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형제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역지사지 




  지인들과 영화를 봤다. 두 팀으로 나눠졌다. 각자의 취향 또는 사정에 따라 관람한 뒤 ‘헤쳐모여’ 하기로 했다. 내가 속한 쪽 영화가 조금 빨리 마쳤다. 나중 팀이 나오려면 일이십 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내 기준으로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일정이 빠듯한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도 아까웠으리라. 먼저 점심 먹으러 가잔다. 내 맘이야 조금 기다리고 싶다. 하지만 다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바쁜 사람들도 있고, 감기 걸린 이도 있어 따뜻한 곳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급히 식당으로 옮긴다. 거기서도 기다렸다 같이 주문하자고 말하지도 못한다. 다들 사정이 있으니. 시킨 음식을 먹고 있는데 늦은 일행이 들어온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부러 늦은 것도, 긴 시간도 아닌데, 좀 더 기다리자고 말할 걸. 내가 뒷팀 멤버였더라도 기분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다.

  오묘한 게 인간이라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맘 상하기 쉽다. 작은 것부터 역지사지하는 게 원만한 인간관계의 기본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 비겁을 탓하며 삼키는 비빔밥이 계란껍질 섞인 것처럼 껄끄럽기만 하다.

  불편한 맘을 걷어내고, 혹 맘 상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커피집에 들른다. 기분 좋게 커피 한 잔씩 마셔도 되는데, 커피 값 지불하는 입장을 생각하는 아줌마표 배려가 발동해 사람 수에 못 미치는 커피를 시킨다. 카운터의 기꺼운 동의를 구했음에도 ‘어딜 가나 아줌마들 매너 없다’라는 책잡힐까 또 맘이 불편하다. 가장 꼴불견 손님들 중 하나가 자리 값 안 내고 커피 마시는 사람이라고, 커피숍 하는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숍은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여타 다른 서비스(이를 테면 안락한 의자, 커피 향, 분위기, 음악)를 제공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곳이니 일행 중 누군가 커피 안 마시고 자리 차지하는 것은 내 생각에도 결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람 수대로 커피 값을 다 받지 않은 주인의 영업 마인드에 감격까지 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에어컨 바람에 노출되니 콧물이 난다. 구석진 자리라 다른 일행을 지나 냅킨을 가져오기가 영 불편하다. 마침 냅킨 코너에서 정리하는 종업원이 보인다. 휴지 좀 주세요, 했더니 바로 자신의 코앞에 있는 냅킨을 턱으로 가리킨다. 셀프 서비스니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셀프서비스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해석한 어린 종업원이 괘씸하기만 하다. 바로 앞에 있는 냅킨 한 장도 손님에게 갖다 줄 수 없는 게 셀프 서비스의 기본 정신인가 하는 서운한 맘이 생긴다. 사람 머릿수대로 시키지 않은 커피 때문에 이런 불친절을 당하나 싶어 괜히 소심해진다. 

  역지사지해서 종업원 맘이 되어본다. 우루루 몰려온 아줌마들, 커피는 사람 수 반 만 시켜놓고, 쓸 데 없어 뵈는 수다만 늘어놓는다. 남편 흉, 음담패설, 자식자랑 등 뱉어내는 얘기마다 뼈와 살이 되는 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교양 없는 저 아줌마들에게 불친절로 응대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맘이었을까. 이십대 초반엔 결코 완벽하게 공감할 수 없는 아줌마들의 세계가 있으니 그 종업원을 이해하도록 하자. 아줌마가 될 것 같지 않은 어린 아가씨도 언젠가는 제 엄마가 걸었던 아줌마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영입된다. 그 때, 지금은 추태로만 보이는 아줌마들의 절절한 일상을 뼛속 깊이 이해하게 되리라. 

  기분 좋은 아줌마표 수다가 끝나고 나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내일 행사 관련 차편 문의 전화다. 모일 장소가 정해졌는데도 자신이 있는 곳을 버스가 경유해갔으면 하는 논의를 해온다. 정해진 몇몇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지점에 차가 서주기를 바란다. 전혀 악의 없는 그 문의를 운전하는 사람 입장 생각해서 거절해야 하는 맘 역시 불편하다. 봉사차원에서 운전해주는 분더러 우리들의 고용인이 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 하루 잘잘한 일과에서 책 한 권 보다 귀한 것을 얻는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헤아리는 것. 그것만이 사람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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