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 연대기 - 멸종의 비밀을 파헤친 지구 부검 프로젝트
피터 브래넌 지음, 김미선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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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피터 브래넌
원제 The ends of the world
어려서 한글로 적힌 가사 보며 따라 부르던 Skeeter Davis의 The end of the world가 생각났다.
https://youtu.be/sonLd-32ns4
노래와 달리 이 책 제목의 엔드는 하나가 아니고 복수다. 대멸종이라 불릴 만한 끝이 다섯 가지 등장한다.
지구사의 연대표를 보면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각 시기가 단절 없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생물의 역사란 생각보다 굴곡이 많았고, 사이사이에 치명적인 폭망의 시기가 여러 번 있었다. 이 책은 주욱 이어지는 시기보다 그렇게 툭 끊어지는 멸망의 과정에 주목한다. 새롭고 흥미로웠다.
표지와 제목을 보면 진지하고 비장한 느낌인데, 문장 표현은 책 대부분에서 발랄하고 재치있었다. 저자와 역자의 콜라보랄까. 술술 읽히지는 않는데 멸종의 상황에 관해 표현을 하는데도 묘하게 웃겼다. 이게 뭔소리야 하고 한 번 더 읽어본 뒤에야 푸헐 하고 웃을 수 있는 표현이 많았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릴 것도 같다. 저자가 만난 지질학자나 고생물학자의 덕력 만렙 넘치는 모습도 대화체와 묘사를 통해 재미있게 그려 놓았다.
대멸종의 자연사 위주로 읽고 있을 뿐인데 희한하게 그동안 읽은 지구의 빅히스토리가 머릿속에서 더욱 뚜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운 점은 어려운 고생물 이름이 많이 나왔는데 묘사를 엄청 재미있게 하긴 했지만 그림 자료나 화석 사진을 첨부해줬으면 이해가 좀 더 쉬웠을 것 같다. 매번 구글이미지창 열고 고생물 사진을 검색해서 블로그에 모아 놓았다. 못생긴 조상님들 사진 첨부하고 나니 아이돌 엽서 모은 거 마냥 뿌듯했다. 집에 있는 ‘왠지 이상한 멸종 동물도감’, ‘진짜 진짜 재밌는 진화 그림책’(커다라니 좋은 도감인데 그다지 재밌지는 않다...), ‘이유가 있어서 멸종했습니다’ 등을 다시 보면 이제는 더욱 반갑게 사라진 동물들을 마주할 수 있겠다.
책 읽다가 새로운 단어를 배우게 될 때가 좋다. 이번 책 보며 처음 사전 찾은 단어-
더껑이: 걸쭉한 액체의 거죽에 엉겨 굳거나 말라서 생긴 꺼풀.
멸종이 덮친 죽음의 바다 위에는 지저분한 조류 같은 애들만 둥둥 뜨면서 더껑이가 덮인다고 한다...단어만 떠올려도 으으 붕어 두 마리 싸워 한 마리 죽고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된 작은 연못이 생각난다. ㅋㅋㅋ
아, 이거 말고 지난 번 페터 한트케 책이었나? 다른 책인가? 새로 알게 된 단어가 있는데...
한사리: 매달 음력 보름과 그믐날, 조수가 가장 높이 들어오는 때. 대조.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놨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독후감...

왜! 특정 시기에 갑자기 지구 위 거의 모든 생물이 멸종하였는가, 그 시절에 살아보지 않은 인류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그 시절 살았다면 우리는 다 죽었겠지...작가가 계속 그런 식으로 말했다ㅋㅋ)
남아 있는 지층과 그 안의 암석 성분과 화석들이 가리키는 다잉메시지를 바탕으로 많은 학자들이 나름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발휘해 대멸종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애쓰고 있다. 서로 주장하는 이유 가지고도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특히 공룡을 다 죽인 백악기 대멸종 이유를 다르게 주장하는 칙술루브 소행성충돌파와 데칸트랩 화산폭발파 간 치열한 논쟁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단순히 과거 어느 시점에 대멸종이 있었다, 로 논의를 끝내지 않고, 이것이 오늘날 직면한 기후 변화와 탄소와 질소 순환 변화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계속 돌아보고 있었다. 온실가스 문제는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구나 싶었다. 지구 위에선 생물의 번성, 화산활동, 지각변동, 우주 현상 등에 따라 끊임없이 탄소가 대기로 방출되거나 지각 위에 갇히거나 하면서 온도와 산소량 등이 변해왔다. 그것이 생물의 흥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지구 온난화는 대멸종기에 있었던 탄소 배출 증가 및 온도 상승과 유사하다고 한다. 다만 그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고도 한다. 사는 동안 세상과 우리 종의 멸망을 바라볼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저자의 말대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금 우리처럼 탄소 배출을 일삼고 자연 파괴적인 생산 소비 활동을 했다면, 단군 할아버지 시절의 고대인들이 우리처럼 쓰레기를 버리고 흥청망청 살았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삶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대멸종을 마주한 후손들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의 우리를 돌아보며 원망하게 만들 일은 좀 줄이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 누리는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생각은 깊이 슬프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소중하게도 느껴진다. 사라지지 마, 하고 붙잡고 싶어진다.

