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귀여워서 또 보게 되는 물고기도감 - 알아두면 꽤 행복해질 현대판 자산어보
임현 지음, 김지민 감수 / 브레인스토어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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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임현.

브로콜리너마저-공업탑
https://youtu.be/eXTCcqNudlQ

고래 고기를 먹을 뻔했었다. 벌써 칠 년 전이다. 자기 고향의 성당에서 혼인하는 음악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서울 친구들이 고속철도를 타고 울산에 갔다. 허니문을 다녀오면 서울에서 공연장을 빌려 파티 형식으로 피로연을 또 하기로 했다. 찬 겨울 아침, 혼례용 장갑을 서울집에 두고 왔다는 신부의 심부름을 하러 남의 빈집 도어락 따다 비밀번호를 틀려 혼비백산하고, 열차 놓칠 새라 조마조마하다 다행히 제 시간 맞춰 성당에 도착했다. 축의금은 받지 않고, 쌀화환은 성당에 기부한다고 했다. 수녀님들이 말아주시는 잔치국수를 먹고 성당을 배경으로 야외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나서 서로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이 어쩌다 모였다. 식 끝나고 저희랑 대중교통으로 여행하실 분, 딱 여섯 분 모십니다. 코스는 울산 반구대-저녁 언양 불고기-양산에 6인용 펜션에서 함께 술파티하고 자고 아침에 해장 사발면 먹고 통도사(교인분들을 위해 근처 교회도 검색해놨으니 택1)-점심 대충 먹고-버스 환승환승하며 장생포 고래박물관 관람-저녁으로 고래박물관 근처 고래고기집 들렀다 상경하는 코스입니다. 내가 짜놓은 여행 계획 썰을 풀자 몇몇이 뭉쳤다. 드러머 한 명, 일렉기타 한 명, 베이스기타 한 명, 음향 엔지니어 한 명, 전직 일렉기타 한 명과 전직 보컬 한 명인 우리 커플까지. 이 사람들끼리만 모여도 밴드 하나 했겠네…(그런 일은 없었지만…) 하여간에 적당히 지인과 그날 처음 본 사람이 섞여 1박2일 여행을 했다.
반구대의 고래 그림은 왠지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처럼 잘 안 보였고, 핸드폰으로 사진 열심히 찍어서 나중에 집에 와서 확대해 보니 보일락말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언양 불고기는 원래 가려던 집이 공사중이라 택시기사님이 데려다준 곳으로 갔는데 친구가 갑자기 육회를 시킨다고 해서 내가 예산 초과라고 저지하자 친구가 내돈 내고 내가 먹는다고! 하고 버럭해서 잠시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ㅋㅋㅋㅋ(왜 그랬니 나여 먹는거 가지고...) 펜션에서는 그럭저럭 화기애애하게 술 잘 먹고 잘 놀다가 내가 좀 취해가지고 섹드립에 패드립에 처음 본 사람한테 쌍욕도 하고(죄송합니다…) 겨우 서른하나였는데 그쯤 중년의 위기? 늦게온 사춘기? 같은 걸 겪는 중이었는지 꼬장을 너무 부려서 만날 너그럽던 곁의 사람한테도 살짝 혼구녕이 났다. 나는 조금 울다가 취중에 더디 잠들었다.
쿨쿨 자고 일어나서 다같이 통도사 가서 감말랭이 사서 먹으며 종종 걸어가서 간지나는 금강계단을 구경하고 한참을 이동했다. 중간에 김밥 몇 줄 사서 길에서 대충 나눠 먹고 노래로만 듣던 공업탑도 지나가다 보고 해가 질 무렵에야 장생포에 도착했다.
거기에 고래들이 수조 안에 있었다. 정확히는 돌고래들,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만 가까이 다가와서 눈을 맞춰주고 우웅-하고 소리내어 인사하고 두 번은 인사 안하더라…다들 고래 만나는 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러고나서 누구도 고래고기집에 가자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곧장 터미널로 가서 롯데리아에서 한우 버거 하나씩 시켜 먹고 (송아지도 우리의 친구지예!!!인간의 이중성 ㅋㅋㅋㅋ) 서울행 버스를 타고 쿨쿨 자며 올라와서 늦은밤 고속터미널 앞에서 다들 다음 피로연 파티 때 또 만나요 빠이빠이하고 헤어졌다.

