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자다가 깨는 시간이 잦다. 나이 탓도 있고, 생활 리듬이 변한 탓도 있다. 그간 글을 쓸 때는 웬만해선 늦은 밤까지 활용하지는 않았다. 변변한 직장이 있는 것도, 규칙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늘 있는 것도 아니라 글 쓸 일이 있어도 꼭 밤까지 미룰 이유가 없었다. 집에 있는 한, 직장인들 근무하는 셈치고 낮에 주로 글을 써왔다. 한데 어느 순간 체력은 달리는데 해야 할 일은 늘어나면서 밤 시간 대로 쓰는 일이 미뤄지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하면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깨다 자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불면증까지는 아니다. 30분 이내로 다시 잠들기 때문에 재수면도우미로 텔레비전만 있으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시청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들곤 한다. 대개 무엇을 본지도 모르고 잠들 경우가 많은데 며칠 전 새벽에 본 특집 다큐멘터리는 마치 한 번 만났을 뿐인데도 강렬한 매혹을 남기는 그런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난 가을 오스트리아인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고도 39킬로미터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헬륨 가스 기구에 달린 캡슐을 타고 지구 성층권까지 올라가 단숨에 지상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중계되었다.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기압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펠릭스의 눈빛이 두어 번 흔들리긴 했다. 지상 관측소에서는 객관적인 정보 외에는 그 어떤 충고나 의견 없이 펠릭스의 결정을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인류 최초 최고의 높이에서 점프에 도전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는 펠릭스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펠릭스는 잠시 망설인 끝에 도전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초정밀 우주복을 입은 그가 캡슐 문을 열고 까마득한 지상을 향해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캡슐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잡은 공활한 무대는 장관이었다. 둥근 지구 표면이 보이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도 어렴풋이 보였다. 저 먼 지상을 향해 뛰어내리기 직전 그가 한 말은 보는 이의 가슴에 잔잔한 감흥을 일으켰다. ‘높은 곳에 올라와 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는 지금 집으로 갑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주저 없이 캡슐에서 뛰어내렸다.

 

 

  자유낙하는 거침이 없었다. 수초 만에 음속을 돌파했고, 최대 낙하 시속은 1100킬로미터가 넘었다. 낙하 초반, 의식을 잃은 펠릭스는 마치 바람에 종잇장이 흔들리듯 이리저리 허공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낙하 운동을 재개했다.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다. 뉴멕시코주 한 사막에 펠릭스는 허무할 정도로 안착했다. 감사의 인사로 대지를 향해 고개 숙일 때 세계인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극한 도전 중에 하나인 고공 점프를 생각해내고 실천한 인간 의지력에 무한한 경외심이 인다. 작은 일에도 힘겨워하고, 어려워하고, 마침내 포기하기 일쑤인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고만고만한 나약함을 공유한 사람끼리 그 나약함을 서로 위안하는 일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얼마나 나약한지 아무도 모른 채 다만 서로를 연민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한 상황, 광활한 무대에서 들여다 본 스스로의 존재감은 평소와는 훨씬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지켜 본 사람들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인간사 아귀다툼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따라서 내 삶의 현재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를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의 근원을 찾아 지상 최대 낙하를 꿈꾸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말 - ‘나는 지금 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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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2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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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0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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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2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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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8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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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8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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