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 무삭제 감독판 (2disc)
유하 감독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두 사람이 너른 벌판을 세상 다 누리는 평온한 모습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흐르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누구보다 먼저 자리를 박차고 극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보통 같았으면 적어도 몇몇 급한 사람들은 함께 밖으로 나올만도 했으련만
어느 누구하나 따라 나오는 사람이 없었고, 어느 누구하나 기침 소리 내지 않고 앉아들 있더라.

 
취해있고 싶지 않았다.

 
죽음의 문 앞에서 마저도 홍림의 뒤를 쫏고 쫏는 가련한 왕의 눈빛에도,
분노와 절망, 탄식과 한숨이 섞여 눈물로 흐르던 홍림의 눈빛에도,
절규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달려들던 왕후의 눈빛에도,
그 어느 누구의 눈빛에도 취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불편한 것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일부러 애써 털어내고 싶었다.
지독한 그들의 결말을 위로하는 듯했던 마지막 엔딩장면처럼 나도 
벌판을 달리던 두 사람의 틈에 숨어 그래도 괜찮았다고 그래도 아름다왔다고 애써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세사람이 만들어 낸 고집스런 애증과 애욕과 감정의 잔여물들이
’쌍화점’의 또 다른 제목인 ’상화’처럼 자꾸 내 심장 언저리에 차갑게 주렁주렁 매달리고 있다.

 
그들은 사랑했을까?

 
세 사람이 집착하던 ’연모의 정’의 시작은 도대체 어디일까
시작부터 금기였던 그들. 왕과 홍림의 관계도, 왕후와 홍림의 관계도 
허락될 수 없던 대상을 선택한 그 순간부터가 비극의 시작이었으리라.
끝이 보이는 비극.

그럼에도 달려들고 집착하고 품고 내지르고 무모하게 자기 자신을 던졌던 그들
그래서 그들이 한 것은 진정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극중 홍림의 변명처럼 ’한때의 욕정’이었을까...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내 마음을 짓누를때
유하 감독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부질없는 사랑, 사랑의 덧없음,
한때 눈부시게 피었다 순식간에 녹아버리고 마는 얼음꽃 같은 사랑의 순간성.
분명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 할 수도 없다.
사랑은 사랑이었지만 눈부시지 않은, 아니 오히려 불편하리만큼 적나라한 감정의 산물로서의 사랑.
사랑을 하며 하게 되는 거짓과 욕심과 상처냄과 이기심...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집착하는 ’사랑’때문에 잉태되는 불편한 열매들이다.
그 열매가 너무 독해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상채기를
마음 깊이 내버리고 만다.


그들의 눈빛은 말한다.



영화가 내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런 씁쓸한 비극의 열매들인데 
감독은 그것을 화려한 대사나 영상이 아닌 
세 주인공 그들의 눈빛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집요하리만큼 꺼내보이고 있다.

홍림의 침소에서 오래도록 그를 기다리며 초조했을 왕은 정작 홍림 앞에선 최대한 그 마음을 숨긴다.
이미 눈과 마음으로 왕후를 좇기 시작했던 홍림은
왕 앞에서 숨겨질래야 숨겨질 수 없는 그 변화를 애써 감추려 하고
왕후 역시 몸으로 반응하는 그녀의 욕망을 변화없는 표정으로 숨기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욕망이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거짓을 말하고 행동한다.

수없이 많은 장면들은 집요하리만치 이런 그들의 긴장관계를 쌓고 또 쌓는 연결 고리들이다.
화려한 세트, 연회장면, 디테일한 소품들도 충분히 시선을 잡아끌련만
그들이 뿜어내는 절박한 긴장관계는 한치의 틈도 내어주지 않는다.

