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글쓰는걸 즐기고 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내 이름으로된 책 한 권 갖고 싶다는 희망을 품은 적 있을 것이다.
이젠 평범한 직장인이 돼버렸고, 혹은 어릴적 꿈꾸던 작가 그 비슷한 근처에도 안갔다고
희망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의외로 기회는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작년 5월, 모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저술지원에 응모를 했었다.
쟁쟁하신 교수님들이 많아서 별로 기대도 안했지만, 그래도 자료쓰느라 애썼는데 떨어졌다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준비한 자료 그대로, 저술할 책의 기본이 될 석사논문과 함께 저술기획서를 출판사에 한번 보내보기로 마음먹었다. 서류봉투에 자료를 넣고, 어차피 큰 기대 안하는거....제일 좋아하는 출판사를 골랐다. 책장 전공서적란에 제일 많이 꽂혀있어서 익숙한, 그 방대한 주제와 노력에 많은 사회과학도들이 감사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북스였다.
이 선택은, 이를테면 내가 소설을 쓴다면 세계사나 민음사에서 출간하고 싶고, 열린책들도 그리 나쁘진 않을것 같아. 혹은 내 책이 프랑스에 출간된다면 갈리마르에서 해야하지 않을까? 정도의 ...건방진 로망의 일종이었다.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 =;;
보내놓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고 처음으로 편집자와 만났다.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있는 출판사 회의실에서 긴장해 앉아있던 그 날이 생생하다.
나는 열정은 있지만, 나름대로 글은 좀 쓰지만, 열심히 살아오긴 했지만, = =
그래도 내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기엔 너무 평범한 것 같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어 앉아있었다.
우편물을 사장님이 읽으셨고(그 유명한 박영률사장! 상상만 해도 가슴뛰는 장면이다.)
편집자에게 나를 만나보고, 책을 진행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계약을 진행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출판사에게 놀랐다.
출판사 입장은, 일정도 중요치 않고, 분량도 중요치 않고, 좋은 책을 만드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용을 알차게 하는데 필요하다면 집필기간이 늘어나도, 분량이 늘어나도 상관없다는 애기.
이익보다 책의 질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출판사가 너무 신선했고, 정말 좋은 책을 쓰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원고료는 도서총정가의 10%였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5월에 계약 후, 집필은 그 해 8월에 완성될 예정이었다. 여름휴가를 못쓰겠군이라고 약간 아쉽게 생각했다. 수정을 거치면서 예정이 다시 10월로 연기되었다. 추석 연휴 때 못쉬겠다는 약간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며 또 12월 말로 연기되었다. 크리스마스 때 혼자 방문을 닫고 책을 썼다.
이때부터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과연 이 책이 출판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편집자가 "우리 한번만 더 해서 좋은 책을 만들자고요."라면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줬었다. 그리고 올 2월에서 4월까지 흘러 결국 5월 말에야 책이 나왔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서재에 자신의 책이 꽂혀있는 그 느낌은 이루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작가의 신간만 나와도 책을 펼치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리던 내가
내 책을 펼쳤을 때의 느낌은...(묘사불가능이다.)
너무 전문화된 분야여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는 모르겠지만
쓴다는 것 자체, 출판과정 자체가 내게는 많은 공부가 된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