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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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맘껏 읽고 싶다는 욕심 앞에서 언제나 게으름이 방해꾼이다. 이 명백한 사실이 부끄러워 ‘바빠서 못 읽는다’ 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슬쩍 갖다 붙이기도 하는 것이다. 급기야 어렵고 두꺼운 책보다는 쉽고 간편한 책을 찾기에 이르렀다. 못 읽는 것보다는 그래도 읽는 게 낫다는 허영이 그런 타협을 불러왔다. 그 타협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필요에 의해서든, 한 박자 쉬어 가고 싶은 마음에서든, 집어 들게 되는 어린이 도서들에서 의외의 책 맛을 발견한다. 

  이영서 작가의 ‘책과 노니는 집’(문학동네, 2009)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한 편의 동화가 그 어떤 읽을거리보다 많은 것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주인공 장이는 유일한 가족인 필사쟁이 아버지마저 잃는다. 금서인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관아에 끌려가 산송장이 되도록 맞아 장독이 올라 앓다 죽는다. 천애고아인 장이가 만나는 주변인들 덕에 장이는 몸과 맘이 한 뼘씩 커간다. 

  양아버지 역할을 해주는 최 서쾌의 엄격함과 단호함도 미덥고, 다사롭고 이해심 많은 홍 교리의 심성은 죽은 아버지를 닮아 있어 독자로서 감정이입이 금방 된다. 대상에 대한 연민과 다정이 넘치는 기생 미적이가 장이 곁에 있는 것도 다행이고, 못생기고 당돌한 낙심이의 동심은 순수해서 정감이 간다. 똑부러지고 야무진 여동생 같은 낙심이에게 장이는 한없는 우애를 보여준다. 남동생 백일 값을 대신해 팔려온, 가난한 딸 부잣집의 낙심이. 상처를 꽁꽁 동여맨 낙심의 존재를 장이만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장이는 낙심을 동생처럼 끌어안는다.

  이 책을 읽어보라고 적극 추천해준 이가 낙심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주영이었다. 주영이는 내가 진행하는 어린이 독서교실의 회원이다. 야무지고 당찬 주영이는 ‘책과 노니는 집’을 꼭 읽어봐야 한다고 했다. 장이와 낙심이에게 희망을 주는 어른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책이 현실보다 훨씬 좋아요.” 책을 권하면서 주영이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현실에서는 홍 교리 같은 어른이 없잖아요. 미적 언니 같은 고운 사람도 만나기 힘들고요.”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서 그런지 쉽게 마음 문을 열지는 않았다. 사람에 대한, 특히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말 속에 장전되어 있었다. 뭔가 모를 뜨끔함이 가슴을 후렸다. 주영이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아이들이 내뱉는 말들은 희망적이기 보단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주영이처럼 자신이 관심 있게 읽은 책 이야기를 할 때는 확실한 자기 의견을 말할 줄도 알았다. 양반이면서도 하찮은 필사쟁이 아들인 장이와 깊은 대화를 주고받는 홍 교리, 낙심이 같은 천덕꾸러기를 상대해주는 기품 있는 기생 미적이 같은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 기쁘지만 책 속에서 벗어나면 이건 현실이 아니야, 라고 슬퍼진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환경적 요인으로 마음을 다친 아이들은 현실보단 책이란 도피 속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내겐 다행이자 안타까움으로 비친다. 책이 있어서, 좋은 동화가 있어서 자신들의 감정을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것이 도리어 현실을 부정하는 기제가 되는 것은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책을 사 모으느라 몰골이 누추하다. 책이랑 정분이라도 난 것인지 읽고 싶은 책을 못 얻으면 안절부절못하지.> (85쪽) 책을 좋아하는 홍 교리의 말처럼 아이들이 책 속에서라도 위안을 얻고, 나아가 현실에서도 그런 위안을 고스란히 얻어갈 수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홍 교리처럼, 미적처럼 장이를 챙기는 어른이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 책을 통해 동심을 열게 하는 시중이야말로 큰 보람 중 하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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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7-2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영주라는 아이 말에 참 미안해지는... 품격있는 리뷰에요.

다크아이즈 2010-07-23 04:24   좋아요 0 | URL
뭔, 품격씩이나~ 숱한 주영이들이 우리 언저리에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는 충격으로 몇 달 심란했지요. 순오기님이라면 이런 혼란을 미리 겪었을 것 같은 예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