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범우문고 2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소유의 고통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마무리 되었다. 화면에 비춰진 장례의식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장중한 관도 화려한 만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듯한 기단마저 마련되지 않은 장작더미 속에서 한줌 뼈로 변해가는 스님의 마지막 길은 그래서 더욱 존엄하게 다가왔다. 수습된 유골은 길상사와 송광사 불일암에 나누어 안치된다고 한다. 스님과 조금이라도 더 호흡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쇄골과 산골작업은 49재 이후로 연기한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언론마다 하나같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다 떠나신 법정스님이라고 소개한다. 스님의 무소유 철학은 온 국민에게 회자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정작 나는 스님의 책 한 권 변변하게 읽은 적이 없다. 유명세 때문에 읽지 않아도 마치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무소유’ 같은 종류가 아닐까 싶다. 조촐한 다비식이 주는 장엄한 울림 덕분에 뒤늦게나마 책을 사기로 결심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무소유’(범우사, 1999)를 클릭한다. 망설임 없이 장바구니에 담으려니 의미심장한 안내 멘트가 뜬다. 판매중지란다. 절판, 품절, 일시품절 등의 출판 관련 용어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판매중지라는 말은 생경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입적을 앞두고 남겼다는 법정스님의 유지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것들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는 말을 스님께서 하셨단다. 그 뜻을 출판사측에서 받아들여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일까.

  판매중지라는 인터넷 서점의 정보를 보고 있자니 몇 가지 생각이 스친다. 무소유를 설파한 스님은 어쩌면 당신 스스로 쓴 책이 가져다 준 소유의 고통 때문에 번민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스님도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을 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은 수많은 책을 집필했고, 그 대부분의 책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고 나아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진정한 무소유를 주창했던 스님에게 그 자체가 고통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책 판매 수익금으로 스님은 장학 사업을 하고, 남몰래 불우이웃을 도왔다. 그렇게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느라 마지막 가는 길엔 입원비도 낼 형편이 못 돼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억척스레 무소유를 살다간 스님도 근원적인 삶의 번민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스님 고통의 근원은 소유 없는 베품은 가능한가라는 주제가 아니었을까? 현실 사회에서는 소유 없인 베품도 없다.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가진 게 없는 이가 어떻게 베풀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스님은 베품을 전제하는 그 소유마저도 진정한 무소유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스님을 진정으로 좇는 독자라면 당신이 풀어 놓은 말들을 ‘빚’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그 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 스스로 빚이라고 한 말 대부분이 무소유에 관한 것인데, 그것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 사실이라면 역설적으로 그것을 실천하는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리할까 하는 생각에 미치는 것이다.

  매몰차게도 스님은 당신이 쓴 책마저 죽음과 함께 거두어들이고자 하셨단다. 모든 소유의 번민에서 훨훨 날아 열반에 드신 스님을 이해하면서도 한편, 예비 독자로서 스님이 유언했다는 ‘출간 중지 요청’만은 오보이기를 바란다. 설사 사실 보도라 할지라도 판매중지라는 야릇한 팻말만은 보고 싶지 않다. 그건 스님이 바라는 진심도 아니다. 다음 수를 노리는 출판사의 꼼수가 아니기 만을 바랄 뿐. 스님의 다양한 출간물들을 앞에 두고 독자들끼리 품귀현상이란 귀신에 홀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상업성에 휘둘리는 것이야말로 소유의 고통이란 번뇌에 발 담그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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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달랑 '무소유' 하나 읽었고 그 하나만 갖고 있어요.
우리 아들녀석 불교재단 학교에 다니는데 법정스님이 2회 졸업생이라고, 교문에 현수막이 붙어다네요. 그래서 녀석도 그분의 책에 관심을 표하니 '무소유'를 읽어보라 건넸어요.

다크아이즈 2010-03-16 01:44   좋아요 0 | URL
아드님 대단한 인연이네요. 법정스님과 동문이라면 어디가서 어깨 힘 좀 줘도 되겠어요. ㅎㅎ

2010-03-15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6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3-1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님의 책이라면 무엇이든 다 읽었고, 다른 책은 다 버렸어도 스님 책은 서가에 오롯이 모아 두었지요. 왠지 스님의 책들을 모아두고 바라보면, 흐뭇한 소유의 즐거움이 느껴지거든요. 우습게도...

다크아이즈 2010-03-16 01:48   좋아요 0 | URL
헉, <흐믓한 소유의 즐거움>은 법정스님한테서 제가 얻고 싶은 것이었는데... 역시 글샘님은 한수 위! 법정스님을 존경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