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품절


...행복해지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항상 불행하고, 우리의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두려움에는 늘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프롤로그쪽

내게도 친구가, 진정한 친구,소꿉친구, 여자 친구들, 학교친구들이 있었다.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정을 붙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거리감, 거짓말로 인한 상처, 성인이라 착각하며 갖게되는 서로 다른 성향, 이기주의적인 태도, 비열하고 무기력한 생활, 자존심세우기, 매사에 심각하게 대하는 태도, 소리없이 주고 받는 상처, 미소와 무관심으로 치장한 채 행하는 공격 등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온갖 종류의 벌레들 때문에 이제 내 주변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슬픈 일은 아니다... 솔직히 그 자체로는 그다지 슬프지 않다. 나는 시간과 삶의 무게에 견디지 못하는 그런 우정은 좋아하지 않는다.
갑자기 절교를 하거나, 그럴싸한 일로 욕설을 주고받는다거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의 우정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시나브로 자연스럽게 사라져 간다. 우리를 이어주던 그 연결 고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끊어진다 하더라도 그 고리가 너무도 가늘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연결 되어 있기 때문에 우정의 소멸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살아간다. .....-171쪽

가끔은 그렇게 잊혀졌던 친구들이 자동 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기는 일도 있다. 간만에 동창회나 저녁 식사 모임 같은 "그래, 요즘은 무슨 일 하는거야? 어떻게 사는 거야?"라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주고 받는 그런 자리에 나오라는 연락을 한다.
우리는 무조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어야 하고, 어떻게 되어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변치 않는 존재로 머물 수가 없다.-173쪽

한번은 그냥 어떨 수 없이 그런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는 우리의 우정이 씨가 말라죽은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으며, 감정의 가학적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희생자가 바로 가해자가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174쪽

...우리가 한때나마 좋아했던 것들과 우리를 끈끈히 이어주던 감정, 즉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해주던 그런 따뜻한 감정도 없이 그저 살아 숨 쉬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그런 사람들을 모조리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일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175쪽

...난 마음속으로 옛 우정을 간직한 친구들은 모두 시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우정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만나지도 않고 무언가를 나누거나 함께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우정은 더 이상 살아숨쉬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로서의 그들은 모두 죽었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그들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6개월 전, 영원히 함께할 지난날의 친구들에 대한 합동 영결식을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
나는 언제까지고 친구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관 위에 수 킬로그램에 달하는 양파를 쏟아 부었다. -180쪽

...갑자기, 내게 남아 있는 그 수많은 내일들을 도대체 어디다 써야 할지가 궁금해졌다. -196쪽

회사 동료들은 바캉스 철이 되면 비행기를 타거나 태양을 따라 뛰어다니며... 그들이 알아낸 것은 자신들의 머리가 둥글다는 것 외엔 없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세계에 살고 있는 민족들이나 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토착 예술이나 건축 양식을 좋아한다고, 이해한다고, 많은 걸 배웠다고, 많은 걸 보았다고 말하지만 결국엔 빈 깡통을 통해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198쪽

1일주일간 전화 통화도 하지 않고, 일도 안하고, 뉴스도 접하지 않고,...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이 내 의식의 강가에서 낚시질을 하지 않는 그런 휴가를 보냈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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