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쓸 무렵에 내가 희구(希求)한 것은 '핏발 한 가락 서리지 않는 맑은 눈'이었다.
나이 오십이 가까운 지금에는 나의 안청(眼晴)에도 안개가 서리고, 흐릿한 핏발이 물들어 있지만 젊을 때는 그래도 '핏발 한 가닥 서리지 않는 눈'으로 님을 그리워하고 자연을 사모했던 것이다. 또한 그런 심정으로 젊음을 깨끗이 불사른 것인지 모르겠다. 어떻든 그 심정이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을 그리게 하였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청노루'가 과연 존재하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는 분이 있었다. 물론 푸른 빛노루는 없다. 노루라면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털빛을 가진 동물이지만, 나는 그 누르스름하고 꺼뭇한, 다시 말하자면 동물적인 빛깔에 푸른 빛을 주어서 정신화된 노루를 상상했던 것이다. 참으로 오리목 속잎이 피는 계절이 되면 노루도 '서정적인 동물'이 될 것만 같았다. 또 청운사나 자하산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어느 해설서에 '경주 지방에 있는 산 이름'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 것을 보았지만 이것은 해설자가 어림잡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기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내가 창작한 산명이다.
나는 그 무렵에 나대로의 지도를 가졌다. 그 어둠과 불안한 일제 말기에 나는 푸근히 은신할 수있는 어수룩한 천지가 그리웠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은 어디나 일본 치하의 불안하고 바라진 땅뿐이었다. 강원도를 혹은 태백산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내가 은신할 수 있는 한치의 땅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 혼자의 깊숙한 산과 냇물과 호수와 봉우리와 절이 있는 마음의 자연 지도를 그려 보게 되었다.
마음의 지도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태모산(太母山), 태웅산(太熊山), 그 줄기를 받아 구강산(九江山), 자하산(紫河山)이 있고 자하산 골짜기를 흘러내려와 잔잔한 호수를 이룬 것이 낙산호(洛山湖), 영랑호(永郞湖), 영랑호 맑은 물에 그림자를 잠근 봉우리가 방초봉(芳草峰), 그 곳에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자하산의 보랏빛 아지랭이 속에 아른거리는 낡은 기와집이 청운사(靑雲寺)다.
이것은 <청노루>라는 작품을 해설한 나 자신의 설명이지만, '청운사'나 '자하산'은 내가 명명한 상상의 세계의 산이요,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