리스마스날 반 아이들은 톰슨선생님께 선물을 드린다. 멋진 포장을 한 선물 가운데 데디의 선물도 있었다. ‘사랑하는 톰슨 선생님에게, 데디가.’라고 쓰여진 포장지를 뜯자 팔찌와 향수가 나왔다. 데디의 선물을 보고 아이들이 웃었다. 톰슨 선생님은 한쪽 손목에 팔찌를 끼고, 다른 쪽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는 “이렇게 향긋한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니? 이렇게 아름다운 팔찌를 본 적이 있니?” 하셨고 아이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순간 나도 울렁거리는 가슴을 짓눌렀다. 데디가 엄마의 향수와 팔찌를 선생님에게 드린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동안 여자 담임선생님이 없었을까? 아빠의 관심도 멀어진 데디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 사건 후로 톰슨선생님은 정말 모든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 데디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뒤에서 톰슨선생님께서 봐주시는 일러스트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한참을 보았다. 나도 기분이 참 좋아졌다.  고등학교를 2등으로 졸업할 때와 그리고 4년 뒤 대학 학과에서 1등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또 4년 뒤에는 의학박사가 되어 결혼소식을 편지로 알려준 데디는 결혼식 때 선생님께서 와 주시길 간절히 바랬다. 선생님의 바른 교육 방향으로 데디가 정말 훌륭하게 컸을 것 같다.


나에게도 고마운 여러 선생님들이 있다. 수업시간에는 엄격하셔도 등하교길 차안에서나 혹은 방학 때에도 선생님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의 추억은 정말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붓글씨를 잘 쓰시는 선생님은 謹賀新年(근하신년) 이라고 멋진 한자 글을 직접 써서 보내주신 적도 있었고, 어떤 선생님은 이름을 잘못적어 보냈는데도 좋아하시며 몇 번의 편지를 즐겁게 주고받던 육상부 선생님도 있었다. 나의 어린 추억속의 선생님들은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잘했어요..” , “응..잘하네..” 하시던 기억이 가득하다. 나도 벌써 40의 나이에 노년이 되어간다. 더 늦어지기 전에 선생님들을 찾아뵈어야하는데 너무 부끄러워진다. 내 두 딸아이들에게 집에서 난 선생님이 되어 있다. 앞으로도 선생님이 되어야하고 엄마도 되어야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요리를 할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엄마는 자주 요리사도 되었다가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친구가 되어야했다.


데디와 톰슨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서울동명초등학교 교사이신 송언 선생님의 글이 있었다. 송언 선생님도 이 책을 읽고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난 선생님께서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을 내가 받은 듯 읽어보았다. 어린 시절의 불행은 평생 동안 가슴에 응어리로 남는다고 하셨다. 이 세상 누구도 아이들 마음을 아프게 할 권리는 없다고 하셨다. 나의 아이들에게 아픈 추억은 없길 바란다.  송언 선생님의 편지글에 이여서 제자 둘의 이야기가 있었다. 앞니 빠진 임진수에게는 장난이 심하여 귀퉁배기를 쥐어박던 때가 많았었는데 멀리 사는 할머니가 걱정하신다고 참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고 하여 부끄러워하고 반성을 하시면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라고 맺음을 주셨다.  그리고 꼴지 황도웅은 아마도 선생님께서 여러 제자들을 잘 이끄는 동안에 공부하기 싫어하고 선생님에게 반말도 자신 있게 하는 아이라고 소개하면서 말 안 듣는 아이들이 미워서 전학 가버릴까 보다 하고 한마디 하던 날, “가지마! 선생님, 전학 가지 마!” 했던 황도웅이가 ‘진짜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스승의 날, 황도웅의 편지에는 “작년에 선생님이 저를 사랑해 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감격적인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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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선생님!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37
엘리자베스 발라드 지음, 송언 옮김, 미리엄 로저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모두 다 읽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글일 읽고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큰딸이 초등3학년 학기에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했다. 여름방학을 마치는 날 전학수속을 마치고 교실로 갔을 때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은 빨리 적응을 한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톰슨선생님은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저는 여러분을 똑같이 사랑할 거예요.” 하며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은 데디 스톨러드는 마음이 끌리는 학생이 아니었다. 톰슨선생님은 데디의 1학년부터 4학년 생활기록부를 보시고 데디가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임을 알았고 2학년 때는 엄마가 몹시 아팠고, 3학년 때엔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알 수 있었다. 4학년 때는 데디의 아버지마저 데디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톰슨선생님은 데디를 어떻게 보셨을까? 그러다가 크리스마스날 반 아이들은 톰슨선생님께 선물을 드린다. 멋진 포장을 한 선물 가운데 데디의 선물도 있었다. ‘사랑하는 톰슨 선생님에게, 데디가.’라고 쓰여진 포장지를 뜯자 팔찌와 향수가 나왔다. 데디의 선물을 보고 아이들이 웃었다. 톰슨 선생님은 한쪽 손목에 팔찌를 끼고, 다른 쪽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는 “이렇게 향긋한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니? 이렇게 아름다운 팔찌를 본 적이 있니?” 하셨고 아이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순간 나도 울렁거리는 가슴을 짓눌렀다. 데디가 엄마의 향수와 팔찌를 선생님에게 드린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동안 여자 담임선생님이 없었을까? 아빠의 관심도 멀어진 데디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 사건 후로 톰슨선생님은 정말 모든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 데디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뒤에서 톰슨선생님께서 봐주시는 일러스트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한참을 보았다. 나도 기분이 참 좋아졌다.  고등학교를 2등으로 졸업할 때와 그리고 4년 뒤 대학 학과에서 1등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또 4년 뒤에는 의학박사가 되어 결혼소식을 편지로 알려준 데디는 결혼식 때 선생님께서 와 주시길 간절히 바랬다. 선생님의 바른 교육 방향으로 데디가 정말 훌륭하게 컸을 것 같다.


