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란 무엇인가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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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철이다. 6․2지방 선거를 앞두고 홍보 전략도 각 당의 노선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중 홈페이지에 올린 여당의 한 동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인기 있는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선거 탐구생활’이란 홍보 영상물인데, 하필이면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란다. 여성 유권자 및 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건 당연하다.

  논란이 증폭되자 해당 동영상은 이틀 만에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다행한 일이나 여성유권자들에 대한 사과보다 변명이 앞서는 것도 영 마뜩찮다. 영상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정치에 관심이 없는 20대 여주인공이 정치와 한나라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을 원작을 빌려 말하려고 했던 것’이라나? 남녀의 차이점을 꼬집어 공감을 산 원작과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한 패러디물은 그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는 것을 그들만 모르는 것일까. 

  “뉴스 좀 보고 살아라, 그러니까 아는 게 하나도 없지.”

  “여자는 뉴스를 바퀴벌레 다음으로 싫어해요.”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 비하 발언 내용 중 일부분이다. 여자는 현 정부가 원전수주 계약한 나라 이름을 힌트까지 줘도 못 맞힐 뿐만 아니라, 공약보다는 후보자의 외모를 기준으로 투표 한단다. ‘드라마는 재방 삼방까지 보지만 뉴스는 절대 안보는 여자’라서 시사 문제와 공약집은 수능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여자가 드라마에 빠질 때, 남자는 스포츠에 빠지고, 반대로 여자가 스포츠 채널에 관심 가질 때, 드라마에 몰입하는 남자도 있을 수 있는 게 사람살이 아닌가. 남녀의 다름을 비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느 한 쪽의 우위로 귀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여성의 비정치적, 비시사적 성향이 도마 위에 올라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여성이 비정치적, 비시사적이라는 그 생각마저 편견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 것인가.

  “여자가 아는 건 쥐뿔 없어요.”  

  그러니 선거할 때, 무엇이든 잘 아는 남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것도 여당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것일까? 선거에 무지한 여성 유권자를 겨냥한 여당의 흡인 전략으로 이런 동영상을 기획했다면 타깃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선거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것은 개별자 나름의 사정이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를 싫어하고, 상식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무식하다고 자책하는 여성이 대다수 여성 유권자를 대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것을 남성적 시각으로 보려는 서구의 정치적 상황이 이런 편협한 생각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도올 김용옥은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2000)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구 문명은 바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철저한 부정, 즉 여성의 비존재라고 하는 여성성의 부정으로 귀착된다.’ 부연 설명하자면 유목으로 대표되는 남성 중심적 문화가, 농경으로 상징되는 여성 중심적 문화를 지배하게 된 것이 서양 역사의 자연스런 흐름이란다. 신의 인간 창조에 여자가 끼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신이 철저히 여성성을 부정함으로써만 그 존립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선거제도 역시 서구에서 유입된 것이니 예의 남성 위주의 생각도 자연스레 따라온 것일까. 

  반면, 도올에 의하면 동양은 여성과 남성의 조화 문명이었다. 철저한 남녀 평등적 철학구조를 가졌다. 선거제도에서 여성성의 회복을 인정하는 열린 시각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어느 한 성만의 능동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성의 조화로운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투표를 통해 여성의 인권과 정치수준이 결코 그들이 생각하는 저급한 것이 아님을 보였으면 한다. 여성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가 상생을 위해 나아가는 조화로운 날갯짓임을 분명히 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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