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투리드 스탠드 펜꽂이 (5.2cm) - 블랙 캔터빌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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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그림 찾기: 그림 속 알라딘 굿즈는 몇 개일까요?
안경정리함 사고 안경 사고 비즈로 안경줄 꿰던 나란 놈은 어 저 틈새에 딱 들어갈 만한 스탠드 펜꽂이가 필요한 느낌이고 큰어린이에게 준 어린왕자 펜꽂이랑 비슷한 걸...파네- 하고 거무튀튀한 걸 들였다.
3월부터는 이거고 저거고 안 살 거야...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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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2-26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빡치는 사실은 굿즈 쿠폰 주고 20퍼 할인할 거처럼 해 놓고 쿠폰 적용 안 됨...외안되?

난티나무 2025-02-27 15:13   좋아요 1 | URL
만원 이상인가 사야 적용될 거예요. ㅎㅎ
사진 속 굿즈는 적어도 10개 이상은 되어 보입니다만 ㅋ

반유행열반인 2025-03-01 06:08   좋아요 0 | URL
엇 금액 제한이 있었군요!! 전 7-8개 밖에 못 찾았어요 ㅋㅋㅋ책상 위를
다 헤아리라면 열 개 넘을 거 같긴 하네요. 오랜만이라 반가운 난티나무님!!!!!
 
페루 라 피나 게이샤 워시드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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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무척 비싸게 파는 페루 게이샤 커피를 선물로 받았다. 오후인데도 봉투에 고소한 냄새...내일까지 못 참고 일단 내려 마셔 봐야 겠지? 하고서 갈아서 내렸다. 

커핑 노트엔 유자, 말린 살구, 캐모마일 되어 있는데 산미 있는 살짝 볶은 원두라 그래 이 신맛과 과일향은 유자요...하면 유심조일체 유자, 말린 살구는 오래 전에 먹어보니 맛없던데 마른 건과 단맛이요, 하면 또 대충 그렇겠고, 그래서 쓰고 스모키한 커피 같지 않고 차 같아서 캐모마일이라 하면 또 일리가 있네, 할 맛이었다. 예전에 알라딘 파나마 게이샤 먹고 진짜 아무 감흥이 없어서 실망했었는데 그 친구보다는 맛있는 커피였다. 

 그렇지만 100그람에 2만원...비싸요...감사히 먹고 에티오피아 아바야 게이샤 먹을게요... 과일향 살짝 떨어지지만 이것도 가성비 좋은 게이샤라(게다가 게샤 원두 원조는 이디오피아여...)향 좋은 커피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목요일부터 부산 여행 예정이라 작은어린이는 내일이 마지막 유치원 등원일이다. 첫 여자친구와도 마지막 보는 날(우리 단지만 다른 초등학교로 갈린다)이라 생각하니 서러웠는지 울먹여서 이메일을 만들어주고 집전화와 함께 편지에 적어 보내기로 했더니 조금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요즘 표창 접기의 달인이 되어서 종이접기 하나 넣어 주자니 좋다고 했다. 

 헤어지자면 곱게 놓아 주는거야.... 막 죽이고 때리고 쫓아다니면 안 돼...여자친구는 새로 다시 만날 수 있어... 첫 연애인데 만5세 어린이에게 이렇게 진작부터 데이트폭력(아니다 적절한 다른 용어가 있는데 기억이 안 나서 나중에 찾아 적을게 +교제 폭력 또는 연인간 폭력이라 한다 함) 예방교육 시켰었다. 그렇지만 어떤 헤어짐이든 어린 헤어짐이라도 아픈 건 아픈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린이들끼리는 (여자아이는) 결혼해서 다시 만나자, (작은어린이는) 대학 가서 다시 만나자, 하는데 중학교는 학군 다시 합쳐지니 둘다 이사 안 하면 6년 후 또 같은 학교에서 만날 수도 있잖아...그때까지 새 연인들이 안 생긴다면 말야...

 그때까지 건강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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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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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2 박서련.

아마도 올해 중 2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날의 하나이다. 다음은 12월 22일이다. 2022년 2월 22일을 놓쳤을 땐 조금 분했는데 2022년 12월 22일은 날짜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이젠 무얼 사든 비슷한 걸 최소 두 개는 마련해야 마음이 덜 불안한 나는 몇 년 전에 나, 나, 마들렌 광고를 보고는 그 소설이 많이 궁금했다.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서 표제작을 먼저 보고는 조금 실망했다. 제목 만큼 설정 만큼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나와 나는 둘이니까 어디가서 마들렌 말고도 마카롱이나 휘낭시에를 만나고 돌아다니거나, 이쪽에서는 궁상스러운 삶을 이어가더라도 어디가서는 팔짜 고칠 궁리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왜 둘이 되면 꼭 하나를 없애는게 궁극의 해결책처럼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5년 전에 소설 강좌 들을 때, 짧은 소설 쓰기 과제로 ‘나는 ...이다’라는 주제가 나왔다. ‘나는 예진이다’라는 소설을 썼다. 이름 짓기 귀찮아서 여러 소설 쓰면서도 손예진이라는 이름으로 죄다 주인공 삼고는 했다. 예진이는 이래저래 잘 안 풀려서 우울한데, 똑닮은 예진이가 등장한다. 약사가 되어, 헤어진 내 남자친구와 잘 만나면서, 내 절친이었던 아이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부모마저 잘난 예진이를 더 끌려하는 모양이다. 에이 시발 억울하면 먼저 작가가 되든가 했어야지… 그땐 꿈도 안 꿨는데 그로부터 2년 뒤엔 약사가 되겠다고 수능 공부를 하고 말야…
그 오래된 습작은 이 독후감 끝에 붙여두겠다. 읽고 싶은 사람만 선택 가능 ㅋㅋㅋ

앞부분 에스에프? 펜데믹 상상한 소설이나, 퀴어 등장하는 소설들이나, 영 재미도 없고 나랑도 안 맞았다. ‘체공녀 강주룡‘ 엄청 재미나게 읽고서 ‘호르몬이 그랬어’보고 와...진짜 단편 못 쓰네, 장편 좋았는데 이건 왜 이래...기복되게 심하네, 했던게 무색하게 그래도 하나 건졌다 싶은 소설이 있었다. ‘세네갈의 부고’라는 제목인데 이 소설에 도서관이 나와서 그런지, 불을 질러서 그런지(진짜 불지름) 하여간에 잘 썼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진지빠는 소설을 좋아하네… MtoF의 인공자궁 이식과 임신을 다룬 소설도 그럭저럭 상상력이 잘 발휘된 거 같아서 읽을만했고, 마지막 소설도 신파지만 욕할 정도는 아니어서 역시나 기복 심하네… 절반은 좋고 절반은 안 맞았으니 별점 3개 주려다 4개까지는 올려야지 하고 너그러워졌다.

