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시나브로문고 1
무울 엮음 / 움터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슬픔을 지는 자

 

  인디언 속담에서는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정의한다. 우정에 관한 경구 중에 이토록 가슴을 저미는 말이 있을까. 흔히 친구가 슬플 때 위로하는 건 쉬워도 기쁠 때 느꺼이 웃어주기는 더 어렵다고 한다. 인간 속성 상 동정하기는 쉬워도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내 슬픔을 등에 져줄’ 정도라면 동정과 인정을 넘어서는 그야말로 참된 우정이 아닐까.

 

 

  연예계 잘 나가는 걸 그룹 한 팀이 왕따 사건에 휘말렸다. 당사자들 간의 불만이 SNS를 통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기획사 측에서는 왕따 대상이 된 한 명을 방출하기에 이르렀다. 휴머니즘적 접근보다 경제 논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획사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제공해주는 여러 사실을 진실로 캐는 데 일가견이 있는 네티즌들이 가만 두고 볼 리 없다. 불 같이 일어난 그들은 기존 멤버들의 안티 카페를 개설하고 왕따 당한 당사자를 위한 구명 운동에 나섰다. 며칠 만에 몇 십만의 회원이 모였다. 유래 없는 일이다.

 

 

  세상은 다변화되고 그 속도마저 빨라졌다. 이제 우정마저 그 도도한 물결에 휩싸여 허울로만 남는 지경이 되었다. 여유는 사라지고 오직 앞서야 한다는 강박만이 눈앞에 넘실댄다. 우정도 친구도 소용없다. 내 슬픔 따위는 들키고 싶지 않은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관계를 만들기를 세상은 요구한다.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거처, 더 괜찮은 생활이라는 미명하에 어려서부터 물질의 노예가 되기를 부추김당하고 있다. 그 심한 예가 연예계라 할 수 있는데 반짝 인기 있을 때 한몫하자는 심산으로 기획자들은 어린 연예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왔다. 인성이나 가치관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덕목은 안중에도 없어 뵌다.

 

 

  왕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건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 역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 왕따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언제나 상황의 논리와 관련이 있다. 왕따의 배경이 되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건 어른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길지 않은 인생,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