그래서 나는 아직 고래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고, 왠만하면 앞으로도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
초밥은 좋아하는데 생선 요리를 아주 즐기지는 않는다. 비린 것이나 가시나 비늘 같은 걸 두려워한다. 그래도 물고기는 궁금하니까, 도감은 재미있잖아, 하고 빌려 읽었다. 그런데 물고기, 어류라는 생물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식재료로서 어류, 패류, 기타 수상생물에 관한 음식도감에 가까웠다. 제목에 그런 힌트를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맛있어서 또 먹게 되는 물고기 도감 이라든가… 읽으면서 식재료 고르는 법이나 조리법 소개하는 게 재미있긴 했지만 이거 정말정말 인간 중심적인 책이네…먹보 인간은 왜 이리 잔인할까…태어난 게 원죄…이런 기분이 드는 건 내가 생선먹는 걸 안 좋아해서 그렇겠지…
그리고 이런 비슷한 형식의 만화에 가까운 도감류를 몇 권 보았는데, 이런 건 일본이 잘한다. 그리고 이 책의 형식은…책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기획이나 형식 자체가 너무 일본 비슷한 책 그대로 베껴다 놓은 것 같아서 아쉬웠다. 뭐 편집 형태 같은 게 저작권 붙이기 애매하지만 그래도 너무 갖다 베낀 느낌이라… 그래도 물고기 그림은 귀여웠어. 맛에 대해 음식에 대해 설명, 묘사하려고 애쓰는 점도 수산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흥미롭게 볼 것 같다.

장생포의 고래 한 마리는 임신 중이었는데, 여행 얼마 후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그런데 새끼 고래가 금세 폐사했다는 소식에 우울했다. 고래가 놀기에 박물관의 수조는 너무 좁다고 했고, 그치, 우리가 갔을 때도 세 마리 돌고래들이 수조 안을 빙빙빙빙빙빙 돌았다. 돌고래쇼 같은 동물쇼만 안 한다고 동물친화적인 장소는 아닌 것이다. 연구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좁은 곳에 갇혀 여생 보내는 고래들은 무슨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까. 포획 전 바깥 바다를 고래들은 기억할까. 인간이 미안해 고래야. 소야. 돼지야. 닭아. 다음 생이 있다면 내가 고래로 소로 돼지로 닭으로 태어날게. 아니면 멸치로 새우로 풀로 옥수수로 콩으로 태어날테니 맛있게 먹으렴.

사진은 순서대로

그날의 반구대 암각화(착한 사람한테만 고래 그림, 고래 사냥꾼 그림 보임)

그날의 통도사 가는 아침

그날의 돌고래 세 마리

그날의 장생포 돌고래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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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9-10 19: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고기 그림 정말 귀엽네요… 저는 통도사만 가봤습니다. 고래박물관은 휴관일이라 못봤었어요… 표지에 물고기들이 수산시장처럼 누워있는게 힌트였을까요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9-10 19:29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그래도 설마 맛이 귀여워…일 줄은… 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9-10 19:31   좋아요 2 | URL
제가 전자책 보다보니 표지 신경 안 썼는데 조그맣게 빨간 배경 흰글씨로 맛있어서! 도 써 있었네요…내가 잘못했네 ㅋㅋㅋ

파이버 2021-09-10 19:32   좋아요 2 | URL
[맛있어서!]스티커가 너무 작아서 잘 안보이니 반님께서는 잘못 없으십니다ㅎㅎ

얄라알라 2021-09-10 19: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언젠가 슬리퍼 나갔을때(빠이했을 때) 제가 우연의 일치...뭐 이러면서 댓글 달았는데, 저 조금 전까지 일본 고래잡이, 이누이트 고래잡이 관련해 글 뒤지고 사진 살피고 있었어요. ^^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0:06   좋아요 3 | URL
고래 나오는 책 보셨군요 ㅎㅎ이 책엔 고래는 아주 조금 나오는데 이누이트 그림도 하나 있긴 하네요.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 2021-09-10 2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한반도 고래 흔적을 찾아~ 이렇게 실물 사진 까지!!

