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20200210 페터 한트케

2009년에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에 갔다. 클림트의 유디트와 키스가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그곳에 간 사이 그 그림들은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에 가 있었다. 그 일은 생각할 때마다 웃기다.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황홀경 빠진 듯 한쪽 눈을 일그러뜨린 채 작은 가슴과 보글대는 머리를 하고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다. 나는 저 모습을 닮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강해보이잖아.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카더라만 들어서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 하고 유디트가 실린 헤벨의 희곡집도 3년 전에 샀는데 아직도 안 봤다. 회회. 이제 미루지 말고 봐야 할 때가 왔어.

나도 노벨상 수상작 함 볼까! 하고 야심차게 펼쳤는데 길지도 않은데 오래오래 힘겹게 읽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화자이자 주인공의 아내 이름이 유디트이다. 성경의 유디트가 잠시 언급된다. ’녹색의 하인리히’라는 화가가 등장하는 옛 소설이 이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고 소설 후반부에 드디어 화자가 그 소설을 다 읽는다. 검색해보니 그 소설에도 유디트가 나온다고 한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화자에게 유디트가 짧은 편지를 남긴다. 너무 충격 받아서 오랫동안 하지 않던 혼잣말이 살아난다. 그러고나서 소설 내내 자주 혼자 주절거린다.
오스트리아에서 대서양을 넘어온 화자는 미국 여기저기를 여행한다. 그러면서 계속 호텔들에 연락해서 유디트의 여정을 확인한다. 화자는 유디트에 대해 아주 나쁘게 회상한다. 아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빡쳐!! 이런 느낌. 그러면서도 왜 계속 그녀를 좇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클레어라는 여자친구와 그녀의 자녀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긴 거리를 달려 어느 화가 부부의 집에 잠시 머문다. 유디트는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권총으로 죽여버릴테다, 협박도 하고 빈 상자에 찌릿찌릿 배터리 철사 연결해서 골탕도 먹이고 현지인 매수해 화자의 돈도 털어먹는다. 그런 장면들은 사실 화자가 너무 예민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이게 진짜 그런 건지 이새끼가 망상에 빠진 건지 읽는 동안 헷갈렸다. 바닷가에서 유디트가 화자에게 방아쇠를 당기는데 화자가 권총을 빼앗아 절벽에 버리고 함께 버스에 탄다. 만나고 싶다던 존 포드 감독에게 유디트와 함께 찾아가 우리 미국 타령하는 걸 듣고 여태까지 있던 일 진짜임 ㅋㅋ 하고 끝난다. 후반부는 좀 꿈꾸는 것 같다.

풍광 묘사나 생각, 회상, 심리 상태(주로 불안, 불쾌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 표현이 집요했다. 그런 게 집요할수록 읽을 때 졸리다. 아웅 졸려. 그런데 또 중반부에서는 한동안 잘 읽혔다.
크게 재미는 없었다. 어려웠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만 대충 알 정도였다.
미국 여기 저기를 다니고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연극을 보며 유럽에서 건너온 화자가 음 미국은 이런 건가, 하는 느낌의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나는 유럽의 느낌도 미국의 느낌도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읽다보니 이 소설이 언제 쓰여진 언제 배경의 소설인지 궁금해졌다. 세계대전 참전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그 이후이긴 한데, 하다가 나중에 맨 뒤 연보를 보니 1972년 30세 때 작품이라고 했다. 그렇군.

+밑줄긋기
-밑줄을 거의 안 그었는데 새장 속 오징어 등뼈가 밤하늘 구름으로 변하는 장면과 메타포의 형성 원리를 뾱 연결짓는게 마음에 들었다.
‘텔레비전 옆의 새장 안에서는 카나리아가 석회질로 된 오징어 등뼈를 쪼아댔다. 우리는 붙어 있는 방 두 개를 잡았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차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면서 보니 산마루에 걸린 작고 엷은 구름이 언덕 뒤편의 햇살을 받아 밝게 웃음 짓고 있었다. 평지처럼 보이는 언덕바지 위로 하얀 미광을 드리운 구름을 보고 있자니 어둠 탓인지 오징어 등뼈가 밤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혼동과 감각의 현혹에서 메타포가 생겨나는 이치를 깨달았다.’

-헤어지는 연인? 부부?의 이야기인데 사랑했던 장면은 하나도 안 나온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죽이고 싶고 꼴뵈기 싫고 이거만 잔뜩 나와서 읽는 게 덩달아 힘들었다. 클레어랑은 조근조근 이야기도 잘 나누면서 왜 그래 너희들.
‘유디트에 대한 첫인상, 그것을 왜 나는 더이상 회상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떠올려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나를 들뜨게 하면서 새털처럼 가볍게 만들어주던 그 달콤했던 애정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런 다음부터 우리는 늘 찡그린 얼굴로 서로를 뜯어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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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2-1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 만났다 헤어지는 이야기..... ㅋㅋㅋㅋ
으헤헤. 연애.. 몰까요... 사랑? 몰까요... 덧없다... 인생...

반유행열반인 2020-02-12 21:19   좋아요 1 | URL
덧없다가 덧있다가 하는 거지요 ㅎㅎㅎ 사랑...몰까요 ㅋㅋㅋ 왜 여긴 뭘 보다 몰을 써야 맞는 거 같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