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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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생겨 먹어서 사람들과 충돌만 일삼는 거지? 왜 선생님과 사이는 좋지 못하지? 왜 급우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서먹서먹하기만 하지? 왜 건전하고 밝은 저 평범한 학생들처럼 되지 못하지? 왜 선생님들 하는 짓이 다 우스꽝스럽게만 보이지? 왜 얌전한 모범생이 되지 못하고 시 나부랭이나 끼적이다가 놀림감만 되지?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청소년기는 저런 생각으로 가득 찼으리라. 그의 중편 소설『토니오 크뢰거』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내밀한 고백으로 가득하다. 그 은밀한 고백 밑바탕에는 평범한 시민성과 예술가적 기질 사이의 고뇌가 숨어 있다. 예술가적 성향의 사람이 그러하듯 토니오는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더인데다 깊이 보고 자세히 본다. 상처 많은 영혼이 될 수밖에 없다.

 

 

  동급생 미소년 한스를 해바라기하지만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며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박하고도 가혹한 교훈만을 터득할 뿐이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소녀 잉에를 맘에 품지만 상대는 악의 없이 무심할 뿐이다. 평온하고 건전한 시민을 대표하는 한스나 잉에는 예술가적 기질로 길 잃은 시민이 되어버린 토니오와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겨우 열네 살에 토니오는 자신의 길이 평범한 시민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자각한다.

 

 

  단춧구멍에 들꽃을 꽂은, 정돈되고 명상적인 부르주아 아버지와, 약간 방종한 듯 자유롭고 정열적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운명적으로 시민 계급과 예술가적 기질 사이에 방황할 수밖에 없는 토니오 크뢰거. 그는 두 세계 중 어느 곳에도 안주할 수 없다. 예술가 그룹에서는 경멸과 환멸을 맛보고, 시민 계급은 그에게 굴욕과 패배감만을 안겨 줄 뿐이다.

 

 

  일반적 예술가 소설의 말미라면 꼿꼿하게 예술가로서의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토니오는 자신이 부러워해 마지않던 시민성을 경외와 긍정의 시선으로 수용한다. 예술이라고 꼭 비루하고 비리고 거칠고 환상적이거나 비정상적어야 하는 게 아니라고 강변한다. 정갈하고 향기롭고 단정하고 현실적이거나 정상적인 것이야말로 동경하는 세계임을 깨닫는다. 그것을 사랑하고 더러 질투하는 인간적인 예술가로 거듭 나겠다고 고백한다.

 

 

  길 잃은 시민성의 굴레를 쓰고 고뇌했을 토니오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다고 믿는 우리네 자화상이기도 하다. 단춧구멍에 들꽃을 꽂은 채 단정히 책을 읽는 아버지와 때론 기타나 만돌린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집시 풍의 엄마가 공존하는 게 사람이다. 예술이냐, 현실이냐 길 잃은 토니오 크뢰거들이 어슬렁대는 한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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