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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아는 여자 ㅣ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2
이은하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여민지 일기
과히 여민지 신드롬이다. 그 소녀에게 자꾸만 관심이 간다. 내가 축구를 잘 알고 좋아해서가 아니다. 십대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 정신력과 긍정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여민지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우승컵과 골든볼, 골든부트까지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여민지 덕에 나는 골든볼(MVP)과 골든부트(득점왕)를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이번 경기 우승으로 여자 축구도 월드컵 대회가 열리고, 연령별로 세분화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역시 좋은 기량을 보여준 지소연 선수와 함께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 양대 희망봉이 될 거라고 매체들은 연일 보도한다. 그들 환상 듀오가 속한 앞으로의 경기가 자못 기대된다.
방송과 신문에서도 여민지 특집이 한창이다. 축구를 향한 민지의 순수한 열정은 그녀가 쓴 축구 일지에 잘 나타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래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썼다는 그녀의 축구 일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는 거저 된 게 아니었다. 깔끔한 글씨체와 정돈된 경기 그림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축구를 해왔는지 알 정도이다.
‘축구는 예술이다, 축구는 나의 인생, 축구 없인 못살아’ 라는 말이 적힌 그녀의 노트를 사진으로 보는 순간 서늘한 감동이 밀려온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이토록 강단 있게 제 삶의 운명을 부릴 줄 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민지는 축구를 노동이나 힘든 운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인터뷰 곳곳에 묻어나는 기본 생각은 ‘축구는 정말 재밌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러니 축구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맘껏 발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그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자.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근 온 힘을 다해 달린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 (2006년 12월)
‘공을 차다가 잠이 오면 두 사람을 생각하라. 너의 아버지와 라이벌을. 훈련하다 포기하고 싶으면 소중한 친구들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라. 나를 가능케 하는 건 생각이다’(2009년 9월)
중학교 때부터 소설책보다 성공학 책을 많이 봤다는 민지답게 책에서 인용하거나 스스로 생각해낸 많은 경구들로 일기장을 빽빽이 메웠으리라. 그 어린 나이에 흔들림 없이 제 삶의 목표를 세우고 정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민지처럼 한 가지 생각으로 한 가지 일기를 매일매일 채울 수 있다면 성공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내 일상의 설계도를 보면서 새삼 여민지가 대단하게 보인다.
여민지 만큼 하면 백퍼센트 성공하지만 여민지 삼십퍼센트만 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될 것이다. 요즘 내 화두는 이렇다. ‘본받고 싶은 사람의 삼십퍼센트 만이라도 따라하자.’ 주변에도 여민지 못지않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장악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나는 그들 삶의 방식을 존경하고 배우려고 애쓴다. 그들과 똑 같이 하려고 무리하다 보면 체력 소모와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차근차근 따라하려다 보니 삼심퍼센트라는 목표에서 타협점이 생긴 것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나으니 그 정도에서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다. 모든이가 여민지 부류처럼 생활한다면 이 세상은 저마다 잘난 사람만 넘쳐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가 정한, 여민지 삼십프로 따라하기 프로젝트가 유용하기 위해서라도 여민지 류는 드문 게 훨씬 낫다. 부러우니 별 주접이 다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