나에게도 고마운 여러 선생님들이 있다. 수업시간에는 엄격하셔도 등하교길 차안에서나 혹은 방학 때에도 선생님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의 추억은 정말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붓글씨를 잘 쓰시는 선생님은 謹賀新年(근하신년) 이라고 멋진 한자 글을 직접 써서 보내주신 적도 있었고, 어떤 선생님은 이름을 잘못적어 보냈는데도 좋아하시며 몇 번의 편지를 즐겁게 주고받던 육상부 선생님도 있었다. 나의 어린 추억속의 선생님들은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잘했어요..” , “응..잘하네..” 하시던 기억이 가득하다. 나도 벌써 40의 나이에 노년이 되어간다. 더 늦어지기 전에 선생님들을 찾아뵈어야하는데 너무 부끄러워진다. 내 두 딸아이들에게 집에서 난 선생님이 되어 있다. 앞으로도 선생님이 되어야하고 엄마도 되어야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요리를 할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엄마는 자주 요리사도 되었다가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친구가 되어야했다.


데디와 톰슨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서울동명초등학교 교사이신 송언 선생님의 글이 있었다. 송언 선생님도 이 책을 읽고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난 선생님께서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을 내가 받은 듯 읽어보았다. 어린 시절의 불행은 평생 동안 가슴에 응어리로 남는다고 하셨다. 이 세상 누구도 아이들 마음을 아프게 할 권리는 없다고 하셨다. 나의 아이들에게 아픈 추억은 없길 바란다.  송언 선생님의 편지글에 이여서 제자 둘의 이야기가 있었다. 앞니 빠진 임진수에게는 장난이 심하여 귀퉁배기를 쥐어박던 때가 많았었는데 멀리 사는 할머니가 걱정하신다고 참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고 하여 부끄러워하고 반성을 하시면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라고 맺음을 주셨다.  그리고 꼴지 황도웅은 아마도 선생님께서 여러 제자들을 잘 이끄는 동안에 공부하기 싫어하고 선생님에게 반말도 자신 있게 하는 아이라고 소개하면서 말 안 듣는 아이들이 미워서 전학 가버릴까 보다 하고 한마디 하던 날, “가지마! 선생님, 전학 가지 마!” 했던 황도웅이가 ‘진짜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스승의 날, 황도웅의 편지에는 “작년에 선생님이 저를 사랑해 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감격적인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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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이 누나 사계절 아동문고 65
권영상 지음, 허구 그림 / 사계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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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같은 성을 가지신 나의 친정엄마도 강원도 홍천이 고향이시다. 작가 권영상님은 친정엄마의 아저씨뻘이 되겠다.  엄마가 안동권씨 35대손이니까.. 혹 권씨성을 가진 분들을 뵐 때면 머리가 백발이시던 외할아버지가 가끔씩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때 강원도 홍천 외가댁에서 지내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여름 아침의 이슬 묻은 초록 풀들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신해가 방가 후 집으로 오던 길에 누나를 만났다. 누나이름이 둥글이가 아니고 신자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누나에게 업히어 집으로 간다. 며칠 후 엄마가 쓰러지시고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된다. 아버지 생의 소원이 형 신구의 눈을 뜨게 하는 것 이였다.  형은 어려서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  누나는 쓰러져 입원한 엄마와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비가 오면 논의 물꼬를 내고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다니고 집안일을 모두 하는 누나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형 신구의 눈 수술을 위하여 땅을 팔게 된다. 봄이 되어 하숙을 하게 된 경섭이 아저씨는 포도나무를 가꾸게 된다. 형 신구는 경섭이 아저씨로부터 라디오를 선물 받는다. 집에서 동생 신해에게 글을 배우던 형은 라디오와 친구가 되었고 라디오로 인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경섭이 아저씨와 함께 서울로 눈 수술을 받으러 떠난 날 차사고로 형과 경섭이 아저씨가 다치게 되고 겁을 먹은 형은 수술 받으러 가길 싫어한다.  수술 예약으로 미리 친척 고모할머니 집에 보낸 황소 한 마리 값을 결국 모두 날리게 된다. 고모할머니집이 망했다고 한다.  슬퍼하는 둥글이와 신해, 신구가 불쌍했다.


