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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ㅣ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밑줄긋기가 하나의 리뷰가 되어버리는 수잔 손태그
41 몇 개의 선택된 사진의 전쟁들 속에서 고통을 의식한다고 한들 그것은 억지일 뿐이다. 그 의식은 금방 불타올랐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 뒤, 곧장 우리의 생각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글로 씌어진 이야기와 대조적으로, 사진은 단 하나의 언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잠재적으로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 피가 흐르면 앞쪽에 실어라 (39)
65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수세기 동안 기독교 예술은 지옥의 묘사를 통해서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욕망을 모두 충족시켰다.
110 이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중의 메시지가 있다. 이 사진들은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만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사진들, 이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떨어진 곳(간단히 말해서 가난한 나라들)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122 피사체가 전혀 포즈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지불식간에 찍었다는 이미지가 평범해 보이지 않을 경우, 보여져야 할 필요가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행위는(고통으로 가득 한 현실을 눈앞에 바짝 들이대는 식으로)보는 사람들을 괴롭혀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라고 강요하는 꼴이 되어버린다.~전쟁 사진을 통해서(동정심, 연민, 분개 등) 감정을 착취한다는 쟁점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50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관음증적인 향락(그리고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전쟁터에 있지 않다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그럴싸한 만족감)을 보건대,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시련, 그것도 쉽사리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낄 법한 타인의 시련에 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167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나가는 것도 아직까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인 듯하다. 이 세상에 온갖 악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데 매번 놀라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섬뜩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잔인한 해코지를 손수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다.
나이가 얼마나 됐든지 무릇 사람이라면 이럴 정도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를 망각할 만큼 순수하고 천박해질 수 있을 권리가 전혀 없다.
오늘날에는 이렇듯 도덕적으로 모자란 상태에 남아 있기가 훨씬 더 어렵게 만드는 이미지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이미지들이 늘 우리를 항상 따라붙는 것이다.
186 ‘로버트 카파의 쓰러지는 병사’라는 논문에서 리처드 휄런은 이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카파가 어느 공화군 병사의 사살 장면을 전선에서 우연히 찍게 된 과정의 세부 정황은 사실상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