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 가면 신라가 보인다
윤석홍 지음 / 산악문화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따끈한 시집을 선물 받았다. 윤석홍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을 낸지 십여 년 만이란다. 소리 소문 없이 출간된 시집 제목은 ‘경주 남산에 가면 신라가 보인다’(산악문화, 2010)이다. 남산에 그렇게 많은 골짜기가 있다는 걸 시인의 시집을 통해 알았다. 남산에 대한 내 무지를 부끄럽게 만드는 그의 시편이 나는 미덥다. 산이 좋아 골골마다 행장 꾸리고 나섰을 시인의 모습이 시집과 오버랩 된다.

  아직 몇 편 밖에 못 읽었지만 그래도 리뷰 쓰고 싶은 욕심에 덜컥 연필을 들었다. 이런 시는 한꺼번에 몰아 읽어서는 안 된다. 숨겨 논 추파춥스를 혀끝으로 녹여먹듯 야금야금 읽어야 제격이다. 리뷰 제목 ‘시 한 편 건졌다’는 시인의 시 한 구절에서 따왔다. ‘비석대골’ (87쪽) 마지막 행에서 빌렸음을 밝힌다.

  나는 시를 잘 모른다. 하지만 내 취향에 맞는 시를 발견하면 긴 글에서 맛볼 수 없는 야릇한 희열을 느끼곤 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시의 변방을 기웃거린다. 짓는 자가 아닌 읽는 자로서의 그 서성거림이 언제나 즐겁다. 세상에 시인은 많고, 좋은 시 또한 지천이니 입맛 따라 시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어쩌면 나는 윤석홍 시인의 시보다 그 인품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시보다 더 시적인 그 행보를 좇다보면 머리에 푸른 잎 돋고 이 봄날은 마냥 계속될 것만 같다. 산을 좋아하는 그의 생에 대한 눈썰미는 산에서 완성된다. ‘나비의 겹눈은 명확한 상을 버리는 대신 / 세밀한 움직임을 얻는다 했지요 / 무엇 하나 고정된 것 없는 봄날 / 거짓 없는 진행형을 봅니다 / 그렇습니다, 흔들리는 봄날도 진짜입니다’ (43쪽)라고 시인은 남산 정우골에서 읊조린다. 나비의 겹눈으로 보이는, 혼곤히 흔들리는 봄날마저 세밀하게 보면 진짜 봄날인 게다. 시인의 눈에만 이런 발견이 쉽게 친구 되는 것 같아 질투가 날 정도이다.

  몇 년 전 시인의 소식을 한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일 년 간 모아온 원고료 전액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기부했다는 기사였다. 당시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큰 돈 아닌 원고료를 차곡차곡 모은 것도, 그것을 좋은 일에 쓰려고 맘먹었다는 것도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인이 존경스러워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씩 발표하는 시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덕이 쌓이고 / 시간이 흐를수록 / 영혼이 맑아진다면 / 어느 날엔 깨달음의 / 소리도 들리’(37쪽)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의 가슴이 내는 소리다. 시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다만 시가 시인의 영혼을 불러내고 있 것이다. 

  잠깐의 산행에서도 그의 성품이 드러난다. 사람을 아끼는 나머지 동료들에게 비옷이나 사탕을 나눠 주는 것은 당연하고, 산을 좋아한 나머지 널브러진 쓰레기와 빈 깡통을 줍는 것은 취미가 되어버릴 정도이다. 언젠가부터 시인의 기부 선행을 벤치마킹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심한지 몇 년 만에 드디어 나도 시인의 흉내를 내볼 수 있었다. 내가 봉사하는 교도소의 회원들에게 일정 금액의 영치금을 넣은 것이다. 열세 명의 회원들에게, 내가 일 년 간 노동해서 번 돈의 일정 퍼센트를 기부했다. 그런 기특한 짓을 하고 가장 먼저 자랑한 사람은 물론 윤석홍 시인이었다. 착한 사람에게 착한 일 했다는 칭찬을 듣는 것만큼 기쁜 것도 없었다.

  ‘마음의 눈으로 살펴보고 싶은 / 이 환장한 봄밤’ (86쪽)을 가끔씩 맛볼 수 있다면 그건 순전히 윤석홍 시인 같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들 덕분이다. 착한 사람들은 덜 착한 나 같은 사람을 깨쳐줄 의무가 있다. 그것도 한 편의 시를 통해서라면 더 말해 무엇 하랴. ‘몇 번이고 돌아가야 하는 길 대신 / 사방에 길을 내어 빠르게 오른다면 / 우린 우리의 길을 잊을지 모른다 / 그 길에 두고 온 / 마음 한 자락마저 잃’ (92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래 묵혀가며 그의 시집을 들춰볼 것이다. 몸살 앓는 봄밤에 끙끙대면서도 이 글을 달갑게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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