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할레드 호세이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먼저 만났다. 의무적으로 책 소개를 해야 하는 것 때문에 만난 책이지만 쉽게 쓴 책이지만 괜찮네, 정도였다. 역시 필요에 의해 (독서토론 모임 때문에) 읽은 '연을 쫓는 아이'는 그 이상이었다. 처음 누군가가 이 책을 토론 도서로 추천했을 때 하마터면 나는 이 책 대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선정할 뻔했다. 같은 작가라면 이미 읽은 책이 다루기가 쉬울 것 같았다. 한데 알라딘 검색 도중 반값 세일하는 것을 알고 이 참에 욕심 좀 내자 싶어 덜컥 사버렸고, 결국 토론도서로 정했다. 결론은 참 잘했어요, 이다.   

  가끔씩 리뷰를 쓰면서 별을 클릭하라고 알라딘에서 앙탈을 부릴 때 웬만해선 그 다섯을 다 칠해주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야박한 건 아니다. 쓰는 행위가 내 안의 악마와 힘겹게 싸운 결과물임을 알기에 웬만하면 별 넷을 준다. 악마를 몰아낸 힘겨움만으로도 별 넷은 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오만했을 땐 별 셋도 준 적 있는데 그건 쓴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쓴다는 것의 찬란함에 대해 별 시덥잖게 생각했을 때의 내 흔적이라고 봐도 좋다. 뭐, 말이 길어지긴 하지만 결론은 이렇다. 쓰는 이들 모두 위대하지만 정말로 내 취향에 맞는 글에는 별 다섯을 아낌없이 준다. 오랜만에 연을 쫓는 하산에게 별 다섯 개를 줘본다.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모자라는 감이다.  

  별 다섯인 이유는 스토리텔러로서 완벽한 기능을 하는 호세이니 때문이다. 이야기 자체가 재밌고 감동적이어서 소설에 이끌리는 경우는 내게 있어서 굉장히 드문 편이다. 나는 이야기에 연연하는 독자가 아니라 언제나 방식에 목말라하는 쪽이었다. 해서 아무리 좋은 얘기도 내가 원하는 방식이나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가 아니면 맘이 가지 않는다. 굳이 밝히자면 그의 문체만큼 평범하다 못해 무색무취한 경우도 드물다. 폴 오스터처럼 도회적 세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헤밍웨이처럼 깔끔한 문체의 소유자도 아니다.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방식의 이 작가가 내게 눈물을 자아내는 건 이야기 그 자체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할레드 호세이니를 벤치마킹할 것이다. 편안한 스토리텔러로서의 그 재능은 문체와 방식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산을 찾아 간 라힘 칸의 장면에선 기어이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남들 다 울었다는 신파를 자랑하는 엄마 부탁하는 모 소설 같은 경우에도 절대 눈물 따위 흐르지 않았다. 압록강은 흐른다, 를 읽을 때 이후 소설 읽으면서 처음 눈물 지었다. 그걸로도 호세이니는 내게 충분하다. 바바를 모시듯 그의 미더운 친구인 라힘 칸에게 하룻 밤 묵어가라고 권하는 하산을 마주할 때 마구 눈물이 흘렀다. 저한테 두 번째 아버지라고 말하는 순정한 하산을 보면서 비겁함과 죄의식에 시달리는 아미르는 진작에 가장 공감가는 캐릭터로 다가왔다.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아미르이기 쉽고, 숱하게 크고 작은 하산들을 배신한다.   

  호세이니의 등장인물도를 정리하면서 장편은 이렇게 쓰는구나, 벤치마킹한다. 적재적소의 바바와 알리와 아미르와 하산이라니! 심지어 악역인 아세프까지 끝까지 책임지는 그 소설적 안배에 머리가 서늘해진다. 극한 상황, 비겁한 침묵, 양심의 소리, 배반의 괴로움, 오랜 죄책감, 행동하는 양심에 이르기까지 소설이 주는 감동과 재미를 이토록 쉽게 보장하는 작가라니. 덕분에 아프간 내전을 둘런 싼 제 상황과 아프간인의 생활 상도 좀 더 알 수 있게 됐으니 일석이조라고나 할까. 그렇게 따지면 911테러가 없었다면 이 작품이 기획자의 눈에 덜 띄었을 수도 있으니 이래저래 잘 팔리는 소설은 우선 잘 써야하겠지만 기획력의 승리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겠다. 요즘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손가락 안에 든다고 오늘자 신문에서 봤다. 장하다, 호세이니. 그의 책 두 권을 샀으니 난민들을 돕기 위한 단체에서 활동하는 그를 위한 작은 응원이 되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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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15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영화도 책도 못 봤어요. 중학교도서실에서 빌려와 아이들만 보고 반납했는데...
읽어야 될,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은데... 알라딘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될 듯.^^

다크아이즈 2010-02-21 01:43   좋아요 0 | URL
서재 들어올 시간조차 쉽지 않은 나날이네요. 순오기님알라딘에서 보내는 시간 줄이지 마세요. 전 개인적으로 여기 오는 시간이 엄청 좋은데 것도 맘대로 안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