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E: 당신은 '착한 여자' 타입


       착함      
       멍청함   
       유용성   


당신은 그들에게 착한 여자로 보인다. 착하다기 보다는 착하지 않으면 아무 곳에도 쓸 수 없는 여자처럼 보일 것이다. 아마도 당신의 부지런함과 적극성이 문제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집에서는 게으름을 피는 당신이라 하더라도 사교성이 있고 남이 싫어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하지만, 자신의 의견은 항상 중용을 취하는 그 태도가 당신에게 좋은 상황만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엔 당신의 일터나 배움터에서 인기가 좋을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따돌림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세상이 원래 그렇거든, 약하고 순해 보이는 사람 은따 시키는 거. 세상은 당신에게 가장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언가 결정해야 할 상황이 되면 꼭 떠올려야 한다, 사회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 착한여자 ::

 

투덜이

. '내가 착할게, 날좀 사랑해줘, 내가 참을게, 내가 밥을 해주고, 내가 빨래를 해주고, 술국을 끓여주고, 뭐든지 다해줄게, 너희들이 나를 버리고 나를 때리고 나를 내팽개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벼랑까지 날 밀어버린다 해도 내가 이를 악물고 참을테니 날 사랑해줘.'.

'착한 여자'에서 정인의 테마곡이다. 사실 이 소설의 구도는 아주 간단하다. 착하기로 작정한 여인인 정인이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살이의 풍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생들이 뭔가 대단한 것으로 '승화'되는 과정이 그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착한 여자'가 아니라 '착하기로 작정한 여자'여야 더 알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착한 여자는 본래의 습성상 착한 사람을 가리킬 것이다. 말하자면 토익 시험 보러 갔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지우개를 안가져 왔다고 좀 빌려달라 했을 때, 약 5센치 길이 정도의 자기 지우개를 칼로 한 반정도 뚝 떼어 주는 게 아무렇지 않게 몸에 벤 사람( 착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어차피 토익 시험은 그다지 지우개가 많이 필요하진 않단 생각하에 한 1.5센치 정도 잘라 줄 것이다. 심지어 책상 바깥으로 지우개를 밀어놓고 "이따 쓸 일 생기면 그냥 쓰세요"라고 냉랭하게 말할 수도 있다. 죽어도 잘라서 줄 수는 없다는 것) 반면에 착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란 이를테면 위에 쓰여진 말처럼 "내가 착할 께"(지우개 많이 줄테니) "이따 답안지 손으로 가리지 말아줘"(날 좀 사랑해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착하건 착하지 않건은 결국 성격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성과의 대결구도의 한 축에 놓여졌을 때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된다. 정인이는 착할 수도 있고, 착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고, 착한 척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소설에서 정인의 착함은 너무 거창하다. 정인의 착함은 모든 그녀에게 가해지는 상처의 원인이 되고, 그러면서 동시에 나중에는 정인이 대단한 무언가로 승화시킬 '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모두 승화 중독증에 걸려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꼭 무언가 거창한 것으로의 승화가 있어야 그동안의 똥빠지는 고생이 의미를 갖는다는 고정관념은 어디서 나온건지. 정인을 키운 건 팔할이 상처였다고 그랬다고 말하면 되지, 왜 굳이 그래서 정인은 상처에대한 혜안을 얻고 득도의 경지에 이르러 결국 모든 것을 다 감싸안는 모성의 화신이 되어야 하는건가 말이다. 하지만 그 승화를 인정하더라도 정인의 승화에는 한 가지가 빠져있다. 그것은 곧 정인 자신의 욕망이다. 흔치 착한 여자는 욕망이 거세된 여자로 모든 소설에서 그려진다. 정말 문제는 정인이 착한 것이 아니라, 정인에게는 욕망이 없단 것이다. 착해서 욕망이 없는 건지, 아님 욕망이 없음으로해서 착할 수 있는 건지.. 욕망은 삶을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 시선을 부여하게 하는 무엇이다.

공지영은 한 인터뷰에서 남성중심 사회에서 못생긴 여성은 착하기라도 해야 살아남는 것 아니냐라 했다 한다. 그리고 스스로가 착해질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목을 착한 여자라 했다고 한다. (설마..)

어릴 적 읽었던 동화에서의 장면이다. 춤추기를 너무 좋아해 일을 안하고 춤추러 다녔던 한 소녀는 그 벌로 계속 춤을 추게 만드는 빨간 구두가 신기워, 울면서 숲을 헤매며 춤을 추다 마음 넓으신 신의 용서로 다시는 춤을 안추겠다고 쩔쩔 빌고 나서야 그 구두를 벗는다. 혹은 계속 춤을 추며 울며(꼭 울고 있어야 한다-이것만은 모든 버전의 동화에서 공통이다.) 마을을 떠난다. 소녀의 욕망은 그렇게 벌을 받는다. 이것은 백설공주의 계모에게서도 마찮가지이다. 그녀의 예쁘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그녀를 파멸하게 한다. 사람들은 여자가 예쁘기를 좋아하면서도 그것이 여성의 욕망으로 구체화되면 벌을 내린다. 백설공주의 계모는 못됬다는 성격이 그나마 좀 구체화되어 있다. 그러나 빨간 구두 소녀의 경우 동화 어디에도 그녀의 성격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춤을 추는게 좋아서 좀 더 많이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소녀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신겨지는 빨간 구두는 그 욕망마저도 그만둘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러나 욕망이 거세된 정인의 인생을 사느니 난 차라리 빨간 구두를 신고 하루종일 춤을 추겠다.

 

좋은거야 나쁜거야.ㅡ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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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0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실비 2005-08-1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34 님ㅎㅎ 저도 여러번 하면 님처럼 똑같이 나올것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