이런 미묘한 마음과 마음의 싸움, 눈빛으로만 드러내는 긴장관계를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고 안정되게 -다른 말로 하면 질릴만큼 집요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쌍화점은 어쩌면 상당히 다른 평가를 낼 수 있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새롭지 않은 삼각관계에 성정체성이라는 양념을 더해 시대극의 외양을 두른 
이 영화는 그 흔한 코믹한 조연 하나 없고 기대할 만한 극적 반전을 노리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세 사람의 눈빛과 미묘한 심리, 비극의 열매로서의 감정의 중첩을 놓치게 되면
그야말로 평범한 ’이야기’, 지루한 ’치정극’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왕과 왕후, 홍림의 내달리는 감정과 갈등의 파생물들, 
감독이 일관되게 말하고 싶어하는 그것들의 덧없음을
세 사람의 눈빛과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그들을 둘러싼 기운에서 잡아낸다면
그 이후부터는 지독한 비극의 열매의 쓴 맛이 얼마나 지긋이 오래도록 심장에 머무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본 쌍화점은 연출은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배우들이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잡아내도록 최대한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왕이 보여주었던 슬픈 연모와 집착과 광기의 눈빛 - 영화 내내 압도적이었다. 브라보~-
건조하고 외로왔던 눈빛이 욕망과 간절함으로 빛나게 되어버린 왕후 - 그녀의 낮고 강단있던 목소리-,
수동적일 수 밖에 없었던 자의 회한과 절망과 탄식, 젊은 혈기 가진 자의 욕정과 연모와 치기를
동시에 보여주어 먹먹하게 했던 홍림의 눈빛 -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성적 판단을 하기도 전에 다가왔던 클로즈업에서의 그들의 눈빛은
이미 그 쓰디쓴 비극의 열매를 맛보게 했다.

그렇다면 이미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끌어내고 보여준 쌍화점의 평가를 결정짓는 
마지막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 즉, 관객의 경험치인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던 것을 빼앗겨 분노해 본 사람이라면
외롭고 추운 마음에 들어온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에 집착해 본 사람이라면
사랑이라 믿었던 것에 비굴하도록 집착하고 결국 배신당해 본 사람이라면
그 모든 감정들이 주는 무게가 무거워 순간 사라져 버리기를 간절히 바래본 사람이라면
아니..적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부조리와 갈등의 부산물들을 맛본 사람이라면

.........’쌍화점’의 서리같은 사랑에??한 욕망과 숨김 없는 죄와 그것이 잉태하는 비극에 함부로 웃지 못할 것이다.
그 비극의 열매가 결국은 내가 살아내고 있는 내 삶에서의 열매들과 별반 다를 바 없기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서리꽃 같은 사랑의 덧없음이 결국 인생의 깊은 통찰이기에..

 
지루한 후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 더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연일 언론에서 관심을 표명했던 강한 수위의 베드씬이라던지 동성애,
세 배우의 파격적인 노출에 기대감을 가지고 쌍화점을 대한다면
꽤 실망할지도 모를거라는 거다.
그들이 보여주는 정사들은 어느것 하나 아름답지 않다. 파격적인 횟수와 방법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나 조명은 그들의 육체를 너무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그 흔한 카메라 기법조차 부리지 않는다.
첫 합궁때는 긴장감이라도 감돌았었지만 마지막 서고에서의 정사는
말 그대로 불편할 정도로 ’행위’로만 보인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름답게 보이지 않길 바랐던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연모의 마음이라고 믿는 그 욕망과 집착이 빚어내는 비극이 
어떻게 처참한 열매를 맺게 되는지 보여주려는 극단의 장치들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의 육체가 서로 반응하면서 가졌던 나름의 긴장감은
회가 거듭될 수록 불편함으로 느껴지고 결국 보고 있는 관객은 ’제삼자’의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그 순간에 벌어진 일은 무엇이었나.
오랜 시간 그들의 감정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내가 느꼈던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그들의 결말..그들의 비극이었다.
불꽃 같은 축제의 한가운데 서 있다가 그 자극이 지루할 때쯤 빠져나와
사그라드는 불꽃을 바라보는 자의 만감이랄까.
자극과 쾌감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그것이 주는 허무함과 덧없음의 상념이랄까.

그런면으로 난 세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았던 열연에 경의를 표한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 사랑의 표현으로의 정사씬이었다해도 쉽지 않았을터.
금기된 욕망과 끝이 보이는 집착과 연민과 애절함과 죄책감과 욕정 그 모두를
눈빛만으로, 거칠면서도 절제된 행위로만 표현해 내고 결국 끝을 보고야 마는 
그 임무를 너무나 열심히 훌륭히 용기있게 표현해 내었다는 것에.