집 뜰의 오동나무를 팔게 되었다. 예부터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는 이야길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동나무가 많이 자라서 그 나무를 베어 가구를 만들어 시집보낼 때 같이 보낸다고 한다. 노래에서만 듣던 오동나무를 난 8년 전 동네 길가에서 보았다. 나무의 잎이 커다랗고 비오면 우산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나무였다. 둥글이 누나는 오동나무를 판돈으로 병아리를 120마리 사서 기르게 된다. 엄마는 다시 다른 병원으로 입원을 하고 막내 신해는 중학생이 된다.  신해의 새 교복을 입어본 신구가 벽에 기대어 들먹거릴 때 가슴이 아팠다.  신해와 신구 , 둥글이누나의 엄마가 가슴을 치던 것처럼 난 심장병도 없는데도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중학생이 되는 신해가 졸업을 한다. 졸업식 날 담임선생님은 또 다른 상으로 신해에게 호두나무 묘목을 주셨다. 해수욕장이 지역발전에 힘입어 생겨났다. 기차역도 생기고 전기도 들어왔다.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올까봐 또 걱정을 하는 둥글이 누나였다. 엄마가 곧 퇴원을 한다고 한다. 봄이 왔다. 호두나무에서 푸른빛을 보았다. 가족은 흩어지지 않고 그렇게 아빠가 없어도 둥글이누나처럼 둥글게 뭉쳐졌다. 책의 마지막의 그림을 보면서 안심이 되었다. 걱정은 더 이상은 없을 듯 다 사라진 듯하다. 참 잘 되었다.


가족을 주제로한 영화가 많다. ‘가족’, ‘가족의 탄생’ .. 난 실제의 이야기를 영화화 했던 ‘안녕, 형아’가 생각난다. 동생이 형아가 불쌍해서 우는 모습에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었다. 그렇게 영화나 책속에서나 주위에 들리는 가족이야기 등에서도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다.  왜! 즐거운 가족이야기는 잘 없는 것일까.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 고구마로 대신하던 60년대의 이야기에는 가족을 부양하기위하여 공부를 포기하는 둥굴이 누나들이 많았을 듯하다.  신해는 작가가 되었을까?  신구는 시인이 되었을까? 둥글이 누나는 아마도 행복농장을 가꾸는 엄마가 되어 있을 듯하다.  엄마는 신해와 신구 그리고 둥글이 누나의 사랑으로 건강히 잘 지낼 것 같다.  가족을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과 가족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이 둥글이누나에겐 많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힘들었고 그런 둥글이 누나를 보는 나도 슬펐다. 형제가 많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욕심이 많은 요즘의 가족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아마 앞으로는 우리가 가족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길 것이다. 그런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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