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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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기관 직원들을 상대로 독서토론을 진행한다. 도서 구입 담당 직원이 몇 백 권은 족히 되는, 비교적 신간 도서목록을 전해준다. 토론할 도서를 정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욱 훑어 보니 인문 교양 문학 쪽보다 자기개발, 건강, 에세이 등이 더 많아 보인다. 자기 개발서는 인문, 역사 쪽을 읽다 보면 절로 감이 생길 것 같은 환상 때문에, 또는 개인적으로 직장이 없는 관계로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반강제적으로 읽는 남편의 책들이 그런 쪽이기 때문에 볼 기회가 있는데, 그게 저거고 저게 그거인 것처럼 내용들이 비슷해 뵌다. 내가 절실하지 않으니 별 흥미가 없다. 건강 쪽은 꼭 챙겨봐야 할 책이긴 한데, 질병 컴플렉스가 심한 나는 언제나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비겁함으로(얼마나 그쪽으론 자신 없고 비관적인지!) 두려운 나머지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어쨌거나 그 분의 목록이 정말로 감사했으므로 그 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책을 몇 권 골랐다. 그 중 가장 먼저 손이 간 것이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다. 장정일 마니아까지는 아니지만 그가 쓴 독서일기라면 사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는 소설가일 때보다 서평가일 때가 더 신뢰가 가는 인물이다. 읽지 않고 책을 평하는 사람 이야기도 이 책 안에 나오는데, 나도 굳이 말하자면 그의 소설에 대해선  읽지 않으면서도 왠지 손이 안 가는 쪽이다. (미안도 하여라! 하지만 많이 좋아하는 작가니 미워하지 마시라, 작가여.)

 

  계획표를 짜면서 느긋하니 4월 말에 이 책을 집어 넣었다. 내가 먼저 읽고 작가가 권하는 책이라면 수업 시간에 덤으로 그 책도 소개할 요량으로. 직장 있는 회원들이라 책 읽는 게 마음만 앞선 분들이 많다. 해서 주당 한 권은 무리라면서 대부분의 책을 두 주에 걸쳐 토론하기를 원한다. 이름하여 선토론 후독서라고 이름지었다. 책 읽을 시간이 없으니 다이제스트와 맥 집기를 진행자인 내가 해주면 그들이 다음 시간까지 최대한 읽어와 토론하는 방식이다.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하는' 분위기이기에 나는 최대한 그들의 조력자가 되어 보기로 한다. 부디 그들이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책 읽기 도전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랄 뿐.

 

  잡학다식한 독서광답게 장정일의 이번 독서일기도 흥미진진하다. 여담이긴 하지만, 방금 읽으면서 안 사실인데 난 그가 애독가이긴 하되 책 수집가는 아닌 줄 알았다. 한데 지금 그런 내 생각이 아리까리해진다.

 

  그는 확실히 애서광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벤야민이 작성했을지도 모를 애서광이자 수집가 설문지 31개 항목 중 0표 칠 것이 반도 안 된다.) 그럼 애서광이면 수집가이기도 한 것일까? 단언컨대 작가가 대답하진 않았지만 절대 수집가는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수집가가 책을 읽게 되면 모을 수가 없을 테니까. 수집가는 책의 최대 기능인 독서로서 모으는 게 아니라 운명의 무대를 만나는 것처럼 책 자체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이지 그것의 실용성에는 무덜 관심을 둘 테니. 이를 테면 비싼 도자기에 밥 퍼먹고, 술 따라 먹으려고 도자기를 소유하려는 게 아닌 것처럼 수집가들 역시 밑줄 긋고, 접어 가며 제 머리 속에 지혜를 담으려 책을 수집하지는 않는단 말이다. 수집 자체가 예술적 허영 쯤으로 허용된다면 말이 될까?  그러니 애서광이자 수집가 확인용  31개 테스트 항목에서 그가 네 개만 x표를 했다고 해서 곧장 수집가의 대열에 세울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애서광이되 수집가와는 멀어야지만 영원히 독서 일기를 쓸 수 있을 테니까.

 

  각설하고 당신이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테스트할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다면 이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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