쌍화점의 외양은 ’고려시대’고 ’궁중’이고 ’왕’이고 ’왕후’고 ’호위무사’였지만
결국 ’쌍화점’에 남은 것은 욕망에 내달리고 그 욕망에 다시 집착하고 결국 스스로 불살라 버린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 그들 뿐이다.

서리꽃처럼 아름답다면 아름다울 사람들,
하지만 부서져버릴 순간에 집착한 어리석어 더 슬픈 사람들.
그들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심장을 지긋이 누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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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만 되어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초등학생용 책들은 정보도 많고 가이드도 많지만 중학교 이후의 책들은 양은 많은데 적절하고 유용한 정보는 별로 없다. 한우리에서 추천하는 중학교 1학년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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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빈손의 판타스틱 우주원정대
김경주 지음, 이우일 그림 / 뜨인돌 / 2006년 2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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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
재연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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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세계지리
마르틴느 발르로 외 지음, 이정민 옮김 / 기탄교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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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김유정 글, 한병호 그림 / 다림 / 1999년 4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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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갈증, 실컷 논 아이가 명문대 간다
이미경.이화득 지음 / 서울문화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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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마음의 상처'는 마음을 완성시키라고 하는 조물주의 숙제입니다. 그 숙제를 풀면 풀수록 수양이 쌓여서 훌륭한 인품과 인생의 지혜를 얻습니다. 그래서 상처는 마음공부, 즉 수양의 재료가 됩니다.-27쪽

공부라는 게 그다지 심각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공부를 잘 해보지 못한 부모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걸 너무 크게 생각하고 마구잡이로 덤빈다....
아이의 공부는 집에서 조용히 시키는 것이다. 교육정보를 얻기 위해 학교로, 설명회장으로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집에서 아이가 보는 앞에서 책이라도 한 자 더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29쪽

초등학생 때는 기초체력을 다지는 기간이다. 매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은 기초체력이 아주 튼튼하게 갖춰진다. 공부는 중학생 때부터 해도 충분하다. 그때까지는 학교 수업시간에 딴 짓 하지 않고,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나 꼬박꼬박 하는 정도로만 해도 나중에 치고 나갈 수 있는 기본기는 충분히 갖춰진다.-34쪽

초등학교, 중학교 10년 세월 동안 공부한 영어라는 게 고등학교 올라가서 단 몇 개월, 길어도 1년이면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고작 그 정도 앞에서 뛰게 만들자고 10년 세월 동안 어린아이를 다그쳐서 지치게 만드는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일까?-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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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살리는 공부, 아이를 죽이는 공부
이미혜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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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만 보면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여타 학습서들이나 교육서와 다를 바 없는 첫 인상을 준다.
아이를 살리는 공부는 무엇이며 죽이는 공부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하게 되는 책이고
서울대 출신의 저자가 놀기 좋아하는 외아들을 서울대 경영대에 합격시켰다는 것으로 또 한번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사실 그렇기에 선입견을 갖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엄마가 공부를 잘했으니 아이도 원래 잘 했겠지..
또는 교육적으로 좋은 이야기만 써 놨겠지..하는.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참으로 실제적이고 목적이 뚜렷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밖으로 나가 놀기 좋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행동형 아이, 머리는 좀 똑똑한 듯 싶은데
학교 공부는 영 설렁설렁해서 중간 정도 성적을 가진 아이를 목표 대상으로 한다.
또한 지방의 일반고에 다니며 서울 중심의 높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저자의 아들이 위와 딱 맞는 경우였는데 그런 아이의 학습 습관을 잡아주고 단기적 목표를 관리하고
결국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기를 마음 먹게 만드는 그 시점까지 어떤 노력들을 했나,
그래서 어떤 시행착오를 했으며 어떤 성공을 거두었나 하는 경험적 사례가 책 전반부에 나오고
뒷 부분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바르게 진단하고 특히나 행동형 아이에게 맞는 학습법은 무엇인지.
현행 입시 제도에 맞춘 학습법과 강남 사교육의 문제, 선행학습에 대한 문제 등등을 다룬다.

화법은 무척 직설적이고 소신에 차 있으면서도 독단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정말 합리적이고 옳은 방법의 이야기들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공교육의 장단점과 사교육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현 입시제도에 대한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특히나 강남 사교육과 무조건 해외 유학을 선호하는 현재 교육의 분위기에 대한 일침과 단호함 부분은
읽으면서 혼자 통쾌함 마저 느꼈던 부분이다.

