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견난사(能見難思)

 

송광사 행은 처음이었다. 천 리 밖, 상상으로 그리기만 했던 경내엔 가을 풍광이 완연했다. 잘 물든 단풍잎마다 햇살이 고르게 박혔다.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는 객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품 넓은 절집의 한 점 풍경이 되어 지친 몸 반나절쯤 풀었다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터였다. 썸네일        썸네일

 

구내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사료들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은 굳어졌다. 그 중 입구 쪽의 그릇더미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그릇 자체는 지극히 평범해보였다. 얇고 둥근 청동제 접시인데 고려시대 것이었다. 공양 바리때로 쓰였는데 ‘능견난사’(能見難思)라 했다.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그 이치를 알기가 어려운 일’이란 뜻이다. 그릇 이름치고는 유별나고 심오했다.

 

고려 때 원나라에서 가져왔단다. 주조법이 특이해 위로 포개도, 아래로 맞춰도 딱 들어맞는단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별 것 아니지만 모든 것이 수제이던 당시로는 최첨단 기술이었던 모양이다. 조선 숙종 임금이 그것과 똑같이 만들라고 했지만 장인들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나. 그래서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다’란 의미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보기엔 쉬워도 만들기는 어려운’ 것 중의 또 하나가 글쓰기이다. 어느 정도 눈이 트이면, 잘 된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읽는 눈이 열렸다고 쓰는 것이 절로 되는 건 아니다. 보는 눈과 쓰는 눈의 차이만큼 글쓰기의 괴로움이 따라 붙는다. 쓰는 이의 이런 노고를 알기에 인터넷 서점에서 책 평가용 별 개수를 물어오면 웬만하면 다섯 개 전부를 준다.

 

커뮤니티 활동이 자유로운 인터넷 시대엔 작가나 비작가의 경계가 없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잘 쓰는 모든 이들은 내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글쓰기야말로 능견난사이기 때문이다. 읽기에 좋은 글이 쓰기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송광사 능견난사를 통해 다시 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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