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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평점 :
노르웨이의 숲을 지날 때
딸내미, 짐을 꾸린다. 기숙사 입사 준비물을 챙기는 딸아이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드라이기, 화장품, 머플러 심지어 손톱깎이까지 살뜰히 챙기는 딸아이의 손끝이 야문 듯 재바르다. 나는 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야문 손놀림이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것을. ‘학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라는 핑계가 아니더라도, 열아홉 나이라면 대개 집 떠나 독립하고 싶어 하리라. 오직 설렘으로 짐을 챙기는 딸아이를 보면서 야릇한 서운함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내 본심이 아니고, 실은 노파심에서 오는 걱정 때문에 잔소리만 잦아진다.
청춘을 건너는 통과의례가 얼마나 아름답고 동시에 잔인한 것인가는 그 시절을 다 보낸 뒤에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이미 노르웨이의 숲을 휘돌아 넓고 깊은 강물을 먼저 건너온 기성의 부모로서, 그 청춘 불발의 시간들을 최대한 줄이도록 조언하고 싶은 것이다. 화려한 듯 남루하고 활짝 편 듯 오그라들기만 그 힘겨운 시간들을 건너는 법에 대해서.
비전을 가져라. 시간 낭비하지 마라. 건실한 남자 사귀어라. 동아리 활동 열심히 해라. 몇 가지 강조하는 엄마로서의 얘기를 딸아이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게 이런 충고를 일찍이 해줬더라면 더 나은 숲과 강을 건너는 법을 체득했을 것 같은데, 이 실속 있는(?) 충고를 딸아이는 엄마의 성가신 잔소리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하기야 부모로서의 이 모든 노파심은 무소용하다. 왜냐면 청춘은 타인의 충고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체험으로 완성해가는 것이므로. 어쭙잖은 엄마로서의 안내 역할보다는 차라리 한 권의 청춘 입문서가 딸아이에게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문학사상사, 2000)에서 우리는 다양한 청춘 군상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와타나베 역시 딸아이처럼 집을 떠나고 싶어 하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
소심하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신뢰로 주변 인물들을 끌어안는 주인공 와타나베, 알 수 없는 트라우마로 예기치 못할 죽음으로 향하는 기즈키, 한 번쯤 누구나의 첫사랑이었을 나오코, 그 첫사랑을 극복할 만큼의 슬픔조차 승화한 재기발랄한 미도리, 모든 것을 갖춰 오만함마저 카리스마로 비춰지는 나가사와, 나쁜 남자임을 알면서도 순정한 마음 때문에 질척이는 하쓰미, 특별한 상처로 인해 타인을 이해할 줄 아는 인생 선배 레이코, 자신 만의 세계에 몰입하며 세상 물정에 어눌한 돌격대 등을 통해 간접 청춘을 경험할 수 있다. 시대적 상황을 떠나 등장인물 하나하나는 이십대의 현실에서 만남직한 캐릭터들이다.
청춘의 숲을 휘도는 동안, 내 딸을 비롯한 그들이 와타나베처럼 따뜻한 감성을 지니되 소극적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상처를 두려워하진 않되 그게 잦지 않기를 바라고,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바라지만 그 상처를 극복할 만큼의 의연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한다. 절대, 치기로라도 나쁜 남자 따위는 관심조차 갖지 않기를 바라고 그런 남자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하쓰미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이 부모로서의 쓸 데 없는 걱정거리가 되고 말리라. 언제나 충고보다는 경험이 앞서므로.
하루키 식 표현에 의하면 ‘고민하지 말아요.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입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요.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 대단한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와타나베 군도 그런 인생살이를 슬슬 배워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세요.’
인생 선배인 레이코 누님이 와타나베에게 하는 충고야 말로 청춘을 건너는 자들에게 가장 자명한 충고이다. 노르웨이의 숲을 지나 저 상실의 강을 건넌 뒤에야, 기어이 숭고한 삶의 의미를 되짚게 될 이 땅의 청춘들에게 특별한 봄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