전 고딩때 봤습니다! 지구과학 샘도 착한 사람 눈에 만 보인다고 했어요 ㅎㅎ
수족관속 돌고래 보는것도 애처로운데
고기라니 !ㅎㅎ

마무리는 명태로 ~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1:40   좋아요 2 | URL
명태 총정리는 이미 아는 거래도 잘해놨더라구요 ㅎㅎㅎ

막시무스 2021-09-10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난 나뿐 사람인가 봅니다!ㅠ 그냥 돌덩이만 보이네요!ㅠ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1:41   좋아요 3 | URL
저게 돌덩이인 것도 맞습니다! 그저 돌덩이에 선 몇 개 쪼아둔 것일뿐 ㅎㅎㅎ

syo 2021-09-10 2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가리 귀여워..... 🥰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1:45   좋아요 1 | URL
노가리 까다의 어원 같은 걸 그려놔서 공신력은 잘 모르겠는 ㅋㅋㅋㅋ노가리 껍질까는 일 하며 대화하는 여성들보고 그러다 노가리는 언제까냐! 하고 나무라는 남편들 어쩌고 하며 설명한 장면이 좀 ㅋㅋㅋ그랬습니다... 노가리 먹어본 적은 없네요. 어려서 치킨집 직접 사러갔더니 치킨집 아저씨가 노가리 안주 시킨 사람들 구워주느라 기다리라고 했던 기억은 나네요...

syo 2021-09-10 21:48   좋아요 2 | URL
근데 진짜 책 되게 알차보이는데요? 읽을 만하겠어!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1:51   좋아요 1 | URL
먹는 이야기나 식문화 등등 기대하고 보신다면 좋아요. 다채로운 생선의 세계…동물이나 생물에 관한 이야기 기대하시면 조금 갸우뚱 ㅎㅎ저는 후자였네요…

붕붕툐툐 2021-09-10 22:24   좋아요 1 | URL
syo님 노가리 귀여워서 먹을거죠?ㅠㅠ

반열님 전 전자니까 읽어볼래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2:32   좋아요 1 | URL
귀여운 건 먹는 사람...무섭다...먹는 책으로는 즐거운 독서 되실 거에요. 식탐정 같은 만화 좋아하시면 ㅋㅋㅋ

붕붕툐툐 2021-09-10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저거 맛있어서 작은 글씨로 써놓은 거 뭐냐? 저에겐 웃픈 느낌이네요~
고래고기 올해 첨 먹어봤지요~ 저는 뭐든지 인간이 먹는 건 다 먹어보고 싶다 주의라서요!ㅎㅎ 제돈주고 사 먹을 일은 없겠지만요! 저도 생각해보면 생선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고기도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1:52   좋아요 1 | URL
탐식하지만 않으면 맛보고 맛 알아보는 경험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ㅎㅎ역시 요기 붕붕툐툐님 구루시여~~~ㅎㅎㅎ

Yeagene 2021-09-10 2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음식도감에 가까웠군요.저도 제목만 봤을 때는 어류도감인 줄 알았는데..ㅎㅎ 위의 암각화는 아무리 봐도 그냥 돌덩이같아요..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9-10 21:59   좋아요 2 | URL
저도 가서 눈빠지게 한참 보다가 그냥 옆에 전시관에 가이드라인으로 돌사진 위에 그려준 그림 보고 아아…했어요 ㅎㅎㅎㅎ 횟집도감 쯤 되요. 감수하신 분도 유명 낚시 어류 블로거 ㅋㅋ

munsun09 2021-09-14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울산 다녀가셨군요. 반갑습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09-14 07:04   좋아요 0 | URL
오래전이지만 반갑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