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좀 더 압축했으면 좋았겠다. 300여 페이지인데 200여 페이지 정도로 압축했으면 가독성이 더 나았을 텐데. 이런 바람은 독자로서의 작은 불만일 뿐, 진실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소설적 재능이 빼어난 작가라는 것. 그 성과가 훈련의 산물이 아니라 태생적 요청이 아니었을까, 하는 부러움이 인다는 것.

  그미의 문체는 ‘행동체 단문’이다. 그저 이야기 흐름을 따라 손끝을 놀릴 뿐이다. 그게 문장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끝내 독자의 심장을 펄떡이게 만든다. 단편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내면화된 단문’을 겨냥한다. 문체로 승부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을, 보다는 어떻게,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자칫 깊어 보이는 그 방식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정유정의 문체는 그것을 극복해서 술술 읽힌다.

  예단컨대, 그미는 아포리즘을 남발하거나, 내면을 낭창하게 읊조리는 작가는 되지 못할(않을!) 것이다. 장편에서 독자를 더 잘 끌어들이는 조건으로 아포리즘이란 칵테일이 적절하게 요구된다. 김연수나 윤대녕 류가 그런 조건을 잘 갖췄다. 하지만 그미는 존재의 근원 따위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 않아도 용서된다. 대신 블랙유머와 눙치는 눈썰미와 앙다문 입 속에 예리한 혀의 칼날도 숨기고 있으니까.  




  어지간한 작가다. 탈출하기 위해 시계 흉기 장면을 등장시키면서 승민과 최기훈이 대치하는 부분을 이십여 페이지씩이나 녹아낸다는 것 -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독자로서의 불만은 접어두고- 그런 고구마 줄기 캐기식 연결이 현장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 그런 장면들이 너무나 세밀하고 자연스럽다는 것, 그것이 작가적 저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한마디로 손끝에 다음 문장이 줄줄이 사탕처럼 물려 있고, 혀끝에 다음 대사가 칡넝쿨처럼 휘감겨 오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짓는 게 아니라 글이 그저 이야기를 잣는다고나 할까? 이런 걸 작가적 재능이라는 말 대신 뭐라고 표현할 수 있나?

  그렇다면 재능 없는 자들은 쓰기를 그만 둬야 할까? 재능에 비견되는 엉덩이 굳히기,라는 미련한 방법도 있으니 그리 절망할 일은 아니다. 재능 있는 자 쓰기를 즐기고, 딸리는 자 엉덩이 의자에 붙여라. 그리하여 전자처럼 손끝 바지런히 놀릴지어다. 이런 절망스런 감상문을 쓰게 만드는 작가(소설이 아니라!)이다. 

  적어도 어떻게 쓰냐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작가다. 그저 무엇을, 왜 쓸 것인가, 만 고민하면 되는 작가로 보인다. 이건 독자로서 신진 작가에게 보내는 최대의 찬사이자 부러움이다. 그미의 성공 조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공의 문제라기보다 성향의 문제라고 본다.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작가가 아니라 예견된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등단 한참인 작가들도 ‘무엇을’ 보다는, ‘어떻게’ 때문에 쓰기를 고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복 받은 작가, 천상 작가이고 말 작가를 오랜 만에 만났다고나 할까.




  문장, 일단 잔재미가 있다. 

 다들 같은이름을 쓰는 소식통을 정보 출처로 댔다. ‘정통한’ 소식통이라고. (130쪽)

 현선엄마는 현선이를 불렀고, 나는 애타게 잠을 불렀다. (130쪽)




 다행하게도 영화로도 제작된다니 작가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 읽을수록 디테일한 장면들은 영화를 염두에 둔 혐의가 짙다.

  불만이 있다면 넘치는 현장감과 모자람 없는 묘사나 대화에도 가끔씩 독해력이 딸리더라는 것이다. 필시 작가가 독자의 수준을 자신과 동일시한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리라. 친절한 설명은 독자를 모독하는 것이라 해도 과감한 생략 부분이 과도한 현장을 밀어내고 제 자리를 찾았더라면 가열찬 가독성을 보장하지 않았을까 인상 한 번 써보는 것이다.  




  비켜, 왜 하필 ‘비켜’였던가. 모르겠다. 그 순간 내 몸을 꿰뚫었던 것이 무언지만 안다. 통쾌함이었다. 해방감이었다. 깨달음이었다. 내 심장도 승민처럼 살아 있었다. 흉곽 속에서 아프게 요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 내 심장이었다. 보트 한 대가 왼편을 스쳐갔다. 나는 핸들을 잡은 채 일어났다. 앞 유리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내 안에서 들끓는 것들을 토해냈다. 추격자들을 향해, 드넓은 호수를 향해, 수리 희망 병원 501호를 향해. 내가 떠나온 세상을 향해.

  “비켜, 다 비켜!”  (268쪽)




  사람들이 병원 규칙에 열심히 순응하는 것은 퇴원, 혹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갈망의 궁극에는 삶의 복원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 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그리하여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꿈꾸던 희망이 세상 속 진실보다 달콤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기억의 땅으로 남을 뿐이다. 옛날, 옛날, 내가 한때 그쪽에 살았을 때 일인데…….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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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1-0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느낌이 맞아요. 300페이지를 200페이지로 줄일 수 있으면... 그런 바람.
저만 한 게 아니었군요.
이전의 소설도 그랬습니다. 스프링캠프...

다크아이즈 2010-01-0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신예로서의 호기 정도로 보면 될까요? 가지치기를 끝낸 작가가 휘두를 필력이란 칼날을 생각하면 아, 여기서 그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질투심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