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단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존 버닝햄 엮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 나는 술을 마실 수 없고, 빨리 혹은 멀리 걷는 것이 안 되고, 음악도 즐기지 못하고, 섹스도 못한다. 끔찍한 박탈감이라고? 사실이다. 20년 전에 이런 글을 봤다면, 너무 놀라서 더 이상 읽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른 덧붙이자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다."

 영국 소설가 다이애너 에이실의 고백이다. 저 짧은 문장을 읽으며서, 솔직히 `앗, 저런, 세상에, 음, 허걱, 호오~' 등등 온갖 생각이 이어졌으니 역시 노인의 글은 젊은 것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 중 가장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는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지적이 뜨끔하다면 이 책에 눈을 돌려보자. 로버트 레드퍼드, 우디 앨런, 토머스 하디, 셰익스피어, 피카소, 처칠을 비롯해 화가, 소설가, 화가, 축구선수, 종신형 수감자 등 여러 `노장'들이 `나이 드는 것'에 대해 한마디씩 해준다.

 무엇보다 엮은 이를 주목해야 한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지각대장 존' 등 기막힌 그림책으로 전세계에 `버닝햄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다. 글들도 대부분 유쾌하지만 버닝햄의 재기발랄한 그림 55점이 책 중간중간에 숨결을 불어넣는다.(하기야, 나는 버닝햄이 `쓴' 책인줄 알고, 펼쳐보지도 않고 이 책을 집었다!)

 호메로스가 서사시를 노래한 것은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은 후였고, 아이스킬로스가 최고의 비극을 쓴 것도 예순을 넘기고 나서였으며, 소포클레스는 아흔이 다돼서 최고의 작품을 썼단다. 토머스 하디가 "최고의 문학 작품을 쓸 수 있는 평균 나이가 37세"라는 주장에 대해 담담히 늘어놓은 `노익장의 증거'들이다.

 노년의 든든한 벗은 유머. 남녀가 노년에 어떻게 다른지도 흥미롭다. 말년의 처칠에게 동료 의원들이 지퍼가 열렸다고 일러 주자 그는 "괜찮습니다. 죽은 새는 새장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단다. 정치가 앨런 클라크는 "마흔 다섯 이후의 남자들은 성생활에서 반복되는 좌절 때문에 생긴 심리적인 상처가 눈빛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했다.

 반면 여성 의학전문기자 클레어 라이너는 "스무살의 여자는 지나치게 까다롭고 거만하다. 30대에도 여전히 힘겨운 목표에 집착하고 지친다. 예순에 이르러서야 나는 조금 현명해졌다"고 고백한다.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은 "나이가 드는 것은 황금같은 젊은 시절에서 멀어지는 것이지만 10대를, 심지어 20대를 다시 살아야 한다면 사람들은 몸서리 칠 것"이라고 단언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시간을 함부로 썼는데, 이제 시간이 나를 함부로 대하네(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시간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젊어서 이런 조언들에 귀기울여 나쁠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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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지 않게.....휙휙 읽을 수 있다. 버닝햄 뿐 아니라....서양의 좀 잘 나간다는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유머를 갖고 늙어가는 걸까. 어느 대목에선가...노인이 공경받는 아시아에 대한 코멘트가 나오는데....서글퍼서 웃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노인에 대한 존경심을 잃기 시작했을까. 보수원로들이 미워지면서 한꺼번에 도매급으로 넘어갔나?

노년의 유머란게...좀 살 만해야 나오는게 아닐까 싶은 느낌도 슬프다. 먹고 사는 기본적 욕구가 해결된 노인들은 행복하게...나이드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농담도 내놓을 수 있겠지. 나 역시 늙어서 우아한 할머니답게 세련된 농담을 지껄이면 좋겠지만...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책에 기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점잖게, 센스있게, 평화롭게' 잘 늙은 분들 같다. 뭐, 질풍노도의 시기와 엄혹한 세월 겪고....평화로운 경지에 도달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어쨌든 뭐, 기왕 나이드는 법 배우려면...이런 분들의 말을 참고하는게 낫겠다. 안그래도 서른 중반 되니...세월이 터보엔진을 단 거 같은디...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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