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작은 그 여자 동학시인선 98
서숙희 지음 / 동학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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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일랑 시 한 편에




  후다닥, 할당된 영어 문항을 풀어 젖힌 아들 녀석, 문제집을 던지듯 밀쳐놓는다. 얼렁뚱땅 주어진 목표치를 해치우고 ‘개그 콘서트’를 쳐다보며 낄낄댄다. 세상 근심일랑 일찌감치 잊은 표정이다. 그래. 의무 방어전으로 해치우는 공부보다야 웃음 주는 개그 프로그램이 백 번 흥미 있지. 학원 도움 받지 않고 독학하려는 그 태도라도 높이 사야지, 하면서 풀어 놓은 문제집을 살펴본다. 어라차, 그럼 그렇지. 얼마 가지 않아 오답이 나온다. 살짝 문항지를 봤다. 녀석의 오답과 상관없이 제법 흥미 있는 내용이다. 행복해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다. 수 년 간의 연구를 통한,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택해야 할 그 확실한 방법이 지문 안에 들어 있다. 

  어느 정치학자가 다국적 대학생들에게 각자 얼마나 행복한지 물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는데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 조사했다. 그가 알아낸 바로는 덜 행복한 사람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월급이 인상되어도 더 행복해질 수 없단다. 언제나 더 큰 욕심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는 만족하는 대신에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일 뿐이다. 고로 욕망을 버려야 행복해진다. 이 단순명료한 명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것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오지선다의 선택항에도 눈길이 간다. 이를 테면 건강을 유지하는 것, 좋은 직업을 갖는 것, 많은 친구를 갖는 것. 목표를 달성하는 것. 욕심을 줄이는 것 중에서 행복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르란다. 텍스트 안에서 답을 고르지 않고, 평소 생각으로 답을 고를 수만 있다면 개인의 인생관에 따라 각 항목 모두가 정답이 될 수 있다. 예상은 했지만 아들녀석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다 답 표시를 해 놨다. 이건 뭐 독해 따로, 자신의 인생관에 따른 정답 따로 택했다고 위안이라도 삼아야 할 판이다.

  열대야마저 겹쳐 잠 못 드는 이 여름밤, 원인은 무엇인가? 제 각기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위 영어 지문대로라면 욕망을 덜어내지 못한 때문이다. 자녀가 공부 해주기를 바라고, 가장의 월급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욕구는 끝내 만족 없는 번민이 되어 평범한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니 위 지문 같은 학자는 역설하게 된다. 욕구를 버려야 행복이 온다고. 이럴 때 한 권의 시집이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눈썰미 깊숙한 서숙희 시조시인의 ‘손이 작은 그 여자’(동학시인선, 2010)를 읽어 내린다. 내 안에 도사린 허욕의 실체를 점검하고, 조금씩이나마 그 무거운 덩어리를 덜어내려 애써본다.

  번민은 궁극적으로 욕망이 낳은 똥이다. 빨라지고 다양해지는 세상의 행보에 동떨어지고 싶지 않은 욕망은 똬리를 틀다 마침내 밤에 돋는 상처의 달맞이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상처 입은 영혼은 잠들지 않는다 / 새파란 칼날 위에 알몸의 생을 올려놓고 / 한 장씩 꽃잎을 피워 달빛을 베어 물'게 되는 것이다. 욕망의 거리에 내몰린 개별자는 그래도 곧추 직선을 꿈꾸며 스스로를 위무한다. ‘하루치의 밥을 위해 자존심도 유예’하고 ‘생존의 비린내 자욱하게 밴’ 하루를 ‘구부리고 굴’려 고단함을 잠재워 보는 것이다. 제상에 오른 꼬챙이 꿴 조기를 보면서 ‘길 아니면 가지 말고 곧은 것만 좇으라시던’ 말씀을 새겨보지만 그조차 ‘받잡아 따’르기가 어려운 건 내 안의 욕망덩이 때문이 아니던가.

  ‘무우에는 우-하고 고여드는 것이 있다 / 낡고 해진 것들을 둥글게 껴안아/ 따스한 즙으로 젖는 겨울밤의 아랫목’을 발견하고, ‘사람과 사람의 일이 단추를 풀고 채우듯이 / 그렇듯이, 서툴지도 완강하지도 않다면 / 그렇듯 담담하고도 사소한 일’임을 안다면, 그깟 내 안의 허영 한 덩이를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팽팽하게 둥글던 보름달 보내고 열이레 쯤 되는 달밤이 오면 ‘그대와 나 사이에 놓인 아득한 은유 같은’ ‘기우는 저 쓸쓸한 이치를’ 수긍하게 되리라. 행복을 갉아먹는 저 욕망 덩어리가 쉬 깨지지는 않겠지만 그럴수록 그 찌꺼기, 시 한 편에 곱게 씻어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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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7-2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
서툴지도, 완강하지도 않은
그렇듯 담담하고도 사소한 일이지만,
그 안에서 단추를 풀고 채울 때마다 번민하는 것이 인간이죠. ^^

저도 '무우'가 '무'로 표준어화된 것에 엄청난 불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하고 고여드는 것을 빼버린 나쁜 학자들에게 욕을 보냅니다. 더위 엄청 먹어라!!! ^^

까망 여사님의 더위까지도 다 쫓아보내 드릴게요. ^^

다크아이즈 2010-07-23 18:28   좋아요 0 | URL
앗, 글샘님 제 별명이 한 때 까망여인, 이었다는 걸 어째 아시고? 팜므 느와르(제 전공이 불문학입니다.)라는 제 닉네임 보고 팜므 파탈이 떠오르는지 어떤 분은 무섭다고 하시던데, 온순한 제 닉네임은 까망여인(앗, 까망여사가 더 현실적이네요.)이라는 것. 글샘님 알아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

알라디너분들, 저 팜므 느와르이지, 팜므 파탈 아니랑께요~~

무우, 가 무가 된 것은 저도 심히 서운해요. 저 같은 갱상도 사람들은 무우, 할 때 뒷글자인 <우>자에 액센트를 주는데, 서울 사람들은 <무>에 강세를 주다보니 뒷글자 <우>를 있는 듯 없는 듯 무시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실제로 <무우>는 <무>보다는 <우>의 강세에 더 의미가 있는 말일 터인데... 정말 아쉬워요. <우~~>의 깊은 뜻을 놓친 그 학자들,글샘님 더위까정 몽땅 받아라, 우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