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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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값은 너무 비싸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2010)를 두고 한 말이다. 혹시라도 절판될까 싶어 부랴부랴 장바구니에 넣고 보니 무려 이만 이천 원. 인터넷 책방에서 산 덕에 좀 에누리했지만 그래도 그리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재벌 신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 언론사들조차 광고 싣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책이라면? 조만 간에 쥐도 새도 몰래 책이 회수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리라. 해서 절판되기 전에 읽어보자는 심정으로 샀다. 400여 페이지가 넘는다는 것 말고, 책이 이토록 비싸야 할 이유는 없었다. 편집이 세련되었거나 표지가 고급스럽거나 제본이 견고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만한 가치를 지불해야 할, 독자로서의 의무 같은 것을 지게 만드는 책이다.

  씁쓸한 것은 정작 책을 내는 출판사 쪽에서도 한껏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거다. 책 앞표지에도 옆 라인에도 출판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검은 러닝셔츠 모양의 로고를 지닌 사회평론, 이라는 출판사 명은 겨우 뒤표지 오른쪽 귀퉁이에 처박혀 있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출판사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 영 마뜩찮다. 재벌 앞에 좀 더 당당했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독자로서의 욕심일 게다. 출판사와 독자 양 쪽에서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고 싶다. 돈 가진 자에 의한 책의 회수도, 권력 가진 자에 의한 절판 사태도 아직까지는 없으니.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왜곡이든 조작이든 기업의 긍정적 면모에만 익숙하던 우리가, 한 대기업 일가의 뒷면을 훔쳐본다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책 모든 내용이 진실일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의 큰 흐름은 기업 최고 권력자의 부패에 관한 보고서이다. 기업 때문에 경영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권력자를 위해 조직이 움직인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저자의 그런 논리의 일례로, 이 책에는 반도체 기술자 위에 비자금 기술자가 있다. 최고급 기술자도 그들에겐 소모품일 뿐이다. 오로지 최고 권력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업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고급 임원도 하급 직원도 한 개별자 집안의 영달을 위해 필요한 부품일 뿐이라는 현실. 서글프지만 사실이렷다. 어디 특별히 삼성만 그럴 것인가.  왜 우리는 양심적인 글로벌 기업을 갖지 못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깊어진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범주를 구성하는 것은 혈육도, 정도, 공통 관심사도 아닌, 오로지 돈이라는 사실. 그 돈이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비자금 조성, 정관 법조계 로비, 직계 경영권 불법 승계가 그것이다. 세 번째 단계인 경영권 불법 승계가 최후의 목표처럼 보인다. 그 목적을 위해 최고의 인재들이 ‘실’이란 썩은 내 나는 공간에 모여 돈다발이나 배달하고 있다는 사실. 회사 경영에 이바지한 사람들이 최고가 아니라, 그 일가에 충성을 맹세한 몇몇 가신들이 최고 대접을 받는다는 게 충격적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이 책은 삼성 비리를 고발한 책이 아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삼성의 기업 이념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삼성이 우리 경제를 이만큼 이끌어 왔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이건희의 힘이라기보다 삼성을 구성하고 있는 그야말로 인재들의 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비상식적인 개별자로서의 오너와 그들에게 초대된 힘깨나 쓰는 자들을 고발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함께 하는 부패의 잔칫상을 마주하다보면 절로 소시민의 눈에 핏발이 서는 것이다.  

  때론 지는 싸움도 할 필요가 있다. 잘 나가는 신문사들이 광고를 거절해도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여전하다. 광고는 막았어도 누리꾼 입소문까지 막지는 못했다. 모두가 읽을 필요는 없지만, 대기업 오너에 대한 지나친 면죄부로 그들이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다, 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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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1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0-04-25 13:40   좋아요 0 | URL
이 책으로 독서 토론 했는데, 반반으로 갈라지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네요. 내심 모두가 이 책에 공감하리라 생각했는데, 삼성(이건희)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쪽도 많다는 사실이 제겐 새로움으로 다가오더군요. 잘 계시지요?

로고 2010-05-1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 근데 사회평론 출판사는 원래 출판사 이름을 뒷표지에만 넣습니다. 모든 책이 다 그렇습니다.

다크아이즈 2010-05-12 07:2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사회평론 책을 처음 접해서..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혼자 쫄아서 헛짚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