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 치료 프로그램 추천 도서 목록을 찾고 있었는데 이 책이 대부분 추천 목록에 들어가 있다. 그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책이었다.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김형경 작가에 대한 애정(? 또는 관심)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그의 또 다른 장편인 <세월>에서 약간 밝힌 바가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서관에 들를 때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제목도 긴 이 책이 얌전하고도 깨끗한 상태로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언제나 다른 책에 우선 순위가 밀리곤 했다. 두 권으로 분권되어 있는 게 독자로서는 조금 부담이 됐을 수도 있겠다.  

  긴 제목만큼이나 사랑에 대해서 그만큼 할 말이 많아서 두 권으로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데, 그것도 잠시 그건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겠다. 세월,을 읽을 때도 그랬고, 이 책도 그렇고 근본적으로 작가는 길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다 읽고 나면 굳이 두 권짜리로 쓸 필요가 있을까 싶게 동어반복에 중언부언하는 면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서 그렇지만 깔끔하게 접근하는 김훈이나, 천운영 스타일이라면 이렇게 글이 늘어지게 놔두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별 불만없이 읽히는 건 글을 조직해가는 작가의 내공에 미더움이 가기 때문이다.  

  얼핏 제목만 보면 연애 소설인가 싶은데 그것보다는 이 땅에서 여성적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자기 정체성 찾기를 그리는 심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삼십대 중반, 현재는 싱글인 세진과 인혜가 소설의 중심 인물이다. 우리에게 덧씌인 사랑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삶의 겉치레인 휴머니즘의 장막을 벗어나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권력이라는 통찰에 깊이 공감한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권력 지향, 혹은 그 위계질서에 의해 조종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인간 관계의 모든 뼈대는 욕망이고, 그 욕망이 주체적 삶이 되게 하는 건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성찰하게도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사랑이란 말이 들어간 제목이지만 사랑의 실체는 환상이나 로맨스가 아니라 욕망에 가깝다는 그의 해석이 흥미롭다. 소설 전개 방식은 물론 일반 소설과는 다르다. 상처 많은 삼십대 여성의 심리치료 과정을 소설 기법으로 차용하고 있는데, 유능한 건축사 세진은 누가 뭐래도 작가의 분신이다. 정신 분석 내용을 토대로 여성들의 성과 가치관, 타인과의 관계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면담자인 의사와 세진의 정신분석 과정은 경직되어 있지 않고, 현실감있게  묘사 된다. 세진의 여러 문제, 예를 들면 어린 시절의 부모의 이혼과 이십대의 성폭행 에피소드 등은 여성들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얻어내고 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세진의 일부나마 독자들에게 투사되어 심리적 위안을 받기를 바라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세진의 심리치료 필요 조건은 유아기 이래의 상처와 결핍에 기인한다.  그녀로선 부모의 이혼이 가장 큰 트라우마가 되겠다. 언제나 인간 결핍의 원천은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주변인ㅡ특히, 부모라는 걸 확인시켜 준다. 심리치료책을 읽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이런 공공연한 비밀을 깨칠 때마다 마음밭이 환해지는 걸 느낀다. 절대적 관계자들과의 상충 과정에서 자신의 콤플렉스가 형성되고 , 그것이 또 다른 욕망의 출발선이 된다는 점은 매우 공감이 간다. 예를 들면, 아버지 같은 무심한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남성관이나, 엄마처럼 희생적인 길을 걷지 않겠다는 내면화 과정도 콤플렉스의 산물이라는 게 작가의 관점(아니, 심리학자들의 관점)이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인혜는 단순하고, 관계지향적인 반면, 독신녀인 세진은 완벽주의자이며 자주적, 독립적인 캐릭터이다. 내가 볼 때 이 둘은 작가의 이중분신에 다름 아니다. 작가 자신이 체험한 것을 글로 썼기 때문에 상당한 리얼리티를 확보한 것이 느껴지지만 그 과정이 다소 동어반복되어 지루한 감도 없지 않다. 해서 책을 읽다 보면 몰입되어 공감할 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굳이 비판적 책 읽기를 한다면 세진과 인혜라는 인물에 완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작가의 실제적 자아와 많이 닮은 세진과 그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인물인 인혜는 경험의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독자 역시 별개의 존재자이므로 완전히 공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이자 타인의 시선에 대한 장악력마저 지닌 세진이 그토록 자신이 겪은 상처를 동어반복으로 변주하는 것도 약간 지겨웠고, 세진에 비해 단순하고 온정주의자이자 남성 포용주의자(?)이기도 한 인혜가 세진의 입김에 좌지우지 되는 걸 보면서 현실감각을 놓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뭍 여성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제목처럼 여성들이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있다. 두 주인공이 활동하는 모임인 '오늘의 여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오여사 클럽을 통해 여성들의 사랑에 대한 자의식을 건너다 보자. 어떤 이는 사랑을 <권력욕이라 하고, 어떤 이는 생존 본능, 어떤 이는 미적 체험, 또 다른 이는 인간 사이의 소통...>등등으로 다양한 사랑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주인공 세진이 명쾌하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결국 사랑은 노이로제나 광기이며, 자기 콤플렉스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예를 들면 가난을 상처로 가진 사람은 부자를 찾고,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고학력자를,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권력자를 선망한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곧 자신의 상처나 콤플렉스가 된다는 작가의 그 말에 밑줄을 그었도다!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권하는 책인만큼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의 이혼, 성폭행에 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작가는 밤송이에 비유하고 있다. <밤송이 하나를 받아들고, 그것이 인생이라 여기며 쩔쩔매게 됩니다. 손바닥 뿐 아니라 온몸을 찔러대는 그것을 버릴 수도, 감싸쥘 수도 없는 상태에서 심리치료라는 과정을 통해>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삶은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부산물이다. 문제는 그 경험들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가 하는 일이다. 그 일련의 과정 자체의 기록이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방식의 소설 읽기를 경험하게 하고, 내면의 공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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