다시, 제일 먼저 한참 전에 본 ‘나, 나, 마들렌’으로 돌아가면, 나, 나한테 그렇게 순순히 죽지는 말지...자꾸 쪼개지고 둘이 셋이 되더라도 그걸 굳이 칼로 목을 잘라낼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마들렌을 쫓아내야지 바보, 싶었다. 하필 마들렌이냐… 맛 없어… 프루스트 버프 노리지 마라… 과자 친구 감자 친구 그딴 거 말고도 고자 친구 광자 친구 다 만들면서 무한히 쪼개져 봐라… 그런 나도 정작 예진이를 둘 밖에 만들지 못했다. 끽 해야 차유리에 돌이나 하나 박아 넣었다.


+밑줄 긋기
-질문은 다시 연예인 출연진에게로 돌아갔고 나는 테이블 아래를 더듬어 희강의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이윽고 희강이 그 위에 손을 겹쳐 깍지를 꼈다. 지금 하는 행동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를 이 애가 알고 있을까 의심하면서, 그러나 영원히 몰라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손과 무릎 사이의 온기로 손끝에서부터 녹아 없어지는 나를, 나의 젤로를 상상했다.
네가 사랑하는 젤로는 너를 사랑해서 어른이 되어버렸어. (‘젤로의 변성기’중)

-오늘은 도서관에 불을 지를 예정이다.
-얼핏 만드는 일과 지키는 일 중 전자가 더 중요하고 어렵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그건 착시다. 인간을 만드는 것까지야 뭐 대충 아무나 최소한 두 사람만 모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기껏 만들어놓은 한 인간이 죽지 않게 돌보아 주는 일은 누구한테나 어려운 것처럼…
-드바가 큰 소리로 말했다. 참관인은 발의 자격이 없지 발언권이 없는 게 아닙니다. 질문할 자격도 없습니까? 의장이 손짓하자 총학생회 홍보국장 비표를 건 사람이 드바에게 무선마이크를 갖다주었다.
드바는 마이크를 툭툭 치며 음향을 확인한 다음 말했다.
좆대로 해라,이 시발 새끼들아.
-뭐 대충, 생활 도서관이 죽지 않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노어노문학과로 입학했는데 과가 통폐합되어서 아는 러시아어가 많지는 않은데요, 러시아어로 건배 정도는 할 수 있습 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참 경사스럽네요. 예바뇸!
진짜 그랬어?
진짜 그랬지.
미친놈인가 봐.
-˝학형, 드바 좋아했죠?˝
아진은 러시아어로 1을 뜻했고 그건 드바와 짝이라는 뜻이었다. 별명을 그렇게 지어서인지 원래 의도가 불순해서 별명을 그렇게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아진이 생활 도서관 관장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했고 제법 오래 만났다.
˝좋아했지.“
-요란한 소리로 화재경보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함부로 털지도 못해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던 길고 흰 재가 굉음에 반응하듯 상자에 툭 떨어졌다. 이윽고 천장의 스프링클러가 물줄기를 뿜어 댔다.
씨발, 빌어먹을 신축 건물, 시설 끝내주네.
불 꺼진 담배꽁초를 내던지고 상자를 몸으로 감싸 젖지 않게 막으면서 드바라면 꼭 그렇게 말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세네갈식 부고’중)

-문득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아이를 만들고 낳는 데에도 어쩌면 그런 게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있잖아, 보통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둘이서 만드는데 말이지. 너를 만드는 데에는 수 세기에 달하는 시간에 걸쳐 누적된 의료 지식과 수백 수천억대의 자본과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 엄마 친구들의 노력이 들어갔어. 너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야. 괜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 짜로 그래서 그렇다고 하는 거야. 잠깐이지만 그런 너를 가진 걸 후회해서•••••• 미친 진짜 너무 아파서 쌍욕이 막 자동으로 나오네. (‘김수진의 경우’ 중)

-문학이 위대한 이유는 아무리 형설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도 이미 그것을 상상한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닐지라도, 또 정확히 이런 상황을 예견한 건 아닐지라도. 프란츠 카프카식으로 말하기: 어느 날 아침 목 잘리는 꿈에서 깨어난 나는 자신이 침대에서 두 개의 몸으로 분화한 것을 알아차렸다. 마르셀 에메 인용하기: 그녀는 동시에 도처에 공재 가능했다. 즉 그녀는 자기 자신을 여럿으로 불어나게 할 수 있으며 원하는 장소마다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나, 나, 마들렌’ 중)

-나를 신이라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했다면, 언젠가 자기에게 죽으라 했던 이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신에게 저항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신은 나한테 죽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순순히 죽지는 않겠다는 말.
(‘마치 당신 같은 신’ 중)

-사랑은 분수를 모르고 늘어만 난다.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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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진이다. (20200429-20200508)