나 역시 규범과 규율을 강조하고 집단을 강조하는 학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 아이의 기질과 상관없이 일단은 아이가 규범적이고 모범적으로 학습을 하기 바래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아이의 학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의 기질을 잘 파악하고 일찍 거기에 맞는 학습 방법으로 아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기 좋아하는 행동형 아이들에게 기존 모범생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교육을 계속한다면
결국 창의적 인재들은 공교육에서 밀려나고 그 재능 자체를 사장시켜 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놀기 좋아하는 아이를 관리만 잘하면 서울대 보낼 수 있다는 사탕발림 식의 논리도 아니다.
저자가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가 대상이고 또한 결국 성공의 최종적인 관건은 아이의 의지라고 말한다. 
아무리 부모가 완벽하게 학습을 관리하고 아이가 머리가 좋아도
어느 시점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자 마음 먹지 않으면 최상의 결과는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 2때부터 하루에 수학 7문제는 꼭 풀게 하던 것을 시작으로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아이와 함께 학습 스케줄을 관리했는지 참으로 구체적이고
아이가 입시를 치르며 겪었던 세세한 사례들을 보며 현 입시의 현실을 알 수 있어서 참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저자의 아들은 이런 엄마의 철저한 학습관리에 따라 따라오듯 공부하다가
결국 고3에 올라가는 시점에서 스스로 자기 동기적으로 공부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고3부터 재수시절까지
스스로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은 경우다.
그 과정에서 사교육은 중학교 때 몇 달 다닌 학원과 고 3때 온라인 강의를 들은 것 말고는 없었다.
심지어 재수시절에도 서울의 재수 학원을 몇 달 다니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집에서 스스로 주도적으로
자기 공부를 관리해 왔다.

과도한 과외비와 사교육비 지출이 아이의 학습능력과 바로 연결되리라는 기대는 
사실 부모의 과대한 자기 만족적 욕구에 불과하다.
나 역시 자꾸 옆집 아이, 친구 아이와 비교하고 조급한 마음에 공부에 대한 조바심이 생기고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식으로 공부를 접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반성도 많이 되고 앞으로 아이의 학습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

물론 각 아이들은 다들 자기 기질이 다르고 하고 싶은것 원하는 것이 다르기에
결국 이 책을 읽는 부모들도 이 책의 방식이 아니라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과 관리 능력을 찾아야 겠지만
보통 아이들은 대부분 놀기를 좋아한다는 가정하에
이 책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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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학교 이야기 -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정광필 지음 / 갤리온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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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냈다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안학교에 대한 지식도 없으면서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차에
이우학교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계기가 있었다.
아는 분의 지인의 딸이 이우중학교를 나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아
자기만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
이우학교 뿐만 아니라 대안학교들의 좀 더 깊숙한 교육철학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했고 미리 이야기 하지만
참으로 가슴벅찬 떨림과 감동, 아니 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

큰 아이가 4학년에 올라가는 지금 떠나지 않는 고민은
아이가 과연 ’즐겁게’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고
주입식 교육과 대입 목표가 전부였던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 역시
그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이 무엇일까 사실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많은 학습서, 육아서적들을 읽어보았지만
가정에서 부모만 어떤 이상적인 목표를 갖는다고 그것이 해결되어질 것 같지 않은 
쉽지 않은 현실만 직시할 뿐이었다.

아이가 커가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학교.
그곳이 정말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게 하고 그 길을 찾게 하고 아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곳인가 생각해 보았을때
솔직히 그렇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봐야 하고 성적을 매겨야 하고 자연스럽게 줄을 서게 되고
중학교부터, 아니 이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목표로 학원을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뭔지 모를 답답함이 많았지만
나 역시 그런 교육 제도에 길들여져 커온 세대로 잘못된 것만 알지 과연 어떻게 무엇을 고쳐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었다.

물론 이우학교나 기타 다른 대안학교가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우학교의 설립자인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도 우리 학교가 현재 교육의 완벽한 대안입니다라는 것이 아니다.
이상적인 교육 목표를 위한 대안학교로서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현재의 장단점들을
담담하고 객관적인 어조로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방향에 대한 강한 확신과 자부심은 있지만 언제든 더 나은 교육에의 발전을 위해
이우학교의 현실을 진단하는 책이라고 할까.

