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꿈꾸는 집 - 제6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08
정옥 지음, 정지윤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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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진진을 위한 책




  오랜 만에 반가운 이를 만났다. 독서 클럽 모임에 예의 활짝 웃는 모습으로 그미가 들어왔다. 그미는 우리 독서 모임의 초대회장이었다. 모임에 뒤늦게 합류한 나는 그미의 다사롭고 정감어린 성품에 매료되는 중이었다. 천성이 무미건조하다 못해 시니컬한 쪽인 나는 그미의 살뜰함을 벤치마킹해야지, 하면서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한데 채 정도 들기 전에 이별이란다. 구상 중이던 사업을 펼치게 돼 그미는 더 이상 독서 모임에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슴팍으로 싸한 바람 몇 겹이 지나갔다. 모두들 그미를 보내고 싶지 않아했다.

  서운함을 삼키며 송별회 점심을 같이 하던 날이 떠오른다. 아직 모임에 적응이 덜 된 나는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어리바리 눈치 없이 구는 동안, 도리어 그미가 사주는 점심을 얻어먹기만 했다. 그미가 떠나고도 한동안은 내 센스 없음을 후회했다.  

  인사차 들른 그미는 책 한 권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정옥 동화작가의 ‘이모의 꿈꾸는 집’(문학과 지성사, 2010)이다.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제 6회 마해송 문학상>을 탄 작품인데 그미의 동생이 쓴 장편동화라고 했다. 대구에서 글 쓰는 동생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귀한 상(자그마치 상금이 일천만원이란다)을 받고 출간까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아직 작품집 한 권 없는 나는 뭐했나, 하는 반성도 잠시, 나는 책 속으로 금세 빠져버렸다. 

  똑똑하고 야무진 진진이는 특목고 가는 것이 꿈이다. 어릴 때부터 입시 경쟁이 전부인 세상을 경험한 진진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꿈의 울타리에 갇혀, 그것이 족쇄달린 제자리걸음인지도 모르고 부지런히 달리기만 했다. 하지만 진진이는 ‘이모’란 이름을 가진 아줌마의 캠프에 참가하면서 진짜 자신의 꿈이 뭔지를 알게 된다.

  진진처럼 모범생일수록 공부 지향적이다. 이 세상에 공부 말고도 할 것이 많다는 건 인정하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건 모범생 진진의 잘못이 아니라 규정된 틀에 익숙한 어른들의 잘못이다. 엄마 말 잘 듣는 진진, 공부에 도움 되지 않는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진진, 특목고 가고 서울대 가서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인 진진. 하지만 그런 진진의 꿈은 온전히 진진의 것이 아니다. 엄마의 꿈이 고스란히 진진의 꿈이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모라는 아줌마가 연 꿈꾸는 집 캠프를 통해 자신의 꿈이 뭔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서서히 깨달아가게 된다. 이모 아줌마가 말한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는 ‘책’이라고. 단 자존심 강한 책이란 걸 강조하면서 이렇게 충고한다. <진심일 때만 읽어야 해. 여기 있는 애들은 자존심이 높아서 진심이 아니면 놀아 주지 않는단다. 진심이 아닐 때 책을 펴 봤자, 아무도 안 나올 걸?>(27쪽)

  처음엔 흰 종이만 보이던 진진의 눈에 차츰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책과 진심을 나누는 친구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레박과 거위와 개의 꿈을 이해하게 되고 진심으로 친구가 된다. 공부만을 위해 읽었던 책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주일의 캠프 동안 책 속의 모든 사물, 사람과 진심어린 교감을 나누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꿈이 뭔지를 알게 된다. 엄마(어른)의 바람대로 살아온 자신을 벗어나 진진 자신이 되는 것. 이런 의미에서 서점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고 건네는 마지막 한 마디 <안녕, 나의 진진, 나의 꿈>이란 말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껍데기인 나를 버리고 온전한 자신을 찾기 위한 구실로라도 이 책은 나 같은 이가 읽어도 좋겠다. 물론 책을 선물해준 독서회 초대회장을 위해서라도 나는 다음 번 토론 목록에 이 동화를 기꺼이 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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