-한눈에 보는 대멸종 연대표
-못생긴 아주 오래된 조상님...메타스프리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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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2-16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학계의 주장이 자주 바뀌는 것이 이 분야인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분야죠. 개인적으로 관심도 있고요.

반유행열반인 2020-02-16 17:31   좋아요 1 | URL
수많은 동식물 사체와 돌덩이를 뒤져가며 너무도 오래된 예전 일을 알아내는 학자들이 참 대단하지 싶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알아낸 이야기들이 계속 궁금해지네요. 거기에는 꼭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언제 망하나 하는 묵시록도 곁다리(아닌가 주요 화두인가)로 따라오고...

NamGiKim 2020-02-17 11:39   좋아요 1 | URL
예전에 삼엽충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3억년이라는 생존 기간에서의 변형이 참으로 흥미로웠죠.

공쟝쟝 2020-02-16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인류는 온제 어떻게 멸망하나요???😁

반유행열반인 2020-02-16 18:55   좋아요 1 | URL
이미 멸망가도 위를 부지런히 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ㅋㅋㅋㅋㅋ
 
아무 일도 아니야! 부처와 돼지 (신장판) 3
고이즈미 요시히로 지음, 김지룡 옮김 / 들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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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고이즈미 요시히로
부처와 돼지 시리즈 마지막 권까지 모으자, 하고 본 건데 2권까지만으로도 충분했을 듯. 3권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였다. ㅋㅋㅋ
알라딘 중고로 구입했는데, 2005년에 경희가 선경이에게 편지까지 빼곡이 써서 선물한 게 이제 내 손에 왔다. 그런 책들 슬프다. 저자가 친필 사인해서 드림한 책 손에 넣을 때도 그렇다. 선경이는 이 책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아니면 경희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아무 일도 아닌가?! 아...책 상태는 책장에 연필로 낙서하고 지저분한 것도 묻어 있고 안 좋았다...
비교하지 않는 삶. 을 말하는 책을 전작이랑 비교하고 있는 나새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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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02-15 0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착각하며 믿고 살아가는 돼지...ㅎㅎ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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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 페터 한트케

2009년에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에 갔다. 클림트의 유디트와 키스가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그곳에 간 사이 그 그림들은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에 가 있었다. 그 일은 생각할 때마다 웃기다.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황홀경 빠진 듯 한쪽 눈을 일그러뜨린 채 작은 가슴과 보글대는 머리를 하고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다. 나는 저 모습을 닮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강해보이잖아.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카더라만 들어서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 하고 유디트가 실린 헤벨의 희곡집도 3년 전에 샀는데 아직도 안 봤다. 회회. 이제 미루지 말고 봐야 할 때가 왔어.

