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이를 데리고 시험장(?)에 다녀왔다.

  교육청 산하 영재교육원생 선발 시험이라 그런지 학부형들의 열의가 대단했다.  치열한 학교별 예선을 거친 자들의 자부심이 여유를 가장한 그미들의 미묘한 제스처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네들 눈에도 내가 그렇게 비쳤을지도 모른다.) 운동장에서 대기하는 동안 아이들은 소풍나온 것처럼 마냥 신났는데,  삼삼오오 모인 부형들은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그간 갈고 닦은 교육 정보를 교환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일찌감치 교육열 따위에서는 한발, 아니 두 발쯤 물러난 자칭 자유주의자인(무관심을 이렇게라도 위안하련다.) 나는 그미들이 하는 얘기에  적당한 추임새를 넣으면서 열심히 들었다. 새길 얘기도 많았지만 집에 가면 다 까먹을 게 뻔했기에 맘만은 편했다.

 시험을 치고 나온 아이들 얼굴이 발그스름 상기되었다. 

  "아휴, 어려워!"

  대부분의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아들도 예외가 아니다. 웬만한 경시문제를 풀면서도 어렵다는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데(문제 해결 능력은 별로 없지만 상황자체에 몰입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 서 너 문제는 손도 못댔단다. 45분만에 15문항을 풀기엔 시간과 머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에너지가 소진되었는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피곤끼가 역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휙 던지면서 녀석이 말했다.

  "따뜻한 데서 몸이나 지져야겠다! (실은 경상도식으로 <찌져야겠다>고 된 발음을 했음.)

  순간, 허걱! 하는 심정이었다. 오학년짜리 남자애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것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진이 빠져도 그렇지 '따뜻한 데서(마루에 깔아놓은 옥장판을 두고 한 말이다) 몸이나 지져야겠' 다니!  얼른 따뜻한 바닥에 드러누우면 힘들다는 걸 엄마가 인정하게 되고, 따라서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밀린 숙제나, 학습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속셈이 깔려있었다.

  그렇더라도 차라리 엄마, 나 힘들어요. 좀 쉴게요. 이렇게 말했으면 동정심이라도 생겼을텐데... '따뜻한 데서 몸이나 좀 지져야겠다' 라는 달관적( ! ) 인생관은 오학년 짜리 남자애 입에서 나올 말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스스로 개척한(?) 말도 아니었다. 그 어투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엄마'였던 것이다. 평소 체력단련을 운동이 아니라 잠으로만 하는 이 애미에게서 아들은 그런 깜찍한(?) 발언을 은연 중에 전수받았던 것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요즘,  조금만 피곤해도 '따뜻한 데서 몸이나 지지고 싶은' 내 욕망을 알게 모르게 그렇게 표출했던 게 아들에게 자연스레 학습되었던 모양이다. 끔찍하셔라!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엄마 심부름 가는 아이의 동선을 카메라가 따라 잡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어여쁜 꼬마 아이는 심부름 가는 내내  '아이, 상큼해!'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상상해보라.  대여섯살 여자아이가 갈바람에 살랑이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아이, 상큼해!' 와 더불어 심부름 가는 모습을.  화면을 지켜보던 아동심리학자는 '평소 엄마의 긍정적인 표현법이 자연스레 아이에게 전수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절대 공감이었다.

  근데, 나는?

  '아이, 상큼해!' 정도는 못 되어도 적어도 '따뜻한 데서 몸이나 지져야겠다'라는 망발(?)은 막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입 앙다물고 지금부터 지지던 몸 벌떡 일으켜 연습해야겠다.

  '힘들어도 할 만해!'

 '왜 이렇게 공부가 재밌지?'

 저 두 말이 자연스레 아들 입에서 나오려면 엄마는 얼마나 내공을 쌓아야 하는 것일까?

 

  덧붙임 **  결국 녀석은  옥돌매트에서 '몸을 푹 지지느라' (장장 두 시간 반이나)  학원, 숙제, 학습지, 샤워 등등 남은 하루 일정 모두에서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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