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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ㅣ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평점 :
-20201018 이창현 글, 유희 그림.
토요일엔 오랜만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다녀왔다. 같은 곳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작년 12월...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던 무렵이군. (이런 거 왜 기억해…)
혼자 책을 팔고 오려고 했는데 가족들이 줄줄이 따라나섰다. 가족 나들이는 몇 달만이다. 세 살 꼬맹이는 서점 구경이 처음이었다. 이기호와 장기하의 신간을 팔았다. 나한테 온 책은 선물 아니면 좀체 집 밖으로 반출 안 하는데 기대에 비해 큰 실망을 준 경우 징벌적 판매라는 예외 처분이 (내 맘대로) 있다. 지난 달에는 모 작가의 읽지 않은 책 두 권을 각 990원에 회원 간 거래로 눈 앞에서 없애버렸다. 하여간 신간이라고 무려 55퍼센트!라는 획기적인 가격에 매입을 해 주고 그 자리에서 뒷면에 상품 가격 라벨지를 붙이시길래 슬쩍 훔쳐보려고 했는데 빛의 속도로 엄지를 얹어 가려버리는 노련한 직원분…(알라딘님들아 상주세요. ㅅ점 주말 매입 담당 매니저님이요…) 적어도 ‘슈퍼’바이백에 슈퍼 붙이려면 매입가 70퍼센트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후 30개월인 친구가 제일 먼저 망설임 없이 랩핑된 책 한 권을 뽑아들고는 놓지 않았다. 다른 책을 보여주려고 하자 “아냐 싫어!” 하길래 그래 너해라 했다. 직접 들고 다니라고 했더니 무거운지 가끔 질질 바닥에 끌다시피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나중에 집에 가서 펼쳐보니 놀랍게도 딱 제 수준에 맞는 색깔, 사물, 한글 단어와 영어 단어가 섞여 나오는 플립북이었다. 랩핑되어 내용조차 보지 못하는데도 책등만 보고 적절한 책을 고르는 안목. 역시 내 자식 답다.
생후 9년 3개월인 친구는 이미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쥐돌이 모험 시리즈(남자 아이 여자 아이 타겟 별로 시리즈가 따로 나오는)를 다시 읽고 싶다며 하나씩 고르고, 드래곤 나오는 게임 만화책을 하나 더 집었다.
내가 찾는 책들은(주로 소설) 재고가 없어서 만화책 코너를 둘러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이웃들에게 이거 재미없으면 독서가가 아니라는 명성을 들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꽤 오랫동안 눈독 들이며 이걸 사 말아 했는데 표지가 너무 구려보여서 매번 구매를 단념했었다. 기껏 나와서 애들 책만 사주면 빡치니까 내 것도, 하고 샀다. 40여 분 책 구경을 마치고 다섯 권을 결제하니 이달 적립금 받은 거랑 아까 책 판 예치금이 사르르...커피 사려고 했는데...안녕 적립금…
상쾌한 일요일 아침, 새로 산 만화책을 펼쳤다...아, 스무 페이지도 안 봤는데 이거 너무나 내 취향이었다. 얼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개그만화보기좋은날에 크로마티고교를 버무려 거기에다 내가 한 번도 읽지 않은 벽돌 같은 고전 구절들을 막 양념 쳐놨어...분명 결말은 혼돈의 카오스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끝날 거야… 끅끅 낄낄 깔깔 대느라 가족들의 아침밥 시간은 열한시 반으로 늦춰지고 말았다…(나는 아까 일찍 일어나서 커피랑 베이글 먹었거든...미안)
대충 밥을 먹고 먹이고 설거지하고 만화책을 마저 보았다. 엄청 두꺼워 보였는데 진짜 미친놈처럼 웃으면서 순식간에 다 봤다. 예상대로 앞부분에서 너무 웃어서 마무리를 볼 때는 하나도 안 웃었다. 이거 설정이 문목하 돌이킬 수 없는 이랑 비슷했는데 그런 소재라면 웃겨줘야지. 암암.
책에 미친 사람, 책변태, 책읽는 사람에 대한 소설을 썼다가 세상에 그렇게 서평에 집착하는 공동체가 어딨냐고 적립금 얼마나 준다고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써 올리냐고 합평 멤버들한테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차마 제가 노는 곳이 그런 곳입니다요...할 수 없어서 입 닫고 있었다. ㅋㅋㅋㅋ 독서 모임이라는 걸 해 본 적은 없지만 독서가에 대한 자조와 편견을 버무려 판타지 반 르포 반 삐끕 감성으로 그려 놓으니 진짜 사무치게 웃겼다. 올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웃은 건 처음인 것 같다. 알라딘에 상주하는 책변태들에게 추천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1018/pimg_792167114270359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