나도 노벨상 수상작 함 볼까! 하고 야심차게 펼쳤는데 길지도 않은데 오래오래 힘겹게 읽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화자이자 주인공의 아내 이름이 유디트이다. 성경의 유디트가 잠시 언급된다. ’녹색의 하인리히’라는 화가가 등장하는 옛 소설이 이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고 소설 후반부에 드디어 화자가 그 소설을 다 읽는다. 검색해보니 그 소설에도 유디트가 나온다고 한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화자에게 유디트가 짧은 편지를 남긴다. 너무 충격 받아서 오랫동안 하지 않던 혼잣말이 살아난다. 그러고나서 소설 내내 자주 혼자 주절거린다.
오스트리아에서 대서양을 넘어온 화자는 미국 여기저기를 여행한다. 그러면서 계속 호텔들에 연락해서 유디트의 여정을 확인한다. 화자는 유디트에 대해 아주 나쁘게 회상한다. 아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빡쳐!! 이런 느낌. 그러면서도 왜 계속 그녀를 좇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클레어라는 여자친구와 그녀의 자녀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긴 거리를 달려 어느 화가 부부의 집에 잠시 머문다. 유디트는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권총으로 죽여버릴테다, 협박도 하고 빈 상자에 찌릿찌릿 배터리 철사 연결해서 골탕도 먹이고 현지인 매수해 화자의 돈도 털어먹는다. 그런 장면들은 사실 화자가 너무 예민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이게 진짜 그런 건지 이새끼가 망상에 빠진 건지 읽는 동안 헷갈렸다. 바닷가에서 유디트가 화자에게 방아쇠를 당기는데 화자가 권총을 빼앗아 절벽에 버리고 함께 버스에 탄다. 만나고 싶다던 존 포드 감독에게 유디트와 함께 찾아가 우리 미국 타령하는 걸 듣고 여태까지 있던 일 진짜임 ㅋㅋ 하고 끝난다. 후반부는 좀 꿈꾸는 것 같다.

풍광 묘사나 생각, 회상, 심리 상태(주로 불안, 불쾌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 표현이 집요했다. 그런 게 집요할수록 읽을 때 졸리다. 아웅 졸려. 그런데 또 중반부에서는 한동안 잘 읽혔다.
크게 재미는 없었다. 어려웠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만 대충 알 정도였다.
미국 여기 저기를 다니고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연극을 보며 유럽에서 건너온 화자가 음 미국은 이런 건가, 하는 느낌의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나는 유럽의 느낌도 미국의 느낌도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읽다보니 이 소설이 언제 쓰여진 언제 배경의 소설인지 궁금해졌다. 세계대전 참전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그 이후이긴 한데, 하다가 나중에 맨 뒤 연보를 보니 1972년 30세 때 작품이라고 했다. 그렇군.

+밑줄긋기
-밑줄을 거의 안 그었는데 새장 속 오징어 등뼈가 밤하늘 구름으로 변하는 장면과 메타포의 형성 원리를 뾱 연결짓는게 마음에 들었다.
‘텔레비전 옆의 새장 안에서는 카나리아가 석회질로 된 오징어 등뼈를 쪼아댔다. 우리는 붙어 있는 방 두 개를 잡았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차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면서 보니 산마루에 걸린 작고 엷은 구름이 언덕 뒤편의 햇살을 받아 밝게 웃음 짓고 있었다. 평지처럼 보이는 언덕바지 위로 하얀 미광을 드리운 구름을 보고 있자니 어둠 탓인지 오징어 등뼈가 밤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혼동과 감각의 현혹에서 메타포가 생겨나는 이치를 깨달았다.’

-헤어지는 연인? 부부?의 이야기인데 사랑했던 장면은 하나도 안 나온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죽이고 싶고 꼴뵈기 싫고 이거만 잔뜩 나와서 읽는 게 덩달아 힘들었다. 클레어랑은 조근조근 이야기도 잘 나누면서 왜 그래 너희들.
‘유디트에 대한 첫인상, 그것을 왜 나는 더이상 회상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떠올려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나를 들뜨게 하면서 새털처럼 가볍게 만들어주던 그 달콤했던 애정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런 다음부터 우리는 늘 찡그린 얼굴로 서로를 뜯어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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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2-1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 만났다 헤어지는 이야기..... ㅋㅋㅋㅋ
으헤헤. 연애.. 몰까요... 사랑? 몰까요... 덧없다... 인생...

반유행열반인 2020-02-12 21:19   좋아요 1 | URL
덧없다가 덧있다가 하는 거지요 ㅎㅎㅎ 사랑...몰까요 ㅋㅋㅋ 왜 여긴 뭘 보다 몰을 써야 맞는 거 같지....ㅋㅋㅋ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 욕망과 결핍, 상처와 치유에 관한 불륜의 심리학
에스터 페렐 지음, 김하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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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에스터 페렐