여자의 하얀 손이 풍성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이룬 곡선은 카페 천장의 주황빛 조명을 반사하며 윤기를 뽐냈다. 똑같은 아메리카노를 시켰지만 여자가 빨대 끝을 물자 그쪽이 더 맛있어 보였다. 뽀글대며 기포가 올라왔다 터지는 소리, 얼음이 잔에 부딪혀 달각이는 소리는 내 잔에서 더 요란하게 울렸다. 여자는 클러치백에서 지갑을 꺼내고는 엄지와 검지 사이로 집어 올린 것을 이쪽으로 내밀었다.
보다시피, 위조 아니고 주민센터에서 정상 발급 받았어요.
허리를 굽혀 여자가 든 것에 눈높이를 맞추고 자세히 살폈다. 이름 손예진, 930413-으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 강남구 어드메 오피스텔의 주소지, 발급일자는 약 3년 전이었다. 그간 어떤 선거도 없던 탓에 불과 며칠 전 분실을 알아차렸을 만큼 신분증을 꺼낼 일이 없었다. 플라스틱 카드 위에 납작하게 박힌 얼굴 사진은 마주한 입체의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도 실물도 나와 몹시 닮았지만 동일인이라고 쉽게 우길 수 없을 만큼, 예뻤다. 그러니까 성형외과 광고라면 내 쪽이 비포, 여자 쪽이 애프터였다.
얼굴 놓고 감탄할 때가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여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거 불법이에요. 왜 남의 신상을 도용해요?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나를 훔쳐서까지 신분 세탁을 시도하는 건지 궁금했다. 왜 하필 나인가.
도용이 아니죠. 이게 저예요.
신분증을 흔들어보이는 여자의 표정과 말투에는 어떤 거짓도, 불만도, 동요도 담겨있지 않았다. 자잘한 초록잎을 떨고 있는 창 밖 키 큰 나무는 은행나무이다, 하며 지시하는 것만큼 담담했다. 그 담담함이 더욱 부아를 돋우었다.
남의 주민등록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그쪽이 손예진이면 나는 뭐예요?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튀어나온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저한테 물어 봤자, 저는 제가 손예진인 것만 알아요. 아는 대로 알려드린 것 뿐이에요.
거짓말 하지 마. 길 가던 사람 붙잡고 이런 짓 하는 이유가 뭐야?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다. 여자는 신분증을 든 손 그대로 턱을 괴었다. 생각에 잠긴 듯 어딘가를 잠시 응시하더니 다시 내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저도 이상해요. 거리에서 선생님을 보는 순간, 제가 손예진이라고 말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제 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이곳을 당장 벗어나야 할지, 여자와 담판을 지어야 할지,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도용된 신분증을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순간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여자의 운동신경은 나보다 우월했다. 순식간에 내 손을 피한 여자의 손이 주민등록증을 지갑에 넣고 다시 지갑을 클러치백 안으로 밀어 넣었다. 두 손으로 굳게 쥔 클러치백을 무릎 위에 얹은 여자는 인상을 쓰며 스읍, 하고 입으로 나무라는 소리를 냈다.
미친년.
뻗은 손을 거두고 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싸움을 벌여 클러치백을 빼앗을 자신이 없었다. 주민센터 가서 재발급 받으면 여자의 신분증은 효력을 잃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봐도 내 명의로 대출받기, 대포통장 개설해 보이스피싱에 활용하기, 위조여권 만들어 해외로 도망가기 정도였다. 나는 잃을 것이 없는 취업준비생일 뿐이다. 겨우 신분증 하나로 내 신용등급이나 대출 가능 금액을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은 없다. 다행이다 싶은 동시에 서글펐다.
집으로 향하면서 부모와 의논하겠다는 큰 결심을 했다. 한집에 살지만 나를 밥이나 축내는 말종 취급하는 그들과 대화를 끊은 지 오래였다. 용돈이 끊긴 뒤 피씨방에서 시간제 노동으로 일해 필요를 충당했다.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어떤 곤경에 처한 것만은 분명한 상황이었고, 이런 때 기댈 곳은 결국 부모 뿐이었다. 내가 놓치고 있거나 손해를 볼 만한 부분을 그들이 말해줄 것이다. 잘 모르면 어디 가서 법률 자문이라도 하겠지.
멀찍이 공동 현관이 보일 즈음 집 앞 주차장에 새빨간 골프 한 대가 멈췄다. 차문이 열리고 여자가 내렸다. 어떻게 알고 집까지 왔구나. 익숙하게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 여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허겁지겁 여자 뒤를 좆았다.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없는 1층, 현관문이 닫히기 직전 문틈에 손을 비집고 따라들어갔다.
예진이 왔어.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3인칭 표현을 쓰는 여자는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얼핏 뒤따라 온 나를 가리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쯤되면 거리낌없이 여기까지 온 여자가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궁금한 지경이었다.
소파에 파묻히듯 앉은 아빠는 늘 그러듯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안방에서 낮잠을 자는지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좀 나와 봐.
안방 문 앞에 대고 말한 여자는 아빠 옆 빈 자리에 앉았다. 민소매 원피스 위로 가디건을 주섬주섬 걸치며 잠이 덜 깬 눈을 하고 거실로 나온 엄마가 여자를 보며 어? 소리를 냈다. 아빠가 옆을 힐끔 보더니 동그래진 눈으로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자가 손짓하며 소파 옆 스툴을 가리키자 엄마는 별 저항 없이 거기 앉았다. 누구냐고 물을 타이밍을 넘긴 부모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현관 앞에 그대로 서서 세 사람이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어제 월급 받았어. 예진이가 엄마 아빠 용돈 좀 드리려고 들렀지.
두 사람 앞에 따로따로 흰 봉투가 놓였다. 엉겁결에 봉투를 받아 든 부모는 내용물을 들여다본 뒤 얼굴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아직 얼떨떨한 표정이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조금 밝아진 듯 보였다.
너 필요한데나 쓰지.
이렇게 말한 엄마는 봉투를 접어 가디건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현관 앞의 나를 보고 뭔가 잊었다는 듯 손뼉을 한 번 치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오렌지를 꺼낸 엄마가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나는 황당해서 엄마 곁에 섰다.
저 여자 알아?
예진이잖아.
엄마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엄마까지 왜 그래? 난 어쩌라고?
그러게. 넌 어쩌냐.
무심한 대답을 흘린 엄마는 오렌지가 담긴 접시를 들고 주방을 나섰다. 낮은 탁자 위에 접시를 내려놓은 엄마는 다시 스툴에 앉았다. 나는 소파 옆 바닥에 앉았다. 포크가 네 개 놓여 있어 섭섭함이 조금 누그러졌다. 포크에 찍혀 흘러나온 과즙을 핥다가 부지런히 입 안으로 오렌지를 밀어 넣었다. 텔레비전에서 바다낚시를 하던 연예인이 월척을 낚았다고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팔뚝만한 송어 낚은 거 기억 나.
여자의 말에 아빠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그게 기억 나? 너 학교도 안 들어갔을 때인데.
송어 회무침이랑 구이 해 먹었잖아. 유치원에서 아빠가 고기 들고 있는 그림도 그렸어.
아직 집에 있을 걸.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아빠가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그림을 찾으러 간 모양이었다. 더는 보고 있기 힘들었다.
대체 왜들 이래? 내가 예진이잖아. 미친 여자가 헛소리 하는데 왜 가만 냅둬?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여자는 엄마에게 휴대전화를 내밀며 말했다.
엄마, 우리 약국장님이 소개팅 시켜준대. 피부과 의사라는데, 사진 볼래?
훤하게 생겼네. 너 일하는 데가...
벌써 잊어버렸어? 00약국, 종로3가에 있는 엄청 큰 데야. 난 편입인데도 같은 약대 출신이라고 약국장님이 잘 챙겨주셔.
잘 됐네.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 먹으라는 듯 접시를 여자 쪽으로 밀어주었다. 대학 2학년 마치고 약대 입문자격시험을 처음 치른 때가 생각났다. 학점도 공인 영어 점수도 턱없이 낮아 불합격했다. 졸업하던 해 한 차례 더 도전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애초부터 능력도 의지도 없는데 약사가 되길 바라는 엄마의 바람대로 시험을 준비하는 시늉만 했다. 생물교육을 전공했지만 교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자격증이 있으니 기간제교사나 시간강사, 방과후강사라도 알아보라고 부모는 성화했지만 주5시간짜리 강사 자리조차 경력 없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임용고사든 사립학교 취업이든 도전해보라는 부모의 말을 흘려들으며 버틴 게 벌써 3년째였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 지금은 피씨방 손님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카운터를 지키는 동안 매크로를 돌려 얻은 게임 아이템을 팔아 연명하고 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약사라고 한다. 대형 약국에 취업했고, 자기 차를 운전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살고 있다. 나였으면, 싶지만 내가 아닌 삶. 그렇게 다 가진 여자가 뭐가 아쉬운지 자신이 손예진이라고 우긴다. 가진 건 이름 뿐인 나로부터 그 이름마저 빼앗으려 한다.
그걸 다 믿어? 꿍꿍이가 있어서 하는 거짓말이면 어쩔 거야.
내 말에 여자는 담담한 소리로 말했다.
00약국에 전화해 봐요. 손예진 약사 바꿔달라고 해.
여자와 나를 번갈아 보던 엄마는 빈손으로 방에서 나오는 아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디서 봤는데 못 찾겠네...예진이 그림 못 봤어?
멋쩍은 표정을 한 아빠의 묻는 말에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그림 타령은 관두고, 00약국에 전화 좀 해 봐.
약국은 뭣하러?
손예진 약사 있냐고 물어 봐.
여기 있잖아, 예진이.
아빠가 여자를 보며 말했다. 매우 섭섭한 마음에 큰소리로 독촉했다.
얼른 해봐요!
번호를 검색하는지 한참 주물러대던 전화기를 귀에 붙인 아빠가 말했다.
