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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7 ㅣ 링컨 라임 시리즈 7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날도 덥고 그래서 친애하는 디버옹의 책을 집었다. 그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게 2월이었으니까 약 6개월 만에 읽는다. 디버옹은 링컨 시리즈와 캐트린 시리즈를 번갈아가며 1년에 한 권씩 발표한다. 현재 국내에는 링컨 시리즈가 12편까지, 캐트린 시리즈가 3편까지 나왔는데 과연 작가가 완결을 계획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50년생인 디버옹은 이제 예전만큼 집필 속도를 못 낼 텐데 작품의 세계관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제발 완결 없이 타계하시는 일은 없길 기도한다. 차라리 모든 게 꿈이었다는 최악의 엔딩이라도 남겨주시길.
<콜드 문>은 링컨 시리즈 중에서 베스트에 손꼽히는 히트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소문에 너무 큰 기대를 해서였을까, 실망까지는 아니고 좀 심심하다고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을 매력적이게 하는 일등공신은 무시무시한 악역들이다. 주인공 링컨 라임이 사지를 못쓰는 장애인이므로 언제나 액션은 악역 담당이다. 디버는 추리소설처럼 범인 맞추는 플롯이 아니라 시작부터 범인이 등장해 주인공과 싸우는 대결 구도를 펼친다. 매 편마다 어나더 레벨의 범인이 나와서 링컨 일행을 가지고 놀았고, 이번 편에서도 그런 악역이 나왔다. 자칭 ‘시계공‘이라며 범행 현장마다 시계를 남겨두고 떠나는 범인. 시계의 역사나 기능에 대해서 해박한 범인이었지만 뭐랄까, 시계공이라는 캐릭터를 범행에 마음껏 활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전 범인들과는 달리 연쇄살인도 안 하고 계획도 번번이 틀어지는 등 되게 포스가 없었다. 게다가 이전 범인들이 단독 플레이어였던 것에 비해 시계공은 늘 공범을 달고 다닌다. 그러면서 어떤 대단한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어서 이건 또 뭔가 싶어진다.
그나마 이번 범인은 준비성과 마무리가 빈틈없이 철저하다. 범인은 어디에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증거물이 없으니 라임의 추리력은 말짱 꽝이 돼버린다. 그래서 이번 편은 진짜 라임의 활약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파트너인 아멜리아 색스가 있지 않느냐 싶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이번부터 아멜리아가 형사로써 처음 정식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첫 담당이 무려 불법자들의 뒤를 봐주는 부패 경찰들을 잡아내는 일인데, 하필 그 명단에 순찰 경관이었던 부친이 포함되어 수퍼한 멘붕에 부딪힌다. 그런데다 시계공 사건까지 맡게 되어 몸도 마음도 붕괴된다. 주연들을 이렇게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리는 작가가 이해는 안 되지만 이쯤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캐트린 댄스 덕분에 어떻게든 이야기가 굴러간다. 캐트린 댄스는 ‘동작학‘으로 상대의 움직임, 눈빛, 음성 변화를 캐치하여 정보를 캐내는 일급 요원이다. ‘법과학‘의 라임과는 정반대 스타일의 수사관이지만 추구하는 목적이 같아서 두 사람은 금방 친해진다. 여튼 이번 편은 캐트린 댄스가 진짜 멱살 잡고 하드 캐리 했다고 봐야 한다. 범인을 만난 피해자들, 목격자들, 공범 용의자들을 대면하여 동작학으로 전부 까발리는 캐트린을 옆에서 구경만 하는 링컨 일행들. 아 정말 주인공들이 너무 밥값을 못한다. 캐트린에게 밥 두 그릇 주자.
예상하다시피 아멜리아가 맡은 두 사건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명색이 경찰 소설인데 슬슬 부패 조직이나 고위 인사들을 건드릴 때도 됐지. 문제는 그걸 아멜리아의 개인사와 엮어버리니 그녀의 비틀대는 멘탈이 사건에서 오는 긴장감보다 훨씬 도드라져서 액션/스릴러 장르의 성격이 모호해져 버렸다. 희로애락이 없으면 안 되겠지만 이렇게 한쪽으로 비중이 쏠려서야 어떡하나 싶다. 주인공은 활약이 없고, 파트너는 의욕이 없고, 범인은 매력이 없고, 스토리는 한방이 없다. 이렇게나 심심하기 짝없는 작품을 그나마 살려놓은 게 캐트린 댄스인데, 왜 전 세계 독자들이 캐트린 시리즈를 별도로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했는지 알만하다. 여튼 그건 그렇고 시계공은 주인공이 처음으로 놓친 범인이다. 시계공이 괴도 루팡처럼 주인공들을 가지고 놀다가 유유히 떠났다면 멋있기라도 했을 텐데, 라임에게 뒤통수를 맞고 님좀짱이라며 편지까지 써준 걸 보니 간지는커녕 되게 구질구질해 보인달까. 적을 놔준 건 나중에 또 나온다는 말인데, 이렇게 멋없는 캐릭터를 또 쓰시게? ......야레 야레.
사실 이번 편은 재미보다는 앞으로의 방향을 정립하는 징검다리 역할이 더 크다. 뛰어난 수사력을 자랑하던 라임이 적을 놓친 것, 동작학이라는 법과학 외의 수단을 인정한 것, 아멜리아가 경찰의 본분을 확립한 것, 아멜리아를 보조할 후임 경관을 찾은 것 등등. 이제 이들의 수사는 더욱 신중해지고 치밀해질 것을 여러 가지 테마로 선전포고한 셈이다. 시계공한테 잔뜩 체면을 구긴 라임의 캐릭터가 이번 일로 조금은 바뀔 것인지 궁금하지만 별 기대는 안 한다.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역시 기본은 하는 디버옹이시다. 할 수만 있다면 불로초 먹인 다음 평생 책 쓰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