모호하고 시적인 제목, 부제에 포함된 ‘불륜의 심리학’이 책이 다루는 내용을 더 뚜렷하게 드러내준다. 저자는 수많은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배우자나 연인이 아닌 사람과 관계 맺는 행위를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게 안내한다.
불륜이라는 말 자체가 윤리적 판단이 강해서 그런지 번역자는 외도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무엇을 외도로 볼 것인가, 발생하는 고통과 피해는 어떠한가는 예상 가능한 이야기였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외도를 피해자-가해자 관점이나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 개선과 변화의 기회, 가부장제와 결혼제도 등 독점적 관계의 한계를 돌아볼 기회, 행복한 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외도의 의미와 동기, 비독점적 관계, 다자연애 등 대안, 이별 방식에 이르기까지.
상담자로서 저자는 누군가를 처벌하고 관계를 끝내는 것이 아닌, 회복과 행복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고민을 돕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제목처럼 우리가 회피하며 이야기하지 않는 탓에 그런 일들이 실제로 닥쳐올 때 더 큰 고통과 고민을 겪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안정과 영원의 꿈을 꾸는 혼인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재뿌리는 말 같을지 모르지만, 서로에게 매이기 전 미리 이런 상황들을 가정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 싶다. 합의와 특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가치관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만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애정이 있는 또는 없는 육체관계를 맺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 또다른 사랑이 다가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대에 대한 독점은 타당/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서로를 소유할 수 있는가?

박현욱 소설 원작인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연애시절 주인아(손예진)가 노덕훈(김주혁)에게 사랑이 끝났을 때 나뭇잎을 내밀며 이별하는 부족의 이야기를 한다. 다자연애에서 더 나아가 중혼까지 하는 인아는 축구매니아에 섹스도 잘하고 직업 전문성과 미모까지 갖춘, 남성이 원하는 판타지를 모두 갖춘 데다 가부장제 내에서 요구하는 모든 의무까지 (두 결혼과 함께 두 배로)감내해 내는 인물이다. 남성 중심적 시각이 농축된 빻은 부분도 있지만 시사하는 부분도 많은 서사였다. 결혼과 동시에 배우자도 내 것, 아이도 내 것, 소유욕과 함께 자유를 제한하는 모습이 타당한지 그동안은 고민거리 조차 되지 못했다.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면 덕훈의 말처럼 ‘니들 현재 스코어는 간통’이라며 이혼서류를 들이미는 게 정석 같지만, 세 연인에다 그들의 아이가 함께하는 가족을 상상하고 합의가 된다면 실현할 수는 없는지.

꿈같은 이야기다. 대부분의 서사는 배신과 고통과 복수와 폭망이 기다릴 뿐. 우리에게 주로 알려진 이야기의 결말은 그러하다.

+밑줄긋기
-결혼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젠더 불평등은 법칙과도 같았고 문화의 DNA에 뿌리박혀 있었다. 여성은 결혼하는 순간 권리와 재산을 내놓았고, 스스로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되었다.
부부 간의 신의와 독점적 관계는 최근까지도 사랑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2가지는 유산과 혈통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그러니까 어느 아이가 내 애고 내가 죽으면 누구에게 소를(또는 염소나 낙타를) 물려줄지를 확실히 알기 위해 여성에게 강요된 가부장제의 기둥이었다.

-때로는 다분한 고의성이 상처를 더 아프게 한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신중하게 계획했는가가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고의성은 바람피운 사람이 자신의 욕망과 욕망을 실천한 결과를 비교한 후 밀고 나가기로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 창의력을 투입했다는 사실은 파트너나 가족의 희생이 따른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추구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우리의 문화적 이상은 인간의 불안을 못 견디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랑에 내재한 취약성과 마음의 자기방어 욕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자신의 희망을 한 사람에게 걸면 의존성이 커진다. 모든 커플은 제삼자의 그늘 아래 살며, 커플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간에 어떤 면에서 이들의 결합을 강화해 주는 건 늘 곁에 도사리고 있는 다른 사람의 존재다.

-질투하는 사람은 “네 번 괴로워한다. 내가 질투한다는 사실 자체가 괴롭고, 그런 나를 책망하느라 괴롭고, 나의 질투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까 봐 두려워서 괴롭고, 내가 이렇게 시시한 감정에 휩쓸릴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이 괴롭다. 나는 거부당할까 봐 괴롭고, 상대를 공격할까 봐 괴롭고, 미칠까 봐 괴롭고, 평범해질까 봐 괴롭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질투에 대한 전통적 견해와 태도를 타파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 중에는 합의하에 비독점적 관계를 시도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들은 폴리의 경험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 성생활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질투를 이용한다. 어떤 이들은 아예 질투를 넘어서려고 애쓴다. 스스로를 다자연애자로 정의하는 많은 사람이 컴퍼션compersion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자신의 파트너가 다른 사람과 성적으로 접촉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행복감이다. 이들은 여러 사람을 사랑하며 소유 관계의 패러다임을 깨부수고자 한다. 그리고 질투가 소유 관계의 핵심이라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 노력한다.