약국이죠? 거기 손예진 약사님 통화할 수 있을까요? 예, 예, 알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와 눈이 마주친 아빠는 얼른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래요?
손예진 약사님 오늘 휴무래. 내일 전화 하래.
엄마의 물음에 아빠가 답했다. 마주 본 두 사람의 표정이 더 밝아진 것처럼 보였다.
쉬는 날이니까 왔죠.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약국이랑 짰을 수도 있잖아. 아니, 같은 이름 약사가 있는 걸 미리 알고 저러는 거야. 몇 년 전에 보이스피싱 당해 놓고 아직도 정신 못 차려?
예진이를 사칭해서 뭐에다 써.
아빠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 사칭이래도 뜯어갈게 뭐 있냐, 개뿔 없는 집구석.
엄마가 맞장구쳤다.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쳐 자신을 손예진이라고 주장하는 여자를 두고 내 부모라는 사람들은 의심조차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저쪽이 손예진이라고 굳게 믿고 싶은 것처럼 보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인간이 나였으면 싶은 거지? 알았어, 내가 없어지면 되잖아.
홧김에 현관문을 나섰지만 붙잡거나 따라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발 가는대로 걷다 전화기를 꺼냈다. 주소록을 열고 이름 하나하나를 훑었다. 학교 친구들, 아르바이트 하다 만난 사람들, 게임 동호회 회원들. 나를 거쳐갔지만 한동안 잊은 채 살아온 사람들. 살면서 동명이인을 만나거나 겉모습이 닮았다 싶은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생긴 게 비슷하고 이름이 같은 걸 넘어 자신이 손예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지만, 이런 상황을 하소연할 만한 친구를 꼽아내기도 어려웠다. 대학 때부터 사귀던 찬민과 헤어지고 마지막 편입 시험까지 떨어진 3년 전, 그때껏 만든 모든 SNS계정을 없앴다. 나에 관한 변변한 게시물도 올리지 못하는 사실상 휴면 상태에다 남들 잘나가는 꼴을 관음증 환자마냥 훔쳐보는 일에 질려가고 있던 시기였다. 계정을 없애자 오히려 뭔가로부터 풀려나는 기분이었고, 이후 고립이나 다름 없는 생활을 했다.
검색창을 열고 손예진 세 글자를 써 넣었다. 내가 웹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수많은 손예진이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에 열심히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백 명은 넘는 손예진의 페이지를 드나들었을 무렵, 방금 전까지 실랑이를 하던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이디 yeyejin93은 I’m Yejin. 00대 약학과 졸업. 00약국 약사, 라는 간단한 소갯말을 적어 두었다. 약병이 진열된 조제실 선반을 배경으로 한, 마스크를 턱 밑에 걸친 셀카가 가장 최근에 올린 게시물이었다. You must come back home- 밑으로 #컴백홈 #서태지마스크 #이주노였나 #00약국 #나는약사다 #직장셀카 등의 해시태그가 보였다. 댓글 몇 개가 달렸다.
약사여신님!
약사여래불약사여래불
마스크 하고도 예쁘시네요
꺅! 우리 서태지 덕질하는 노인들이라고 놀림 받아짢아! 중고나라 LP사러 간 생각난다...아직 가지고 있어ㅋㅋㅋ
마지막 댓글을 남긴 사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디 callmepigcat을 누르자 낯익은 사진이 보였다. 고1때 단짝 엄지윤이었다. 엄지윤은 댓글에 언급한 LP사진을 올려 놓았다. 빨간 바탕 위로 날아오르는 통통한 흰 비둘기, 세 멤버의 노란색 실루엣.
10년 전 5만원 주고 살 때 찌니가 미쳐따고 했다. 현재 중고가 30만원!!!!! 찌니, 재테크는 이렇게 하는 거야ㅋㅋ
우리는 서로를 찌니와 쮸니로 불렀다. 새내기 때까지는 자주 연락하고 가끔 만나기도 했는데,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크게 싸운 뒤 소식이 끊겼다. 언제부터 왕래했는지 알 수 없지만 댓글을 주고 받는 지윤과 여자는 예전 우리만큼 친한 듯 보였다. 분노보다 슬픔이 밀려왔다. 숨지 말 것을, 좋아요를 누르며 근근이라도 관계를 이어갈 것을. 늦은 후회 속에 움츠려드느라 챙기지 못한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보았다.
다시 주소록을 열어 지윤의 번호를 찾았다. 좁은 골목이 보여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망설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 뒤로 여보세요, 곧이어 누구세요?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전화번호를 삭제한 모양이었다.
나 예진이야. 오랜만이다.
찌니? 이 번호 아니잖아.
나 전화번호 바꾼 적 없어.
그랬나? 폰 바꾸면서 옛날 번호는 다 사라져서 네가 다시 알려준 번호로 저장했지. 너 번호 두 개야?
아니야. 지윤아, 너 나랑 인친이지?
새삼스럽게, 전에 만났을 때 너한테 아이디 물어보고 인스타 추가했잖아.
우리가 최근에 만났니?
찌니 너 오늘 이상해. 오랜만이 다 뭐야. 지난 주에도 같이 놀았으면서.
지윤아, 들어 봐. 고딩 때 우리 서태지 LP사러 갔잖아. 청계천에 있는 헌 책방에.
기억 나지. 내가 인스타에 사진 올렸잖아!
그래, 가기 전에 행운분식에서 네가 라볶이 사 줬어.
그랬나? 행운분식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라볶이 급 땡겨...
너 최근에 만났다는 예진이 말야. 내가 아니야.
한동안 지윤은 말이 없었다. 통화 상태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지 키패드 터치음이 들렸다. 한참 뒤 지윤이 물었다.
누구세요?
예진이.
왜 예진이 사칭하세요?
너랑 인스타 친구 맺은 사람이 날 사칭한 거야. 그 인간 때문에 지금 힘들어.
헛소리 하지 마세요. 찌니는 나한테 지윤이라고 안 해.
오랜만이라 어색해서...쮸니...내가 찌니야.
그새 어디서 주워봤나 보네. 신고할 거에요.
통화종료음이 울렸다. 심장이 내려 앉는 것 같았다. 골목을 나와 다시 큰길로 나섰다. 어릴 때 본 만화가 떠올랐다. 함부로 버린 발톱을 쥐가 훔쳐 먹고는 주인공과 똑같은 모습으로 둔갑하여 진짜 행세를 했다. 신통한 스님이었나 지혜로운 원님이었나,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진위를 판별해주자 가짜가 물러나고 일상을 찾는 결말이었다. 거리를 둘러보았지만 제 갈 길 바쁜, 일면식 없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런 우연, 아니 커다란 행운을 마주칠 가망은 전혀 없어보였다.
가까운 이들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 관해 아는 것 중 도움이 될 만한 사실을 꼽아보았다.
-거리에서 젊은 여자와 팔짱을 끼고 가다 마주친 아빠.
-몰래 든 계가 깨져 내 학자금 대출로 빚구멍을 메운 엄마.
-라볶이와 중고 LP 구입 자금을 학급비 횡령으로 마련했다고 고백하던 지윤.
전 남자친구 찬민의 허벅지 안쪽 화상 흉터에까지 생각이 튀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나와 상대방만 아는 일이지만 꺼내봤자 외면 또는 부인 당할 약점들 뿐이었다. 몇 안 되는 인연에 기대야만 드러나는 나의 처지란, 돌아가는 바람개비, 떨리는 나뭇가지, 날아가는 연 없이는 감지되지 못할 미약한 바람과 같았다. 나만 아는 내 소유물들을 생각했다. 몰래 쓰는 일기장, 책상 서랍 뒤에 숨긴 담배갑, 옷장 구석에 처박아 둔 티팬티, 만렙 찍은 게임 캐릭터... 나만 아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남에게 밝히는 일 자체가 비루하고 수치스러웠다.
빨간 골프가 보였다. 어느 새 집 앞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날이 어둑한데 여자는 여지껏 돌아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득 여자가 손예진이 아닌 다른 존재라는 것을 밝히는 편이 더 쉽게 느껴졌다. 선팅된 차창 주변을 빙 돌며 눈을 가늘게 뜨고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클러치백은 아까 여자가 지닌 것을 보고 나왔다. 자동차등록증, 면허증, 두고 간 전화기 같은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을 찾으려고 차안 곳곳을 살폈지만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잠긴 문을 여는 일도 문제였다. 고개를 들자 운전석 위 룸미러에 시선이 닿았다. 룸미러 아래 매달린 마름모꼴 작은 사진액자. 여자와 찬민이 다정하게 얼굴을 마주대고 있었다. 둘은 만났다, 아니 지금도 만나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그런 여자가 찬민을 두고 의사와 소개팅하겠다는 소리를 했다. 액자를 떼어내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을 찢어 놓고 싶었다.
차 옆에 놓인 주차 방지 고깔을 집어 올려 운전석 옆 창을 내리쳤다. 유리는 꿈쩍없고 깨진 고깔의 플라스틱 파편만 튀어올라 뺨에 부딪혔다. 무겁고 단단한 게 필요했다. 깨진 고깔을 던져버리고 화단 주변을 살피자 경계석 옆으로 줄을 세워 반쯤 묻어 놓은 벽돌 크기의 보도블럭들이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흙을 파헤치고 땅에 박힌 보도블럭 하나를 집어 올렸다.
102호 학생, 뭐하는 거야?
경비 아저씨의 묻는 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지만 그대로 손에 든 보도블럭을 차 쪽으로 던졌다. 차와 바닥에 차례로 부딪는 둔탁한 소리, 요란하게 울리는 도난방지 신호음. 바닥에 떨어진 보도블럭을 집어 한 번 더 힘껏 차창을 내리찍었다. 퍽 하는 파열음 뒤로 쩌적거리는 소리가 이어지고 찍힌 자국 주변으로 갈라진 무늬가 퍼졌다. 창문을 깨고 액자를 꺼내 부숴버리는 걸 목표 삼고 다시 보도블럭을 깨진 틈에 내려쳤다. 여자가 뛰어 나와 경찰을 부르면 함께 경찰서로 갈 생각이었다. 전산망에는 열손가락 지문 정보가 담겨 있을 것이고, 피의자든 피해자든 지문 조회를 하면 정체가 밝혀지겠지. 만약 여자의 지문조차 내 것과 같다면? 그때는 타협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요일제, 2부제, 번갈아가며 손예진을 할까. 큰 미련 없다고, 손예진은 너나 하고, 대신 소정의 사례와 다른 신분을 마련해주면 순순히 물러나겠다고 제안하는 모습도 머릿속을 스쳤다. 말리는 경비 아저씨를 뿌리치다 방금 전 아저씨가 나를 부르던 소리가 떠올라 잠시 멈칫했다. 저는 진작부터 학생이 아니에요. 이젠 아무도 아니에요. 속으로 답하며 보도블럭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 힘껏 팔을 뒤로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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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5-02-23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반유행열반님 나는 예진이다 너무 재미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5-02-23 08:08   좋아요 0 | URL
이렇게 독자 한 분이 늘었다 ㅋㅋㅋ부족한 옛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제가 영광입니다 프시케님!!
 

