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태석 신부를 알게 된 건 방송을 통해서였다. ‘KBS 스페셜’에서 부활절 특집으로 신부님의 짧았던 생애를 조명해주었다. 한마디로 신부님은 수단의 슈바이처였다. 20세기 초, 가봉의 람바레네에 슈바이처 박사가 있었다면, 21세기 초, 수단의 톤즈에는 이태석 신부가 있었다.

  지구상, 가장 키 큰 종족 딩카족이 사는 마을 톤즈에 이태석 신부가 나타났다. 스쳐 지나는 만남이 아니라 그곳의 정착민이 되기 위해. 의과대학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제대한 신부님은 물질적 풍요와 보장된 미래를 미련없이 버렸다. 그리고 사제가 되었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였다. 아랍계 북수단과 원주민 남수단은 내전 중이고, 1980년대 이래 이백 만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톤즈는 그 중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이다. 그런 마을에 웃음꽃을 피운 당사자가 이태석 신부였다.

  한센병을 앓는 그들은 손발가락이 뭉툭했고, 더러 눈마저 먼 이도 있었다. 변변한 신발 하나 없고, 마땅한 옷가지조차 걸치지 못할 정도인 톤즈 사람들이었다. 보기 흉한 발모양을 손수 본떠 가죽 슬리퍼를 주문해 신기고, 지구촌 독지가들에게 도움을 청해 옷을 구해 입힌 것은 신부님이었다. 골절 입은 환자를 치료해주고, 눈먼 할아버지의 말 상대가 되어주는 것도 의사인 신부님이었다. 아이들과 힘을 합해 톤즈 강의 모래를 날라 마을 학교를 세웠다. 오염된 물 때문에 생긴 콜레라를 막고자 우물 또한 여러 곳에 팠다. 겨우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식량난을 극복하고자 사람들을 다독여 농경지를 일구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음악을 통한 교화였다. 웃음이 사라진 아이들에게 정감을 일깨우기 위해 35인조 브라스 밴드까지 결성했다. 학생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신부님은 손수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법을 가르쳤다. 리코더와 기타를 배우는 학동들의 눈망울은 순수하고 진지했다. 유니폼을 멋들어지게 갖춰 입은 밴드 대열이 마을 중심가를 지날 때, 사람들은 믿기 어려운 환호성을 내질렀다. 꽃이 펴도 절망의 열매를 기약했고, 빛살 내리쬐어도 우기만을 예견했던 그들로선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 직접 보고 듣지 않아도 신부님의 기도는 이 한마디로 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기도가 너무 빨리 하늘에 닿았을까. 신부님은 끝내 톤즈 마을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휴가차 한국에서 받은 건강 검진 결과는 말기 대장암이었다. 마흔 여덟이란 젊은 나이였다. 투병 끝에 신부님은 지난겨울 하늘로 떠나셨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봉사 활동 무대에 오른 신부님의 마지막 노래는 ‘꿈의 대화’였다. 

  방송사 취재진은 신부님 사진 몇 장과 투병 당시의 화면을 들고 톤즈로 날아갔다. 여전히 수단은 내전 중이고, 부족민들은 희생되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의 죽음을 전해들은 그들은 하나 같이 눈물을 흘렸다. 신부님 없는 톤즈는 희망 잃은 브라스 밴드 같았다. 한없이 낮아지고, 끝 간 데 없이 나누기만 했던 신부님 사진을 그들은 고이 받들었다. 누추한 집,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신부님 활짝 웃는 사진을 걸었다. 눈멀어 앞 보이지 않는 노인이 사진을 어루만지며 기도했다. 하염없는 눈물이 그 얼굴을 뒤덮었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일한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라고 슈바이처 박사는 고백했다. 이태석 신부 역시 그런 행복한 길을 걸었다. 너도 나도 행복해지기를 꿈꾼다. 하지만 세속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범부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일 하기는 힘들다. 당장에 슈바이처박사처럼, 이태석 신부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 울컥한 감응이 제 영혼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신부님을 조명하는 의미가 되리라.

  이태석 신부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사, 2009) - 신부님이 쓴 아프리카 이야기이다. 너무 늦게 발견한 이 책, 서점마다 묻혀만 있다. 베스트셀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장바구니에 책을 담는 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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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셋 2010-06-07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아마도 생전에 그렇게 사랑하셨던 톤즈 마을에서

바람이 되어 사람들의 땀을 식혀 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