-때로는 침묵이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일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파트너에게 당신의 죄책감을 떠넘기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지금 당신은 누구의 안녕을 생각하고 있는가? 마음의 죄를 씻으려는 당신의 행동은 정말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이타적인가? 당신의 고백을 들은 파트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늘 존중의 표현인 것은 아니다. 사실을 알게 된 상대가 어떤 마음일지를 고려하는 것이 존중이다. 고백의 장단점을 따져 볼 때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로만 생각해서도 안 되고, 추상적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사실을 털어놓으면 실제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를 상상하고 어떤 대화가 이어질지를 떠올려 보라. 당신은 그 상황 속에서 어디에 있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상대의 표정에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가? 상대의 반응은 어떤가?

-우리 문화의 낭만적 사랑 모델은 결혼 생활이 건강하면 다른 곳에 눈 돌릴 이유가 없으리라고 본다.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이해받고, 인정받고, 존경받고,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왜 집 밖을 떠돌겠는가? 이 관점에서 보면 외도는 사실상 결핍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상담의 목표는 애초에 외도를 일으킨 문제를 찾아내고 치료하여 커플이 면역 접종 증명서를 손에 들고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해결식 접근법으로 정말 사랑의 한계와 복잡성을 무력화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러려면 방랑벽을 예방할 완벽한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심리치료를 하면서 “저는 제 아내를/남편을 사랑해요. 우리는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함께할 때 행복해요. 하지만 전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어요”라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을 여럿 만나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수년간,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간 상대에게 충실했던 사람이 많다. 상식적이고 성숙하며 배려심이 많은, 관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느 날 이들은 자신이 넘을 거라고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선을 넘는다. 그동안 쌓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서 말이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불빛을 발견한 것일까?

-규칙에 맞서는 행위는 관습보다는 자유를, 제약보다는 가능성을, 사회보다는 나 자신을 옹호하는 행위다.

-무기력한 습관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것이 해골 모습을 한 진짜 죽음의 신일 수도 있지만, 죽은 듯한 무감각일 수도 있다. 무엇이 나타나든 간에 나는 외도가 이런 상황의 강력한 해독제라고 생각한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는 “사랑과 에로스는 세상에서 가장 지친 사람도 일어나게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불륜은 삶을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는 저항할 수 없는 그 힘에 무너진다. 이런 불륜은 사람들이 미리 계획하거나 찾아 나선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예상치 못하게 커진 성적 욕망은 돌연히 일상의 리듬과 습관을 깨부수면서 우리를 따분한 삶 너머로 이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사정없이 진행되던 노화도 속도를 잃은 듯하다. 익숙한 장소에 신선한 아름다움이 깃든다. 새로운 장소가 막 깨어난 우리의 호기심을 향해 손짓한다. 사람들은 모든 감각이 증폭된다고 말한다. 음식이 더 맛있고,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며, 빛깔은 더욱 선명해진다.

-외도에는 가슴 아픈 아이러니가 있다. 바로 가장 소중한 것에 반기를 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이 고충은 우리 내면의 실존적 갈등을 보여준다. 우리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원하며, 이 2가지 속성은 우리가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도록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움과 다양성 또한 즐긴다. 정신분석가 스티븐 미첼이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우리는 안정을 갈구하는 ‘동시에’ 모험을 갈구한다. 하지만 이 2가지 기본 욕구는 완전히 다른 동기에서 나오며, 한평생 우리를 정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긴다. 우리 삶은 분리와 결합, 개성과 친밀함, 자유와 헌신 사이의 긴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결혼은 우리 삶에 무언가를 더해 주고, 동시에 무언가를 앗아 간다. 일관성은 기쁨을 없앤다. 기쁨은 안도감을 없앤다. 안도감은 욕망을 없앤다. 욕망은 안정감을 없앤다. 안정감은 성욕을 없앤다. 무언가가 나타나면 당신의 일부는 희미해진다. 그것 없이 살 수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사라져도 되는 것이 무엇이고 사라지면 안 되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결혼 전에 알기 어려울 수 있다.