제발...제발트 사 놓고 하나도 안 읽은 놈아...
독후기 대신 구매기만 써 대는 나 자신에게 실망이야...
중고 책탑엔 빠졌지만 어린이들 보라고 다면체종이접기책이랑 세계일주퍼즐? 뭐 그런 책들도 샀는데 봤더니 극악의 난이도였다. 퍼즐책은 앞에 막 볼펜으로 좀 풀다 포기한 흔적...80퍼센트는 손도 안 댔으니 봐줘야 하나... 입체다면체종이접기는 유닛을 30-60개 정도 똑같은 걸 접어서 막 붙이고 끼우고 해야 하는데 우리 어린이가 유닛을 균일하게 못 만들어서 붙였더니 입체는 입체인데 다면체를 이루지 못했다.
제목을 다시 보니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이라고? 쓰가와 미오씨, 나랑 싸우자!

서점에서 눈독 들였으나 비싸서 못 얻었던 티베트 사자의 서는 구판이 있길래 이건 새책 반값이네 하고 샀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았다. 욕망을 탐구하고픈데 라캉은 읽기 싫으니 뭔 이상한 목회자 겸 심리학자랑 육체에 관한 정체 모를 책 구경하다 있어서 샀다. 시장과 시골은 뭔가 두운이 착착 맞고, 정치 풍자 일본 만화는 그냥 담아 봤다. 친구가 적립금 받은 걸로 자긴 책 안 산대서 페루 게이샤 커피나 사달랬다. 남은 적립금으로는 알라딘에서 파는 까까나 사 먹으라고 했다. 나새끼도 책 안 사, 좀 해 보자... (그러나 커피도 사고, 치킨버거도 사고, 산 지 15년도 넘은 아이팟 셔플 2세대 수리하겠다고 택배 보내고...재화든 용역이든 소비 멈춰...책도 재화다...)

