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휴머니스트 교양을 읽는다 3
최병권.이정옥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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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대입 수험생들이 철인삼종경기 출전자들에 비유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수험생들은 내신을 관리하고 수능을 준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논, 구술의 부담까지 떠안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웬만한 대학들의 입학사정에 맞추다보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특히, 논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학부모들을 사교육의 장으로 내모는데 일조를 한다. 정규과목에 편성되지 않아 그 실체가 모호한데다, 광범위하고도, 다양한 사고의 집적물을 글이나 말로써 표현해야  한다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당사자인 학생들보다는 논술교육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세대인 학부모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할 수밖에 없다. 해서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논술학원에 드나든다.

  짬짬이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을 아는 지인들이 묻는다. 논술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학원에 보내야겠지요? 두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갖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다. 그저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고, 열심히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레 말할 뿐이다.  고작해야 '연습'이라는 말에 힘을 주면서, 여건 상 혼자 할 수 없다면 학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전혀 도움 될 것 같지 않은, 상식적이고도 모범적인 답안을 내놓고, 마음 한 구석엔 분노와 부러움과 자괴가 동시에 인다. 그것은 우리의 제도권 커리큘럼에는 전무한 논술교육에 대한 분노요, 교양인을 길러내는 선진국들의 논술 교육에 대한 부러움이요, 제대로 논술을 가르칠 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부끄러움이다.  학생들도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창의적 사고의 확장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이다. 

  프랑스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논술 시험을 소개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부러움이 절로 인다. 그들이 말하는 평균적 교양은 우리가 보기에 지성인들의 철학적 경지를 말하는 것 같다. 도무지 고등학생으로서는 감히 탐색하지 못할 것 같은 주제들을 다양하게 접근한다. 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는가, 노동은 욕구충족의 수단에 불과한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이 입시문제라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고, 그것에 대한 다양하고 놀라운 답변들이 제시된다는 것도 더한 충격이다. 폭넓은 독서와 교양 교육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추상적이고 철학적이며 난해하기까지한 답변들이 즐비하다.

  그들에게 논술이나 철학은 학문이 아니라 교양적 차원의 논의이다. 생각하고 토론하고 논술하는 이러한 방식의 교육은 이미 나폴레옹시대부터 이어져왔다. 그러한 전통이 모여 프랑스인들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세계로 이끈 것은 아닌지.  그에 비해 따로 논술이나, 철학, 나아가 토론식 수업 한 번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외피만 빌려입은 논술교육이 제대로 자리잡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부족한 연습으로는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 모두 옹골찬 알맹이에서는 한참 멀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논술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이니, 언젠가는 앞선 그들처럼 우리네 교실 풍경에도 토론과 에세이가 난무하게 되는 걸 지켜보게 되지 않을까.  단지, 입시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평균적인 교양을 지탱해주는 수단으로서 논술이 대접받는 그 시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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