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든 읽다 보면 글쓴이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다. 저자의 성격, 가치관, 성장 배경, 직업, 경험들이 결과물의 인풋이기 때문이다. 대개 글 좀 쓴다 하는 사람은 이 양념들을 잘 버무려서 맛있는 글을 써내곤 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재능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므로 부러워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살아온 방식에 따라 고유의 글맛을 가지는 법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떤 자극을 받으면 몇 배나 되는 능력을 발휘하곤 하는데, 트라우마는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강력한 자극은 넓고 깊은 생각과 사고를 갖게 해준다. 트라우마가 썩 좋은 경험은 못되지만 나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는데, 많은 글쟁이들의 선망인 헤밍웨이도 나와 같은 케이스 중에 한 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가 군인이고 기자였을 때 온갖 끔찍한 상황과 더러운 꼴을 보고 들으며 받은 자극들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단편 몇 가지와 중장편과 노벨상 연설문,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여행 에세이가 담겨있는 종합선물세트이다. 헤밍웨이의 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고, 헤밍웨이를 알고 싶은 책린이들에게도 입문용으로 알맞은 책이다. 여러 가지가 실려있지만 <노인과 바다>가 실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별 다섯 개이다. 그 작품으로 수상하기도 했고, <노인과 바다>가 헤밍웨이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드보일드 문체의 원조인 그의 작품들은 장편도 단편처럼 빠르게 읽힌다. 이 책에는 그의 문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일화도 담겨있으니 꼭 읽어보시라. 깨알재미가 쏠쏠하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장편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한다. 짧은 호흡을 싫어하는 나라서 헤밍웨이의 단편은 이 책으로 처음 읽게 되었는데 장편만큼이나 무게감이 있어서 놀랐다. 그런 무게감이 모든 글에 담기는 이유를 나는 작가의 관심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헤밍웨이의 관심사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생명‘이다. 헤밍웨이는 인간의 생사화복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이 작품에 실린 소설들과 그 외의 작품들도 전부 생명, 즉 삶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쓴 톨스토이와는 결이 다르다.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깃들어있는 본질을 꼬집었고, 헤밍웨이가 다루는 것은 존엄에 훨씬 가깝다. <노인과 바다>를 예로 들어보자.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노인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 죽음과 맞닿아있는 상황에서도 노인은 자신이 어부임을, 그 위험한 낚시질로 자신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던 노인이 곧 작가이고 그의 평생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이걸 염두에 두면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이 대강은 이해가 될 것이니 참고하시길.


사람들이 고전문학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작품에서 무슨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해서이다. 그런 부담감을 버리고 헤밍웨이의 책으로 고전에 입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절대 글을 어렵게 쓰지도 않을뿐더러 복잡한 내용을 다루지도 않는다. 솔직히 다른 고전 작가들에 비하면 헤밍웨이는 아주 양반이다. 그가 줄곧 얘기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독자가 많아지길 바란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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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4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좋아하는데 이 책 소장하고 싶어지네요.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줘도 좋을것 같아요. 헤밍웨이는 단편도 좋고 단편도 좋고 👍👍

물감 2021-07-24 07:39   좋아요 1 | URL
가격이 좀 쎄긴 하지만 값어치하는 선물이 될거라고 장담합니다. 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