+저 망한 다면체를 결국 살려낸 금손 큰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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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25-02-20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즤이 집에도 누구나 쉽다는데 나는 안되는 종이접기책이 있습죠
한번도 성공을 못했어요
자괴감만 들뿐....

반유행열반인 2025-02-21 20:32   좋아요 0 | URL
누구나 쉽다 시리즈가 여럿 슬픔에 잠기게 했군요 이런이런!
 
돌봄 선언 - 상호의존의 정치학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
더 케어 컬렉티브 지음, 정소영 옮김 / 니케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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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8 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의 윤리에 대한 관심은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읽으면서 다시 살아났다. 주디스 버틀러나 프레데리크 보름스가 상호의존성, 상호연대를 이야기하면서 돌봄에 대해 무척이나 강조했다.
아직 쥐뿔도 모를 때, 지금도 개뿔도 모르지만 대학원 수업 듣던 시절 학기말 페이퍼로 돌봄노동에 관해 써 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내가 생각한 돌봄노동은 굉장히 협의의 개념이었구나, 이제와 이 책 보면서 느낀 점이다. 엄마가 남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신 걸 서두로 해서, 누군가는 자신의 사회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내내 돌봄을 받고 이런 행위가 주가 되는 노동 산업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사회과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서는 이에 대해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10년도 더 넘게 지나서 자세한 기억은 안 나서 모르겠다...내 상상인가...지도교수님은 이제 정년퇴임 하셨을 테고 난 영구 수료생으로 남을 것이고…

일단 눈독 들인 책은 최근에 두툼하게 나온 ‘돌봄의 사회학’, 이거 하나 갖추면 뭔가 돌봄학 전문가 될 거 같은 기분, 그런데 너무 비싸고 두꺼워서 전자책 살까 하다가 일단 냅뒀다. 그냥 저장만 해두고 또 한 십년 지날 것 같아서… 중고서적 중에 돌봄의 윤리, 돌봄의 철학 관련 저자들의 책을 찾아 봤는데 번역된 것이 썩 많지는 않아 보였다.
‘돌봄: 정의의 심장’(대니얼 엥스터, 2017, 절판)
’보이지 않는 가슴‘ (낸시 폴브레, 2007, 아직 파네?!?!)
뭐 이게 다여? … 더 찾았던 거 같긴 한데 주제가 좀 안 맞는 번역서들만 있어서 제꼈다. 특히 돌봄 강조 오지게 하던 프레데리크 보름스 책이 궁금했는데, ’폭력 앞에 선 철학자들‘이라는 공저 하나, ’현대 프랑스 철학‘이라는 뭔가 대학교재로 썼을 것 같은 책 하나, 뭐 돌봄 이야기 안 나올 것 같아 보여서 일단 넘겼다. 폭력 뭐시기는 궁금하긴 함. 사르트르에서 데리다까지래… 이름만 봐도 어려운 걸…

전자도서관에서 ‘돌봄 선언’을 확인하고 이걸 먼저 빌려 읽기로 했다. 그야 말로 선언문이고 당위적 주장과 그 근거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일단 이 책을 읽고 나니 재밌자고 읽은 건 아니다만 분량 적은데도 엄청 더디 읽었고 읽는 동안 와 돌봄...중요하지 중요해 그런데 이제 관심이 식고 있다….뭐 그렇게 되어 겨우 꾸역꾸역 읽었다.

무섭고 슬픈 뉴스들을 전해 듣는다. 나는 어느 무렵부터 포털 뉴스 면을 자세히 안 보게 되었는데도 어쩌다보면 건너건너 사람들은 소식들을 잘도 물어오지. 병이 든 사람들, 그런데 누군가 계속 지켜봐주고 사랑해주고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사람이 없거나 병이 너무 심한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이나 남을 공격하고 만다. 나는 그런 마음을 알아서 슬프다. 지금은 괜찮지만. 충분하지만. 그래도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병원에도 달려가 (내가 산업 진출에는 실패한) 현대약학의 힘을 빌지만.

내가 돌봐야 할 사람들도 생각한다. 혼자가 아니라서, 우리 아이들의 양육자는 셋이나 되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나는 방임형, 권위주의형에 가깝고 애들이 다른 어른들 말을 안 들으면 그제사 이놈의 자식 이러고 쫓아가서 착한 어린이로 만드는 옛날 (그나마 쥐톨만큼이나 양육 관심 두는)아버지들 같은 역할을 하고 있구만…

육아, 병자 간호, 노인 부양, 가족과 친족의 몫처럼 여겨지던 돌봄 개념에서 더 확장해 이 책에서는 자신을 돌보는 일, 지역 사회, 글로벌 사회, 가족 이외의 연대를 통한 돌봄까지, ‘난잡한 돌봄’ 이라는 이름으로 돌봄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었다.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누가 곤란하면 일단 가서 돕고 오지랍 떨라는 것이지… 누구나 사랑받고 관심 받고 도움 받는게 필요하겠지만, 또 원치 않는 돌봄 시도는 또 침해가 될 수 있으니 이놈의 자유주의자 새끼는 그런 거 부터가 걱정이다. 그리고 그간 봐온 수많은 연대들은 바운더리 안의 사람들은 잘 챙기지만 그 바깥의 사람들한테는 또 똑같이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 문제죠?’ 하는 걸 자주 봐왔다. 이 책은 그런 경계들을 국경, 전통적 핵가족을 비롯해서 느슨하게 벽이 아닌 그저 다름의 구획 정도로만 흐리게 하고 싶은 것 같은데...인간은 너무나도 귀신같이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구별하고, 차이점을 빌미로 배척하고, 쟤는 당해도 싸, 우린 그럴만 해, 뭐 그런 존재라서 인간을 되게 훌륭한 존재로 가정해야 가능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이 말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프리라이더는 어떻게 할지? 막 자기 애는 열심히 남한테 맡기고 볼일 보다가 정작 반대로 도움 요청하면 이런 저런 사정 대가며 거절하는 사람들까지 묵묵히 포용해야 하는지? 포용할 수 있는지? 그런데도 공적기관이나 시장에서 제공하는 돌봄들에 대해 마냥 비판적일 수 있을지…