-현대 서구 문화는 민주주의와 합의 도출 과정, 평등주의, 공정성, 상호 관용 등 과거로부터 받은 크나큰 선물들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 가치들을 침실에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면 섹스가 따분해질 위험이 있다. 젠더 역할의 재조정은 현대사회가 이룬 가장 큰 진보 중 하나이며 그 결과 성적 권리가 엄청나게 개선되었지만, 대프니 머킨Daphne Merkin이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쓴 것처럼 “에로틱한 상상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무법지대 앞에서는 성적 권리에 대한 그 어떤 법안도 힘을 쓰지 못한다.”5 성적 욕망은 늘 훌륭한 시민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젠더 역할이 엄격하게 분리되고 가부장이 특권을 누리며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었던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허용된 것이든 금지된 것이든 간에) 우리의 성적인 선택을 현재의 문화적 틀 안에서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합의된 비독점적 관계란 두 파트너가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다른 곳에서 해소하는 데 합의한 것을 뜻한다. 이와 달리 외도는 둘에게 가장 좋은 방식이 무엇인지를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외도가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법(결혼을 지키고 섹스의 정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자에게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썼듯이 “자유는 우리를 책임에서 자유롭게 해 주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늘린다.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 주지 않고 오히려 더 무거운 짐으로 우리를 짓누른다. 모순을 키우면 키웠지 결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때때로 이 세계가 잔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가 ‘해방’된 결과 각 개인의 자율성이 타인의 자율성과 충돌하고 손상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사람들이 이만큼 많은 제약을 견뎌야 했던 시기는 없다.” 자율성의 충돌은 현대 모든 커플에게 위험 요소로 작용하지만 다자연애에서는 다중 충돌 사고로까지 번질 수 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철학자 존 오도너휴John O‘Donohue는 우리에게 다음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랑이 얼마나 불시에 쳐들어올 수 있는지, 늘 놀라울 따름이다. 그 어떤 상황도 사랑을 예방할 수 없고, 그 어떤 관습이나 약속도 사랑을 막아 내지 못한다.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생활 방식 속에서 개성을 통제하고 매일매일을 질서 있게 정돈하고 정해진 순서대로 행동할 때조차 충격적이게도 예상치 못한 불꽃이 날아들고 만다. 그 불꽃은 서서히 타오르다 결국 진화할 수 없는 큰불로 번진다. 에로스의 힘은 항상 동요를 일으킨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에로스는 잠귀 밝은 사람처럼 언제든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의 파트너는 소유물이 아니다. 파트너는 우리와 계약 관계에 있으며, 그 계약을 갱신하거나 하지 않을 뿐이다. 파트너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고 해서 꼭 서로에게 덜 헌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커플이 잃기 십상인 적극적 교류를 하게 된다. 파트너가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은 긍정적인 충격이 되어 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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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구지 모모라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로그인만 하면 자꾸 에티오피아 구지 모모라를 먹어보라고 팝업을 띄우던 알라딘. 뭔가 동백꽃 블렌딩에 대한 설욕전?을 하고 싶던 것인가. 그 도전 받아주기로 하고, 아직 먹던 게 남았는데도 새 원두가루를 구입하였다.
블렌딩 아니고 단일 지역 원두인데, 내릴 때 향도 이쪽이 더 달고 고소하고 맛도 입에 맞았다. 뒷맛에 아주 약간 산미가 있는게 좋았다.
남미보다는 아프리카에서 온 애들이 나한테는 더 맞는 걸로... 내 곱슬머리를 보면 유전자의 출처와 입맛의 상관관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기에 더해 할인쿠폰이 정액제라 200g보다는 100g사는 게 할인율이 높다는 깨달음... 한 달에 100그램씩 책 살 때 함께 사면 딱 괜찮을 것 같다. 돌아가며 하나씩 먹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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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06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건 난 이제 뭔 리뷰를 써도 다 비구매로 떠서 노출이 바로 안 된다...왜때문에... 고객센터에 문의할까... 블랙리스트 풀어주시죠...

scott 2020-02-06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구지 모모라 드립백으로 구매해볼까 했는데 반유행 열반인님이 괜찮다고 하니 귀가 솔깃! 알라딘 고객센터에 항의 하셔도 됩니다 블랙리스트명단에 올리다니 불공정해요

반유행열반인 2020-02-06 21:14   좋아요 2 | URL
확실한 건 아닌데 이번리뷰도 비구매로 작성됐어요 ㅎㅎ 취향은 다 다르니 제가 좋아한 거 드시고 윽 하실지도 ㅋㅋ근데 전에 거 보단 만족해요. 비구매 표시는 문의했는데 아직 답은 없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