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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한물간 MBTI 얘기를 이제 그만 좀 하고 싶은데, 솔직히 너무나도 유용한 글감인지라 가끔씩은 써줘도 된다고 우겨본다. 가장 희귀하다는 남자 INFJ의 속내를 깊이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으며, 그러니 몇십 번 우려먹는다 한들 그리 민망할 건 아니라는 정신승리 하에 이 글을 적고 있다. INFJ의 대표적인 특징은 16가지 유형 중에 N성향이 가장 높다는 것인데, 생각이 워낙 많다 보니 전지적 본인 시점의 상상을 하면서,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참 쓰잘데없는 염려를 해가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좀먹는 셀프 에너지 뱀파이어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추가로 INFJ의 두뇌는 24시간 오토매틱으로 풀가동하기 때문에 ‘머리를 비운다‘라는 개념이 잘 없다. 여하튼 아이러니하고 미스테리한 나 자신에게 대체 왜 그렇게 사느냐고 셀 수 없이 자문한 끝에, 그것이 INFJ의 1순위 되는 ‘욕구‘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을 통해서 각자의 DNA 속에 잠재된 욕구가 자신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렇듯 나의 무수한 염려들은 모든 사태와 사고를 방지하여 나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과연, 너 자신을 알라던 테스 형의 말씀은 아멘 또 아멘이시다.
실컷 쓰고 보니 또 재미없는 인트로가 되었지만 좋게좋게 넘어가자. 다름 아니라 간만에 청소년 문학 한 권 읽었는데, 이 주인공 또한 뭔 생각이 그리 많은지 사는 데에 꽤나 애먹고 있더라고. 어떤 면은 나의 옛 모습을 보는 듯도 하고 그래서 감정이입이 마구 샘솟았던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를 소개해 본다. 고등학생 에이자는 D머시기라는 박테리아에 감염된다는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하여 불안해질 때면 신체를 반드시 소독하고 세척해야만 겨우 진정된다. 매사에 이렇다 보니 일상이나 인간관계도 무너져버렸고, 그렇게 어려서부터 체념하는 법을 배우며 자라난 소녀. 아빠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죽고, 날마다 속상해하는 엄마의 얼굴은 피하기에 급급하다. 그나마 깨발랄한 데이지 덕분에 외톨이는 면했다지만 이 친구도 나를 버거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소녀는 지금 자기 외에 누군가를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 거지 같은 세상. 아니, 거지 같은 나여...
에이자는 생각한다. 머릿속을 침투해대는 불청객의 속삭임에 대해. 의식 너머의 자아는 끝없는 강박 증세와 불안장애를 가져다주었고, 통제 불가한 정신은 손가락에 상처 내고 새 반창고를 붙이는 습관을 갖게 하였다. 박테리아에게 점령당한 몸뚱이가 역겨웠고, 그걸 측은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도 지긋지긋했고, 뭐 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통제치도 못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주치의는 계속해서 약 먹고 경과를 지켜보자는데, 약을 먹어야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내키지가 않는 거다. 또 다른 자아에게 굴복당하는 일이 정녕 약을 안 먹어서 생긴 일 같지도 않고 말이다. 하여간 이런 자신의 처지는 마치 기생충에 감염된 물고기와도 같은 꼴이었다. 몸은 있지만 나를 조종하는 건 내가 아니었고, 따라서 육체 안에 갇혀 있는 나를 과연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이에 주치의는 말하길, 나의 의심은 나를 실존하게 만든다고 했다. 실존의 증명을 위하려던 데카르트의 말처럼, 계속 그렇게 부딪히기라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에이자는 또 생각한다. 마구 엉킨 욕구의 매듭을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지를. 불안과 우울을 교차하면서 커오는 동안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도 글렀고,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고 여긴지 오래이다. 가장 가까운 절친 데이지에게조차 깊은 속내를 꺼내지도 못한다.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젠 세상에 별 미련도 없지만 밑바닥에 눌려있던 욕구는 꼭 한 번씩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에이자도 남들처럼 좋은 대학을 가고 싶고, 데이지처럼 거리낌 없는 일상도 갖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 지독한 공황에서, ‘나‘라는 감옥에서 부디 해방되기를 바라는 그 욕구가 혹여 괜한 욕심은 아닐는지. 이렇듯 제 머릿속에 갇혀서 지내다 보니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바닥을 찍었고, 이것은 끝내 데이지마저 뚜껑 열리게 하였다. 그러자 매사에 진지함이라곤 1그램도 없이 태평하게 사는 친구가 얄미웠고, 내 고통에만 집중하느라 친구가 어떤 아픔을 겪는지도 몰랐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왜 날 뷁!!!
이런 총체적 난국에서도 다행히 숨 쉴 통로가 있었으니, 수년 만에 다시 만난 남사친 D였다. 현재 D는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는 아빠의 실종사건으로 패닉 상태였다. 재벌가인 소년의 아빠는 이미 미국 전역의 화제거리였고, 세간의 주목을 받느라 지쳤던 D는 에이자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아빠를 잃고 자유를 뺏긴 그 기분을 잘 아는 소녀는 D에게 동질감을 갖고서 마음 문을 열게 된다. 그렇게 서로는, 세상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을 만나 고통을 나누기 시작한다. 이로써 에이자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었고, 의심과의 충돌에서 떨어져 나온 진리의 조각들을 맞춰보게 된다. 안으로 향했던 관심과 생각들이 바깥을 향하게 되자, 인생이라는 소설에는 자기 얘기만 있는 게 아님을 이해한 것이다. 여전히 불청객은 자신을 괴롭혀댔지만 이제 생각은 생각이고 불안은 불안일 뿐이다. 앞으로 그것들이 나를 삼키우지 못하도록 달라져야 하겠지.
우리를 프레임에 가두고 넘어지게 하는 삶의 이벤트는 참으로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소년처럼 환경 문제로, 또 어떤 이에겐 소녀처럼 트라우마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의사도 전문가도 아니지만 내 경험을 빗대어볼 때, 계속해서 통증을 동반해야만 고통과 방황에서 탈출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집안의 기나긴 가난에서, 오른쪽 목이 허전하다는 강박에서, 지나간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그리고 누누이 말했던 생각의 저주에서 얽매여살다가 이제는 다 해방되었다. 참 많이도 무너지고 좌절했지만 지지 않고 나를 불편케 하는 모든 요인에 대해 회의하고 반문하였다. 그 길었던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은 나라는 인간을 200% 빠삭히 알게 되었고, 덕분에 인생의 리즈시절을 살아가는 중에 있다. 물론 이날이 있기까지 오래 걸렸고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지금 보니 그토록 울부짖고 발버둥 치던 과거의 내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당신도 부디 사소한 부조리일지라도 절대 납득하지 않기를 바라겠다. 그나저나 이 정도로 좋았던 청소년 소설이 있었던가. 정말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