수많은 아이들과 염려 많은 그 아이들의 부모들까지,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아이들과 함께 사는 곁의 사람과 직계존속까지, 가깝게는 그렇게 전통적이고, 직업적인 범주의 돌봄을 나는 다시 시작할 시간을 맞이하기 직전이다. 그전에 나부터 돌봐야 할 것 같긴 해… 책도 제대로 못 읽고 엄청나게 산만해지고 소비중독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아시발 또 졌다 자본주의새끼한테...를 시전하고 있으니… 운동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걸(그나마 살이 안찌고 건강한 쪽으로 도움될 듯한 걸) 먹고, 책은 근래엔 잘 못 읽고 사 쌓고 정리만 하고, 나가서 돌아다니며 걷고, 집에선 가끔 실내자전거랑 아령이랑 새로 영입된 케틀벨도 들었다 놓고, 1-2주에 한 번은 병원에 가고, (야 근데 이제 약이라도 먹어서 착해질라고 사람 시늉할라고 노력하는데도 강제로 일터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더라...들키지 마!!!) 뭐 그런 것도 돌봄이겠죠. 손 한줌의 온라인 이웃들에게 댓글도 달고 대댓글도 달고 뭐 그런 것...우린 언제나 어딘가와 이어지길 원하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난 그 갈래가 확장되길 원치 않는 걸요? 좌파의 적인가요? 난 우리엄마 말대로 진짜 보수가 되고 있는 걸까요? 난 그냥 한 사람만 마주하는게 편하고 음성보다는 영상보다는 글로 마주하는게 편한 감각 예민쟁이일 뿐인데. 난 이제 어떤 집회에도 나가지 않기로 했고 어떤 공직 선출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런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그런데도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이니, 돌봄 책들이니, 한때는 미디어학이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관심 가졌던 거 보면 나는 이어지는 법을 제대로 몰라서 내 나름대로 책으로라도 사람 대하는 법을 익혀 인간 흉내를 내보려다 나가떨어진 걸까요?
일단은 이런 예민하고 불안한 나부터 잘 돌봐 보겠습니다…수신이 되야 평천하도 한다잖아...

+밑줄 긋기

-그들이 지적한 것처럼 옛 영어 caru의 의미 중에는 보살핌, 근심, 걱정, 슬픔, 애통, 괴로움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 시대와 공명하는 단어들이다. 돌봄은 우리 시대를 위한 희망의 정치를 계획하고 그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한다.
— 주디스 버틀러


-셀프케어 산업은 돌봄을 자신을 위해 각자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으로 격하시켰다. 이런 것은 우리가 당면한 돌봄의 문제에 임시방편조차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에 실패했다.

-다름을 배려하고, 또는 더욱 확장된 형태의 돌봄을 개발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잘 알려진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무관심이 구조적 수준의 ‘평범함banality’에 젖어들고 있다.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국경은 국가를 구분해주는 물리적 표식에 불과했는데 오늘날에는 국경이 국가 내부까지 파고들어 일상의 면면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관심한 국가
1980년대부터 국가의 수장들은—가장 악명 높은 이들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있다—모든 종류의 돌봄은 개인적 문제이며 개인이 경쟁적 시장과 강력한 국가의 중추라고 여기게 몰아갔다. 그러한 추동은 자기관리로 위장한 억지 논리이며 선량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에 대한 기만적 정의의 일환이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상적인 시민이란 자율적이고 기업가적이며 실패를 모르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의 승승장구는 복지국가의 해체, 그리고 민주적 제도와 시민 참여의 와해를 정당화한다. 돌봄이 개인에게 달린 문제라는 생각은 우리의 상호취약성과 상호연결성을 인지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다.



-최근에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특정 집단의 노인, 특히 노동자계층 여성 노인 사망률이 100년 내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고, 제한적인 단기 치료를 위한 지원이 늘었음에도 정신건강 문제를 치료받기 위한 대기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한편,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이 150만 명이나 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떠밀려 현재 우파 정부가 이전 좌파 정부에서 그림만 그렸던 사회 지원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불공평한 대우와 결합한 심각한 불평등의 전통은 팬데믹이 가장 방치되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특히 노인, 여성, 흑인과 아시아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 집단, 빈곤층, 장애인 등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게 했다.

-영국 사회정책의 선구자인 리처드 티트머스Richard Titmuss는 누구나 받을 자격이 있는 보편적 복지혜택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모든 국민이 국가에 대해 동등한 지분이 있음을 보장했으며,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옳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좀먹는 것’으로 판단했다. 인기 라디오 쇼에서 영국 심리학자 도널드 W. 위니콧Donald W. Winnicott은 아이에게 ‘보듬어주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의존성을 부각했는데, 이 의견이 돌보는 복지국가에 대한 하나의 아이디어로 편입되어 어머니들에 대한 지원과 제대로 된 집과 복지서비스 제공으로 발전했다.

-왜 여성이 이 모든 돌봄 노동을 떠맡아야 하는가? 그리고 만일 도와줄 가족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가족에게 거부당하거나 가족을 거부한 사람들은? 사기업의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만한 돈이 없다면? 이러한 돌봄 체계는 결국 돌봄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방치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최악의 경우에는 필연적이지 않은 질병과 죽음을 불러온다. 오로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족만을 돌보도록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자기 것 돌보기’의 편집증적 형태를 초래하는데 이런 태도는 최근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의 시발점이다.

-보편적 돌봄이란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모든 돌봄이 우리의 가정에서뿐 아니라 친족에서부터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돌봄은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비생산적인 일로도 여성의 일로도 치부되어서는 안 되고, 임금노동 영역에서 가난하거나 이민자이거나 유색인종인 여성들의 일로 떠맡겨져서는 안 된다. 목표는 사회 전체가 돌봄의 보람과 짐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 대체로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남반구 지역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데, 글로벌 노스라고 칭하는 유럽과 북미 지역 선진국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경제적 수준이 낮고 정치·문화적으로 주변화된 국가들을 가리킬 때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대신 쓰이는 용어다.(옮긴이 주)
-‘보편적 돌봄’ 개념을 홍보하고자 한다. 이는 돌봄을 삶의 모든 수준에서 우선시하며 중심에 놓고, 직접적인 대인 돌봄뿐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구 자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돌봄에 대해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지는 사회적 이상을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염려는 다른 모든 인간의 감정과 같이 변덕스럽고, 종종 다른 필요나 욕망, 또 개인적 만족감이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등의 정서적 상태와 부딪치거나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감정과 얽히기도 한다.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는 말할 것도 없고, 돌봄의 어려움, 특히 잘했는지,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불안은 돌봄 관계에서 분노와 공격적 태도를 쉽게 유발한다. 심지어 모범으로 신화화된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것이 바로 로지카 파커Rozsika Parker가 유명한 저서 《둘로 찢긴 감정: 모성애의 양면성 경험Torn in Two: The Experience of Maternal Ambivalence》에 쓴 것처럼 어머니들이 자녀들에 대해 갖는 혼란스럽고 상충되는 감정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페미니스트들이 강조한 이유다. 로지카 파커는 그러한 돌봄의 양면성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활력을 주고 마음을 재생시킨다고 본다.

-‘독립된 삶’은 우리가 모든 일을 혼자 하기를 원한다거나, 다른 사람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거나, 고립되어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립된 삶은 비장애인 형제자매, 이웃, 친구들이 당연시하는 선택과 통제권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동등하게 갖기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소수자들은 ‘게이 동네’로 이사 가서 그들의 돌봄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살면서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었다. 이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돌봄과 친밀함의 관계를 법으로 규정된 이성애 관계를 넘어선 범주로 확장하려는 급진적인 게이해방운동의 일부로 옹호되었다.
20세기 후반,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사회운동의 영향으로 사회가 ‘탈脫전통화’되면서 대안 친족 구조가 딱히 자신들을 급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에까지 퍼졌다.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 간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이 필요와 지속가능성에 따라 공평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난잡한 돌봄의 윤리라고 부른다.

