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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결국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격리하는 동안 책이나 읽자고 했지만 집중이 잘 안되더라. 하여 몰입도 높은 책을 찾다가 마커스 세이키의 <브릴리언스>를 골랐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처럼 뮤턴트, 즉 돌연변이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책도 워낙 유명하여 장르소설계의 필독도서로 불리고 있다. 본국에서는 제2의 데니스 루헤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 루헤인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루헤인과 닮은 점도 잘 모르겠고.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는지, 지금까지도 미출간된 작품이 많다. <브릴리언스>도 3부작이라는데 여태 후편이 없는 걸 보니 알만하다. 이렇게 국내에서 잠깐 떴다가 사라진 유명 작가들이 너무 많은 듯. 마음 같아선 원서로 읽고 싶지만 영어를 못하는 나님은 번역본이 나오기만을 순순히 기다립니다요.
브릴리언트라 불리는 돌연변이들이 미국 전역에 태어난다. 이들의 능력은 사회와 국가를 위협했고, 이 골칫거리들을 쫓아다니는 공정국은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같은 동족을 사냥해야 하는 정예요원 쿠퍼의 마음은 온통 국가의 안전뿐이었다. 어느 날 브릴리언트의 지도자는 도심 한가운데에 폭탄을 터뜨려 강력한 경고를 남긴다. 제때 폭탄을 막지 못해서 다 죽은 거라던 쿠퍼의 자괴감은, 그 지도자를 반드시 제거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바뀐다. 적에게 접근하기 위해 신분도 가족도 버리고 국가의 배신자가 된 쿠퍼.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일까.
한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 기분이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이긴 한데 그래도 재미있다. 노멀들은 제멋대로인 브릴리언트의 통제를 원했고, 브릴리언트는 무조건 괴물처럼 대하는 노멀들을 경멸했다. 이 같은 이념 대립의 구도는 이해관계의 충돌일 뿐 어느 쪽이 틀린 게 아니라서 중립 기어를 놓고 읽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공정국은 돌연변이 아이들을 데려다 특별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실상 아이들의 능력에만 관심을 두고 인간성이나 사회성은 나 몰라라 상태였다. 그런 내부기관을 눈으로 목도하며 뭔가 이건 아닌데 싶은 쿠퍼. 그는 1급 돌연변이인 네 살배기 딸을 아카데미에 보내고 싶지 않았고,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브릴리언트의 지도자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니까 국가와 사회를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위해 얼마든지 희생하겠다는 각오와 정신으로 굴러가는 서사가 되시겠다. 이렇게 가족애가 넘치는 주인공들을 볼 때마다 미국 사람들은 다 가족에 살고 가족에 죽는가 궁금해진다.
쿠퍼는 자신의 정의를 실현키 위해 정의의 반대편에 서기로 했다. 자신을 폭탄 사건의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들어 공정국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수개월을 떠돌며 브릴리언트로 살아간다. 이 모든 건 어디선가 보고 있을 지도자를 속이려는 장기간 프로젝트였고, 돌연변이들과 어울리며 그에게 접근할 수단을 구하기로 한 거였다. 쿠퍼가 유일한 돌연변이 요원이라 가능한 작전이라지만 가능성도 낮은 일에 국가를 반역하고 목숨을 건다는 설정은 한참 선을 넘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가진 게 다 끊어진 쿠퍼가 바랄 건 오직 운빨인데 역시나, 그 넓은 미국 땅에서 잘도 지도자의 부하를 만나서 잘도 신뢰를 쌓는다. 이렇듯 개연성 없는 구간이 종종 있는데 뒤로 가면 다 이해될 테니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시길. 뭐 그냥 별생각 없이 읽는 게 더 나을지도.
알고 보니 돌연변이들도 노멀과 다를 게 없었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브릴리언트들도 노멀에게 잘못 길러진 탓이었고, 그들끼리 머나먼 곳에서 모여 지내는 것도 다 노멀들 때문이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인 브릴리언트의 진실로 엄청난 혼돈에 빠지는 주인공. 그러니까 목숨 바쳐 충성했던 공정국이 온 세상을 감쪽같이 속인 거고, 자신은 그동안 죄 없는 돌연변이들을 사냥해왔다는 말이지. 진실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로잡기 전에, 공정국에 붙잡힌 쿠퍼의 가족 문제가 더 시급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침착하게 풀어나가는 남자의 이야기. 엄청 재밌는데 어째서 반짝 떴다 없어진 작가가 된 걸까. 이해가 안 되네. 암튼 판타지나 액션 스릴러 좋아하는 분들에겐 강추한다. 확진 후 맛이 간 상태에서 쓴 글이니 엉망이어도 좀 봐주시길. 그만 자러 가야겠다.