이 책에 실려있는 이우학교는 처음 책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함께 배우는 학교, 자기주도적 학습, 선생님과 아이들의 소통. 성적순으로 차별하지 않는 제도.
수많은 다양한 체험활동과 자치 동아리. 사교육 없이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게끔 하는 것.
교육과정과 교육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진보,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학교 참여, 졸업생들의 자발적 봉사 등등
이렇게 나열하면 정말 이상적이고 바람직하고 말그대로 대안학교처럼 느껴지지만
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주체 역시 ’사람’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어려움들과 시행착오들, 그것들을 어떻게 수정하고 보완해 왔는지
참 교육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비판들이 담겨있다.

그런 선생님과 학부모, 설립자의 고민과 끊임없는 도전의식들이 목표하고 꿈꾸는 바는 정말 무엇일까.
아이들 스스로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고 무엇을 배워야 하나?’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인가?’ ’함께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하며 스스로 답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 아이들은
자기주도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방학숙제로 학기중 자기탐구과제와 연결된 프로젝트를 하고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겪는다.
우등반, 열등반으로 나눠 학습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아닌
잘하는 친구가 못하는 친구와 함께 그룹이 되어 서로 도와가며 학습을 하게 되고
중학교 2학년 선배가 1학년 선배를 방과후 가르치는 학교.
문제집과 선행학습으로 점철된 공부가 아니라
선생님들의 교과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교과를 토대로 수많은 질문과 발표와 답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수업시간.
해외봉사활동과 농촌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생태계와 환경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아이들.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좌충우돌 부딪히고 좌절도 해보고 하지만
결국 친구들, 선배들, 선생님들, 학부모들과의 끊임없는 관심과 소통속에
자기주독적으로 그 모든 어려움들을 헤쳐나간다.
사춘기와 인생에의 물음에 직면해 가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학원과 시험에 바치는 현실에 비하면
좀 더 인생에 대해 자신에 대해 여유롭게 또는 치열하게 고민해 나가는 모습이
참 가슴벅차고 바람직하다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쯤되면 우리나라에서 살아나가려면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대학입시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아이가 이곳에 다니면 너무 좋겠다 하는 마음 이면엔
어쩔 수 없이 대학은? 이라는 마지막 물음이 존재했으니까.
저자는 이우 중학교 고등학교의 6년 과정을 거친 아이들의 대학진학 현황을 밝히지 않는다.
그것이 학교의 철학이고 앞으로 법이 바뀔때까지 그 원칙은 변함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가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고 1,2학년까지는 여타 다른 학교처럼 1,2등급서부터 8,9등급까지 고루 분포해있던 양상이
고2, 고3이 되면서 급격히 8,9등급이 사라지며 아이들의 학력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자기주도적 학습을 하는 아이들의 저력은 기타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꾸준히 자기주도적 생활을 했던 이우학교에서는 이런 양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우학교도 대입이라는 현실 앞에선 고민이 많다.
그래서 고 3이 되면 대입준비반이라는 것도 생기고 대입을 원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할 수 밖에 없고
학원을 다니고 일찍부터 공부만 했던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량은 적지만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아이들이 되어있는 학생들을 볼 때는
이우학교의 교육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 뜬 구름잡는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위의 내용뿐 아니라 학부모 자치 동아리들의 활동과
아이들 스스로 꾸려가는 학생회, 축제, 졸업작품 등등 다양한 활동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끊임없는 소통과 노력, 치열한 고민과 
살아남으려는 주도적인 몸부림들이었다.
대입을 위한 학습이 아니라 내 삶과 타인을 위한 학습을 배워가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여러 남아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학교들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를 이우학교에 보내려면 아직 수많은 고민들과 현실에 대한 갈등들이 있겠지만
충분히 고려해 볼수 있을 것 같다.
성적 좋은 사람, 좋은 대학 간 사람만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 다음엔 정말 내 아이가 원하는 길, 좋아하는 길, 아이를 살리고 우리가 사는 길을
아이와 함께 선생님과 함께 부모와 함께 고민할 수 있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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