-난잡함이란 더 많은 돌봄을 실천하고 또 현재 기준에서는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돌봄 요구를 너무 오랫동안 ‘시장’과 ‘가족’에 의존해 해결해왔다. 우리는 그 의미의 범주가 훨씬 넓은 돌봄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난잡한 돌봄은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을 돌보는 것, 지역 공동체를 돌보는 것, 환경을 돌보는 것이 동등하게 가치 있는 일로서 적절한 자원과 보상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난잡한 돌봄은 이민자와 난민을 돌보는 것이 자국민을 돌보는 것과 똑같이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미국 국경에서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난민수용소에 격리된 아이들의 운명에 대해 우리의 가족과 같이 생각하고 염려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난잡한 돌봄은 어머니나 여성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돌봄 역량을 가지고 있고, 서로 함께 돌봄을 실천할 때 우리의 삶이 향상된다는 것을 인지한다.
-강력한 공동체 모델로서 지역 도서관은 소중히 여겨지고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는 또 도서관을 책에 국한하지 않고 더 많은 ‘사물 도서관’을 만들고 재사용과 재분배의 다른 형식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 기후재앙이 눈앞에 닥친 시대에 전동 드릴이든 비싼 아이 장난감이든 또는 와플 메이커든 간에 일 년에 몇 번 쓰지 않을 물건을 사는 것은 지나친 낭비다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함께 일하며 살아가도록 한다. 자원이 평등하게 사용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배제되고 소외된다. 공유하기 위해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보다는 덜 분명해보이긴 해도 역으로 공유하는 것도 공동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돌봄 인프라는 또 임금노동 시간의 단축을 포함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가족 내에서나 다른 돌봄이 필요한 환경에서 돌봄 역량을 확장하도록 적절한 시간과 자원을 허용한다.

-가장 좋은 직접적인 대인 돌봄은 서두르지 않고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돌봄을 받는 사람이 가진 역량을 주체적 능력과 웰빙을 계발하는 데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고, 이는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다.

-주4일제 캠페인을 통해 호응을 얻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이 돌봄에 대해 교육하고 돌봄 역량을 확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핵심인 이유다. 이는 동시에 돌봄의 제공 또는 돌봄 요구의 필수요소인 민주적 논의에의 쌍방 참여를 증진한다.

-시장은 돌봄의 책무와 제공을 구매력에 근거하여 배분할 뿐이다. 자본이 많은 사람이 늘 승자다. ‘패자’들은 시장을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고 특히 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도 돌봄 제공을 받는 데 제약이 있다. 시장이 중재하는 돌봄 서비스 분배는 기존의 소득 불평등과 돌봄 부족을 반영할 뿐 아니라 심각하게 악화시킨다. 고소득자들은 질 좋은 교육에서부터 주거시설에 이르기까지 돌봄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고 ‘인적 자원’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투자의 선순환을 일으킨다.

-“너희는 우리를 묻어버리려고 했지/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씨앗이었다는 것을 잊었지!”

-즉 팬데믹은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데 결정적인 필수 기능들을 극적으로 또 비극적으로 조명했다. 간호사, 의사, 택배기사들과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의 노동을 말이다.
-센이 1980년대에 영향력 있는 ‘잠재가능성 접근Capability Approach’ 이론을 개발한 것도 바로 WIDER에서였다. 이 이론은 ‘빈곤’을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잠재가능성의 상실이라는 의미로 재규정하고, ‘발전’이라는 개념을 경제를 넘어 사람들이 어디서 살든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으로 폭넓게 정의했다.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언급했듯이 ‘모든 저항운동은 세상의 균형을 바꾸거나’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한 곳에서 발생한 저항의 양식이 억압을 받는다 해도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어 다른 지역에서,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형식으로 싹을 틔울 수 있다.
-우리 모두 필연적으로 타인에 대해 양면성을, 심지어는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특히 가장 멀리 떨어진,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실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양면성이 종종 억제되긴 하지만 마찬가지일 수 있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단 복잡한 갈등 관계에 함께 얽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그 강력한 결과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아울러 인식하면—우리가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돌봄에 대한 상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유다.

-세계시민이 된다는 것은 낯섦과 마주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어떤 종류의 다름과 마주치든 간에 우리는 다름과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봄 선언》은 우리가 많은 돌봄 요구를 너무 오랫동안 ‘시장’과 ‘가족’에 의존해 해결해왔다고 지적하면서 “그 의미의 범주가 훨씬 넓은 돌봄의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 돌봄이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감정들의 일부 또는 확장처럼 취급되는 것이 사실이다. 돌봄이 사랑, 효, 모·부성애 등의 개념과 결합되어 부당하게 그 방법과 내용이 정해지고 제한된다. 사회적으로 구분된 관계가 그 관계를 규정하는 감정으로 본질화되고 돌봄이 그 감정의 한 면으로 일축된 경우가 많다.
(역자 해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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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8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우리말을 늘 안 쳐다보기 일쑤입니다. ‘돌봄노동’이라는 이름은 허울은 될 테지만, 말다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돌보다’는 ‘일 아닌 살림’이거든요. 아스라이 먼 옛날 옛적부터 ‘돌보다·돌보다’는 ‘일도 짐도 아닌 살림’인데, ‘사랑으로 짓는 살림’입니다.

‘돌보다 = 돌아보다’입니다. ‘돌아보다’를 줄여서 ‘돌보다’입니다. ‘돌아보다’란 “동글게 동그라미를 그리듯 모가 하나도 없이 오롯이 다 보다”를 뜻합니다. 손부터 뻗기 앞서, 눈으로 차분하고 참하고 차근차근 보노라면 어느새 어느 곳에 어떻게 손을 대면서 추스르고 가다듬을는지 스스로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돌보다·돌아보다’를 할 줄 아는 사이라서 ‘동무’이고, 이렇게 어울리는 사람이기에 ‘두레’를 이루는‘둘’입니다.

누구나 보금자리라고 하는 집에서 아이어른으로서 돌아보고 동무로 어울리고 두레로 일을 하는 둘(어버이·어른 + 아이)인 터라, 이 둘은 ‘너 + 나 = 우리’로 맞닿습니다. ‘너나우리’일 적에는 “다르면서 하나인 우리”이고, 이를 줄여서 ‘하늘(한울 : 하나인 울타리)’라 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5-02-18 17:11   좋아요 0 | URL
그런 허울들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저 운동하시는 분들도 돌봄 뜻을 더 넓히는데 힘쓰고 계시더라구요 ㅎㅎ

2025-02-18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8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8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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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8 1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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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9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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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0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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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0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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