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냄새
이충걸 지음 / 시공사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기침이 그치지 않는다. 마른 콧물에도 휴지는 쌓이고, 간헐적인 재채기엔 진저리가 따른다. 들숨과 날숨의 콧김 어디에도 냄새가 섞여들지 못한다. 안과 밖을 드나드는 저 도저한 호흡 주기에 내 후각의 기미는 희미해져만 간다. 잊혀가는 전설처럼 냄새는 코끝에서 아련하고, 비염의 온갖 낌새는 끝내 후각상실이란 후유증으로 수렴되는 중이다.

 

  빗님 오신다. 공중을 떠도는 습기는 떼로 몰려 호흡기에 달라붙는데 비릿한 혐의를 품은 그 어떤 냄새도 내 후각을 풀어놓진 못한다. 무취의 괴로움을 견뎌야 하는 건 중증 비염의 가장 큰 형벌이다. 향을 못 맡으면 무기력해지고 무기력은 비염을 악화시키고 악화된 비염은 다시 향기를 앗아가고.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이 몸과 마음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책으로라도 품새를 다잡는다.

 

 

  잘못 고른 책일까. 엉너리로 가득 찬 문장은 넘치도록 진열된 청과전의 과일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과잉된 비유야 개성으로 치부하더라도 그 불분명한 문장 앞에서는 실소가 인다. 한데 어느 순간, 주관적이고 불가해한 이미지들이 주는 마력에 이끌려 책장 넘기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진열대에서 떨어진 석류 서른 개쯤 훔쳐 먹은 듯한 불안한 새콤달콤함이 책 속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불협화음이 내는 그 청량감은 감각적이고 부조리한 날 것들을 직감으로만 바라보려는 작가의 뻔뻔하고 자유로운 자의식 덕이었다. 그 뿌리를 헤집느라 데우려던 김치찌개를 다 태워버렸다.

 

 

  가스레인지 위 두 시간의 최강 불꽃에 코팅된 냄비가 주저앉고 온 집안엔 그 청량감의 백만 배나 되는 연기 자욱했다. 일층까지 누린내 진동했다는 누군가의 초인종이 있기 전까지 내 시야는 온통 혼돈 속에 갇혀 있었고, 후각 안테나는 그 어떤 냄새도 감지할 수 없었다. 비염 앓는 우기에 읽는 책 한 권은 내면의 혼란과 동시에 일상의 두려움을 환기시킨다. 이래저래 심란한 늦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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