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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말해 달라. 작년 초 무렵 봉준호 감독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변희봉, 송강호 선배님, 배두나, 그리고 너 이렇게 넷이 한 가족으로 나올 건데, 할래?”라고. 일단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들 감독님과 한 작품 이상 해본 사람들이고, 워낙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사람들이지 않나. 과연 이 인물들이 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면서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박남일이란 캐릭터에 대해 든 생각은? 우선 얘는 말이 많은 캐릭터였다.(웃음) 기존에 내가 했던 캐릭터와 다른 그 무엇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친구라고. 감독님은 나랑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렇게 크게 매치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 찍고 나서 ‘아, 나한테도 저런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남일이란 친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럼 박남일이 되기 위해 따로 준비한 부분은 없나? 특별히 준비한 건 없고 평소 하듯이 했다. 이를테면 <질투는 나의 힘>의 이원상 캐릭터를 구축한다고 하자. 그럼 그 인물을 머리에 담은 채로 일상생활을 한다. 문득 주변 인물들과 사소하게 나누는 대화에서 ‘이런 부분은 원상이와 같을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을 축적해 놓는 편이다. 감독님과 캐릭터 의논을 할 때도 딱 부러지는 설명을 하진 않으셨다. 감독님이 말하는 남일이는 기타의 1번 줄과 같은 인물이었다. 기타에 줄이 여섯 줄 있는데 기타 줄은 위에서부터 얇다. 그러니까 1번 줄은 가장 고음을 내는 줄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나온 거 보니까 얘가 많이 시끄럽더라.
원래 연기에 임할 때 미리 치밀히 계산을 하는 편인가, 아니면 본능적으로 다가가는 편인가? 일단 나는 계산이 안 된다.(웃음) 계산을 하고 촬영한 적도 있는데 감독님이 “컷”하더라. 그러면서 느꼈다. 연기란 게 혼자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봉준호 감독이 워낙 디테일에 꼼꼼해서 별명이 ‘봉테일’이라고 들었다. 연기 지도도 그런 식으로 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워낙 준비를 많이 하시긴 한다. 그러나 사전 준비를 많이 하시는 거지, 배우의 연기에 대해 치밀하게 정해 놓는 편은 아니다. 감독님과 두 번째 작업이라 굉장히 편했다. 우선 감독님은 배우의 예민한 감수성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다. 때문에 충돌될 수 있는 상황을 안 만드신다. 물론 ‘봉테일’답게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내고자 하니까 쉬운 작업만은 아니었다.
박남일은 어느 가족에나 흔히 있을 법한 골칫덩어리다. 그런데 송강호가 맡은 캐릭터 역시 또 다른 골칫덩어리로 등장한다. 그렇게 빚어지는 모습이 재미있더라. 그렇지. 둘 다 잘난 것 하나 없는데, 구박하고.
합동분향소 장면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혹시, 그 장면에서 진짜 술 먹고 연기하지 않았나? 솔직히 소주 반 병 정도 마시고 촬영했다. 일부러 마신 건 아니고, 그 장면이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보는 이들도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지 않나. 테이크는 많이 안 갔지만 상대방을 때리기도 하고, 지르는 부분도 있어서 상황에 맞추기 위해 마셨다. 아, 그렇다고 항상 음주를 하고 촬영하는 건 아니다.(웃음)
임필성 감독과의 촬영은 어땠나?(<남극일기>를 연출한 임필성 감독이 <괴물>에서 박해일의 대학 선배로 등장한다.) 어우, 이건 뭐. 감독 둘을 데리고 하려니까. 한 명은 모니터 앞에 있지, 또 한 명은 내 앞에 있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웃음) 농담이고, 솔직히 흔치 않은 경험이긴 하다. 임필성 감독님과는 단편 <쇼우 미> <모빌>에서 작업을 한 경험이 있어서 편했다. 연기도 굉장히 잘하시지 않았나? 당당히 오디션 보고 참여하신 거다. 테이크는 많이 갔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과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다. 시선 처리 같은 게 어렵지 않았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감정 잡기가 더 힘들었다. 상대 배우가 있을 땐 중간에 카메라 보면서 촬영해도 상대 배우의 표정이라든가 감정선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얘는 그런 걸 알 수 없으니까. 나중에 후반으로 가면서 괴물의 위치랑 연기(?)하는 걸 보면서 느꼈지. ‘아, 얘가 연기 굉장히 잘하네’하고.(웃음) 감독님 말대로 17~18세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녀석이라 흔히 생각하는 괴수가 아니라 장난기가 있다.
워낙 독특한 캐릭터들을 맡아왔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인어공주>의 순박한 우편배달부로 나왔다가 <연애의 목적>의 유림으로 나온 걸 보고 놀랐다. 갑자기 급선회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배도 아니고 무슨 급선회를….(웃음) 시나리오가 흥미롭게 읽혀지는 것을 먼저 선택하는 편이다. 그 중 이것이 내가 해볼 만한 것인가, 할 수 있는 것인가를 고려한다. 예를 들어 내가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는 부분이 50~60퍼센트 정도 되고, 나머지는 도전할 만한 숙제 같은 부분이라면 도전한다. 내가 해보고는 싶지만 도전의 부분이 80~90퍼센트를 차지한다면 쉽게 선택하진 못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