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 뜨겁고 깊은 스페인 예술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띠지를 연민함

 

 

주문한 책들이 배달되었다. 맨 위의 것 한 권을 집어 올리는데 종잇조각이 너덜거린다. 책을 감싸는 띠지다. 강렬한 붉은색의 띠지는 다섯 권 중 네 권에나 둘러져있다. 더위 탓일까. 성가시게만 보이는 띠지를 보고 있자니 자원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띠지의 존재이유는 광고 효과 때문일 것이다. 서점에서 손수 책을 고르던 시절에는 그 시각적 덕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종 커뮤니티가 활발하고 인터넷 서점이 발달한 지금에는 그 효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띠지 문구를 보고 구매욕을 발동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래도 띠지를 굳이 변호하자면 장식효과 및 책 보호 역할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일정 부분 책갈피 기능도 담당해준다. 하지만 띠지의 모든 기능을 설명해도 실용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대부분 책 주인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신세다. 본문용보다 빳빳한 재질에다 컬러 인쇄까지 해야 하니 그 제작비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3000부 기준에 권당 100원 쯤 든다니 비용 대비 그 효율성이 미미하다.

 

 

띠지 문화는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단다. 일본에서 출판마케팅 기법으로 90년대 후반부터 활용했는데 우리 업계가 흉내 낸 거란다. 누구를 위한 띠지일까.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봐도 출판업자들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관행처럼 굳어온 악습을 과감하게 뿌리칠 용기가 없는 건 아닐까.

 

 

좋은 책은 화려한 띠지가 퍼뜨려주는 게 아니다. 책 내용이 말해줄 뿐이다. 자원, 시간, 인력을 낭비하면서까지 띠지를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모양새에 비해 효과는 미미한 띠지. 유통 기한 십초의 운명인 띠지를 연민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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